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3일(월)

‘아이 키우는 엄마 마음’으로 지역사회·청소년 교육 살뜰히 챙겨

엄마가 떴다
자원봉사그룹 ‘청나래’ – 청소년 교육 전공 엄마들 모여 직접 기획·실행한 프로그램 ‘큰 호응’
맘애포터 – 교육 프로그램 홈페이지… 직접 발로 뛰며 후기 작성으로 활성화
엄마들의 가정 변화 – 외부활동으로 가정 되돌아보는 계기… 먼저 다가오는 아이 보며 보람

교복 차림의 민석이(14·불암중 1)가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온다. 오른손에는 지팡이, 왼손에는 친구 택근이(14)의 부축이 있지만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지팡이를 고쳐 잡아보자.” 계단이 끝났음을 느끼던 찰나에 들려오는 목소리다. “계단을 내려올 때는 지팡이를 세워 잡고 콕콕 찍는 게 깊이를 알기 편했지? 근데 평지에서는 바닥을 갈지자(之)로 쓸면서 장애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임정순(46)씨는 아이의 손 모양을 고쳐준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노원청소년수련관에서 이뤄진 중학생들의 시각장애인 체험교육을 도운 이들은 엄마표 자원봉사그룹 ‘청나래’ 멤버다.

청나래 임정순씨가 학습연계 활동(불암중 1)을 하고 있다.
청나래 임정순씨가 학습연계 활동(불암중 1)을 하고 있다.

◇청소년교육 전공한 엄마들, 자원봉사로 뭉쳐

지역사회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엄마들이 나서고 있다. 노원청소년수련관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나래’는 ‘엄마’라는 자원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모델이다. 지난해 4월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학교 밖으로 나오는 청소년들의 안전 관리를 지원하는 정도였지만, 스스로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갔다. 청나래의 김현옥(44)씨는 “방송통신대학에서 청소년 교육을 전공한 엄마들 15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점차 우리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해보자는 욕구가 생겼다”고 했다. 단순 자원봉사를 넘어 청소년 전문가를 지향하던 그들의 노력에 수련관 측에서는 일정 예산을 지원하며 활동을 독려했다. 이들이 진행한 가족캠프 프로그램은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상계동에 거주하는 청나래 유미경(42)씨는 “경남 함양에 위치한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의미 있는 체험을 하는 캠프였는데, 기획 단계부터 준비, 사전답사, 실행, 사후모임까지 모두 우리가 직접 해보니 의미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도 매주 토요일 청소년 교육과 관련한 연구모임을 갖고 있다.

학부모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그 생생한 후기를 공유하는 자원봉사자 맘애(愛)포터.
학부모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그 생생한 후기를 공유하는 자원봉사자 맘애(愛)포터.

◇맘애포터, 시들해져 가던 청소년 교육 홈페이지 활성화시켜

엄마들이 힘을 뭉치니,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생하게 살아나기도 한다.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가 운영하는 ‘맘애(愛)포터’가 바로 그 예다. 지난 2008년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는 ‘유스내비(www.youthnavi.net)’라는 사이트를 오픈했다. 주5일제 수업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강조하기 위해 지역 내의 수많은 청소년 관련 시설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정연 보도국 팀장은 “초기에 버스나 지하철, 인터넷 등에 광고도 하면서 취지를 알리고자 했는데, 활성화가 더디었다”며 “우리가 프로그램 정보를 아무리 올려도 피드백이 없으니, 그 효과성에 대해서도 막막했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 것은 역시 엄마들이었다. 지난 2010년, 학부모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그 생생한 후기를 공유하는 자원봉사자 ‘맘애포터’의 등장으로 사이트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단순 후기가 아니라 학부모 입장의 생각과 감정, 즉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생겨난 것이다.

‘맘애포터’는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정기모임 외 모든 활동이 학부모들 자율에 맡겨진다. 좋은 정보를 위한 그들의 열정은 항상 사이트를 달군다. 2010년부터 맘애포터로 활동한 이지연(38)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요금, 차량편, 주차 문제부터 시작해서 프로그램의 장단점까지 최대한 세세하게 다루려고 노력한다”며 “한참 열심일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다니면서 리포팅을 했다”고 전했다. 2년 차 이정애(37)씨는 “대상을 유아로 해놓고 고학년도 받는 등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교육프로그램은 담당자들에게 따끔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맘애포터는 지난 4월 18일 발족한 5기를 포함, 현재 총 59명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수부터는 특정 지역과 프로그램에 몰리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전담지역을 배정받는 등 보다 체계화되고 있다.

향기나무 도서관에서 방과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역 아동들.
향기나무 도서관에서 방과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역 아동들.

◇아이들 돌보는 지역도서관 자원봉사, 튼튼한 공동체 만들어

엄마들의 지역사회 참여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소통과 통합에 기여한다. 작년 12월 중계동에 개소한 교육공동체 ‘향기나무’가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향기나무는 노원구청의 드림스타트센터가 취약한 가정환경의 아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인근 지역 10명의 엄마들이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다. 노원구청 드림스타트센터의 김정한 주무관은 “이 지역은 500여명의 저소득층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50% 정도는 한부모이거나 조손가정”이라며 “도서관이 돌봄 기능도 같이 수행해야 해서, 어머니들의 도움이 가장 필요했다”고 전했다. 현재 향기나무는 하루 20명 정도의 저소득층 아이들이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책을 보는 것은 물론, 자원봉사 엄마들에게 숙제도 도움받고, 고민도 털어놓는다. 고서영(13·청계초6)양은 “선생님들께 모르는 수학문제도 물어보고, 역사 이야기도 듣는다”며 “행사도 많아서 재밌고, 선생님들도 너무 좋고 편하다”고 했다. 향기나무를 이끌고 있는 최윤주(43)씨는 “지금은 아동들만 드나들지만, 아동의 부모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이곳에서 소통하면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엄마들의 활동이 청소년 문제나 지역사회의 통합 같이 거창한 변화만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와 가정’ 즉, 내부적으로도 좋은 변화를 만든다. 청나래의 임정순(46)씨는 “외부 활동은 가정을 다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예전에는 속내를 듣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밖에서 다른 청소년을 위해 봉사하는 엄마를 보며, 이제는 먼저 다가온다”고 했다. 청나래 유미경씨는 “이런 활동이 스스로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다. 청소년 상담에 관심이 많았는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사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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