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기업 재단, 특정 사회문제 해결에 편중…쉽고 단순한 사업만 손댔다

목적사업비 줄이고 자산 쌓기도

재무보고·사업현황 공개 소극적…탈세에 활용도

 

◇목적사업비 지출 줄여…자산 쌓아두는 기업재단

 

ⓒpixabay

기업재단이 공익 목적에 맞게 예산을 집행하는지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16년 기준 상위 20대 기업재단의 목적사업비 평균은 전체 지출의 67%로 전년 대비 1.54%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재단의 고유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지출이 오히려 줄어든 것. 특히 자본금 1위(약 2조1068억원)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의 목적사업비 지출은 0.9%로 가장 낮았다. 수익 사업에 해당하는 삼성서울병원 운영에 90% 이상 지출하고 있기 때문. 반면 상위 20개 기업재단 중 삼성생명공익재단과 같은 사회복지법인의 목적사업비 평균 지출은 83%로 약 90배 격차를 보였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더나은미래

문제는 이 재단의 주 사업인 병원 운영은 현행법상 사회복지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복지법인은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 목적을 위해 설립돼야 하기에 법령에 따라 사회복지 상담, 직업 지원, 무료 숙박, 지역사회복지, 의료복지, 사회복지관 운영 등 각종 복지사업과 이와 관련된 자원봉사활동, 복지시설 운영 등만 할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은 자동으로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고, 상증세법 상 세금 혜택 등을 받게 된다. 자산 2위(1조9513억원)인 아산사회복지재단 역시 아산병원 운영 지원(수익 사업) 비중이 높아 목적 사업 비율이 0.9%에 불과했지만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현행법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2015년 GS그룹 오너 일가가 세운 사회복지법인 ‘동행복지재단’도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한 목적 사업에 4.5%만 지출했다. 전년 대비 목적사업비 지출 증가 폭이 가장 큰 곳은 ‘신한장학재단(96.9%, ▲10%)’, 하락 폭이 가장 큰 곳은 세화그룹 9개 사가 설립한 ‘세화예술문화재단(67.4%, ▼25.5%)’으로 나타났다.

출연재산(원금)을 쌓아두고 정작 사회공헌 사업엔 소극적이란 지적도 있다. 과거 공익법인은 기본 재산(원금)은 보존하고 투자 수익으로만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2016년 19대 국회 때 공익법인법 개정으로 규제가 풀렸다. 원금의 일부를 주무관청의 허가를 거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투자 수익의 80% 이상을 공익사업에 쓰는 성실공익법인은 신고만으로 원금의 10%까지 쓸 수 있게 된 것. 미국은 매년 공익법인이 원금의 5% 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국내 상위 20개 기업재단의 원금 대비 목적 사업 지출은 2.89%에 그쳤고, 5% 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한 곳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12%), 엘지연암학원(7.88%), 엘지연암문화재단(7.58%), 두산연강재단(7%) 등 4곳에 불과했다. 성보문화재단이 0.018%로 가장 적었고, 동행복지재단(0.036%)과 하이트문화재단(0.39%)이 뒤를 이었다.   

 

◇투명성 수준 낮아…질적 성장 고려할 때

 

기업 재단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문제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17년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기부 및 사회공헌 관련 투명성 점수는 45.2점으로 국내 기업 총 평균(72.2점) 점수와 큰 격차를 보였다. 실제로 상위 20개 기업재단 중 11곳(55%)은 기업 자산과 개인 사재를 함께 출연했으며 4개 재단(20%)은 기업 오너 또는 오너 가(家)의 사재로 출연했다. 오너 일가가 재단 대표 또는 이사로 등재돼 있는 재단도 11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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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14곳(70%)은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 3934억원어치를, 엘지연암문화재단과 엘지연암학원도 LG그룹 상장 계열사 지분 3518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 팀장은 “계열사 주식을 1%만 보유해도 의결권과 세금 회피 등에 공익법인이 변칙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기업 재단에 대한 별도 세무조사 기준 마련, 공익재단 의결권 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위 20개 기업재단 중 홈페이지에 재무보고서, 이사회 회의록, 사업 현황을 모두 공개한 곳은 엘지연암학원 단 한 곳뿐이었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성보문화재단, 하이트문화재단 등 기업재단 7곳은 홈페이지를 통해 위 정보를 모두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재무보고서와 유사한 형태의 재무상태표를 게시, 이사회 회의록 대신 이사회 구성에 관한 정관과 일부 사업에 관한 사업 실적을 공개하고 있었다.  

재무보고서와 사업 현황은 투명성과 임팩트를, 이사회 회의록은 거버넌스와 자금 지출에 대한 의사 결정 현황을 평가할 수 있는 주요 척도다. 독일 BMW 헤르베르트콴트재단은 재무보고, 사업 현황은 물론 이사회 구성원들의 활동까지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비영리법인을 위한 10가지 권장사항’에 따라 창업주와 기업재단의 관계를 안내하는 등 대중과의 접근성과 가독성도 높이고 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실장은 “재단의 지속가능성과 임팩트를 높이려면 양적 팽창을 넘어 조직 안팎에서 다양한 혁신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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