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1일(토)
[해외 비영리 포커스] 76년 역사 ‘옥스팜 스캔들’이 주는 교훈

‘옥스팜’ 사태 돌아보니…

영국 구호단체 옥스팜(Oxfam)의 성매매 파문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 2월 9일 영국 더타임스는 아이티 강진 발생 이듬해인 2011년 현지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던 롤란드 반 하우어마이런 소장 등 현지 옥스팜 직원이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옥스팜은 당시 조사를 통해 성매매와 연루된 직원 4명을 해고했으며, 다른 3명은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가 된 아이티 사무소장은 2006년 아프리카 차드에 있을 당시에도 성매매 의혹이 제기됐던 인물이다. 게다가 윗선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티 소장에 임명한 것이 드러나면서 대대적인 비난에 휩싸였다.

신뢰도가 바닥을 치면서, 76년 역사를 자랑하던 옥스팜도 휘청거렸다. 스캔들 보도 이후 열흘 만에 개인 기부자 7000여 명이 정기 기부를 취소했다. 히스로(Heathrow), 협동조합은행(Co-Op Bank), VISA, 막스앤드스펜서(M&S) 등 기업들도 기부 철회 의사를 밝혔다. 영국의 제3섹터를 총괄하는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에서는 옥스팜을 국정 감사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해 옥스팜이 정부 및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1억7600만파운드(약 2640억원). 그중 3200만파운드(약 482억원)를 지원한 영국의 국제개발부, 2500만유로(약 325억원) 상당을 전달한 EU에서도 자금 지원 중단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옥스팜 스캔들이 국제구호단체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자극적인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이번 사건을 국제구호단체 전반의 신뢰로 연결 짓는 건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의 비영리 유력 계간지 ‘Nonprofit Quarterly‘의 편집장 루스 매캠브리지는 “우리 사회 어떤 직종 및 영역이든 성별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운 지대는 없다”면서 “단순히 영리에 비해 비영리 규제가 느슨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비영리, 영리, 정부 등 영역을 불문하고, 조직 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거버넌스와 성비위에 민감한 조직문화를 갖추기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차례 내부고발…  안이한 문제인식

실제로, 이번 옥스팜 사태의 경우 ‘경영진의 안이한 문제의식과 대처 방식‘이 후폭풍을 키운 핵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전 위험신호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2012~ 2015년 옥스팜 글로벌에서 내부 윤리강령 및 비위 감사를 담당했던 헬렌 에번스는 영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진에 수차례 내부 고발을 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해당 팀이 3개국 현장 직원 120명을 대상으로 익명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강제 성관계를 당했거나 목격했다고 증언한 이들이 7%로 나타났고, 10명 중 1명이 불쾌한 성적 접촉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2015년엔 ‘수혜자에게 원조를 주는 대가로 성매매를 한 직원이 있다’는 제보가 하루 3건씩 신고되기도 했다. 그는 마크 골드링 옥스팜 CEO를 비롯, 윗선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지만 대면 미팅은 취소됐고 이후 어떠한 대처도 없었다고 했다그는팀의 예산과 권한을 늘려줄 것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누군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고 했다

옥스팜 경영진의 안이한 대응은 다른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10, 옥스팜 나이지리아 전 지부장이었던 레슬리 아감스는 본부의 한 상급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하자마자 계약이 종료됐다고 주장했다. 옥스팜에선혐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으나 두 달 뒤 또다른 직원이 “윗선에서 해고를 결정했으며, 성폭행 문제제기를 알았지만 넘어갔다는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 자선위원회는 레슬리 아감스 해고 건과 관련해서도 옥스팜 CEO를 내부 조사 중이다.

◇내부 감사, 고충처리… 자원 늘릴 것

옥스팜의 위기,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마크 골드링 옥스팜 CEO는 공식 사과문을 통해 옥스팜의 잘못을 시인하며 “잘못으로부터 배우고, 신뢰를 다시 쌓아가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계획도 뒤따랐다. 옥스팜 영국은 세이브더칠드런∙월드비전∙컨선월드와이드 등 영국 내 22개 원조단체와 함께 내부 감사 및 모니터링, 내부고발, 고충 처리 등을 담당하는 ‘세이프가드(Safeguarding)’팀 자원을 늘리겠다는 공동 협약문을 발표했다.

변화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성적 비행 및 권력 남용 근절을 위한 독립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관련 모든 기록을 공개하겠다는 등 위법행위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사내 성차별과 권력 남용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고 내부 고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전 월드뱅크 부총재 및 UN 사무차장을 선임해 세이프가드를 위한 독립 상임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예산도 72만 파운드( 11억원)로 기존 세이프가드 예산의 3배 이상 늘렸다. 영국 정부에서도 기존보다 훨씬 엄격해진 기준을 발표했다페니 모던트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은 “내부 고발자 보호, 세이프가드 독립 기관 설립 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곳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책을 내걸었다. 

76년 역사,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비영리단체’로 꼽히던 국제구호단체 스캔들이 던지는 교훈. 국내에서도 비영리 거버넌스와 조직문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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