2024년 11월 25일(월)

무수한 관심·기금 모인 저개발국 ‘우물 기부’… 그 많은 우물은 잘 쓰이고 있을까?

[더나은미래·이랜드재단 공동 캠페인 물을 선물합니다!]

②-마을 살리는 ‘우물’ 이야기

몇 년 전 캄보디아 타케오주의 한 농촌 마을에서 주민들이 국내 NGO가 만들어준 우물물을 마시고 단체로 병에 걸리는 일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온몸에 까만 반점이 생기는 증상을 겪거나, 심하면 팔꿈치와 무릎 등이 녹아내리는 등 비소 중독 증세를 보였다. 당시 현지 언론은 캄보디아 내 13개 주 중 7개 주에 있는 우물들이 독성 물질인 비소에 오염됐다고 전했다.

저개발국가들에 대한 ‘우물 기부’가 유행처럼 확산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비소나 인분 등에 오염된 우물, 망가져 방치되는 우물이 늘어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지역의 토양 특성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고 빠르게 짓다가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우물도 많고, 제대로 지었다 해도 관리가 안 돼 고장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우물 기부가 보여주기 식으로 변질되면서 저개발국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pixabay

◇너도나도 우물 기부… 실제 이용 가능한 건 많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서 식수가 부족한 저개발국의 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비영리단체,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저개발국 식수 개발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우물 건립’이다. 상수도 시설 설치에 비해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저개발국에 ‘우물 기부’를 하기 위한 모금이 줄을 이었다. 한 방송사는 우물 기부를 주제로 한 모금 프로그램을 주말 황금 시간대에 방영할 정도였다.

수많은 우물이 만들어졌지만, 결과가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다. 2년여간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며 우물 파기 사업을 담당한 A 비영리단체 직원은 “일부 단체의 경우 우물의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후원자들에게 결과를 빨리 보여주는 걸 더 앞세워 우물을 마구 파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우물을 팠다가 물이 나오지 않자 버리고 그냥 떠나버리는 경우, 우물 설치 이후 고장이 나서 무용지물이 된 사례를 실제로 여럿 봤다”고 증언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 아이들은 물을 기르기 위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로 나간다. ⓒ이랜드재단

한 비영리단체가 만들어준 우물을 사용한 뒤, 마을에서 수인성 질병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전직 비영리단체 직원은 “우물을 화장실 근처에 짓는 바람에 인분은 물론 동물의 똥오줌까지 그대로 유입되고 있었다”면서 “기초적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비소 섞인 땅엔 우물 대신 빗물 저장 장치 설치해야

지난 80여년간 우물 짓기 등 개발협력 사업을 해온 국제 비영리단체 플랜코리아의 이재명 홍보팀 팀장은 “지역 토양에 따라 우물의 깊이, 뚫는 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노수홍 연세대학교 환경공학부 교수는 “극심한 가뭄으로 지표수의 25%가 완전히 고갈된 동아프리카의 경우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개발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지만, 일부 국가·지역에는 비소와 같은 독극물이 함유돼 있어 우물보다는 빗물 저장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면서 “지역마다 토질이 다르기 때문에 면밀한 준비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랜드재단은 지난달부터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마구디(Magude) 지역과 냐마탄다(Nhamatanda) 지역에 8000만원을 들여 총 4개의 우물을 파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5월이 완공 목표다. 이랜드재단은 우물 파기에 앞서 지역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 토질 및 인구 조사 등 준비 기간만 3개월을 썼다. 조사 과정에서도 되도록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켜 의견을 들었다. 이랜드재단 직원과 식수 인프라 전문 비영리단체 관계자, 모잠비크 정부의 공공사업 및 수자원부 기술 담당관, 상수도 위생국 등이 머리를 맞댔다.

이윤정 이랜드재단 사업팀 팀장은 “마구디 지역은 일반 우물 깊이의 2배 이상인 150m 이상 굴착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냐마탄다 지역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우물을 파고 난 뒤에 바닷물이 섞인 물을 식수로 정화해줄 정수처리시설을 같이 설치해야 한다”고 전했다.

모잠비크 주민들이 물가로 나가 물을 기르는 모습. ⓒ이랜드재단

◇이랜드재단 “모잠비크에 새 우물 파고 고장 난 우물은 수리”

기존 우물을 수리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랜드재단은 모잠비크의 우물 보수 계획을 세우고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일대의 고장 난 우물 현황을 조사했다. 냐마탄다 지역의 경우 총 374개 우물 가운데 15%인 53개가 고장 나 있었고, 마구디 지역은 총 106개의 우물 중 16%인 18개가 못 쓰는 상태였다. 수혜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단체가 한 지역에 평균 3~5년 정도 머물다 떠나는데, 단체가 철수한 뒤 우물이 고장 나 버리면 고칠 사람이 없어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원 절약 측면에서 고장 난 우물을 고쳐 쓰고 우물 관리 교육과 시스템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구촌 오지에서 수자원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개발 NGO 팀앤팀의 길종훈 경영기획팀 팀장은 “우물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우물 주변만 청소하고 이용 요금만 내게 할 것이 아니라, 우물 보수 관리에 대한 교육과 시스템 전수부터 우물이 마을의 공동 재산이라는 인식까지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랜드재단은 내년 5월까지 6000만원을 별도로 들여 모잠비크의 고장 난 우물 10개를 보수할 계획이다. 특히 물이 저절로 올라오는 자동 펌프의 경우 전기가 부족한 모잠비크 특성을 고려, 태양집열판을 설치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정영일 이랜드재단 국장은 “주민들의 수인성 질병 예방법을 교육 자료로 만들어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또 마을 주민과 모잠비크 정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우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우물 고장 시 대처 방안 등 관리 방법을 교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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