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7조원대 게임시장, 사회적 책임엔 소홀… 게임회사, 사회 공헌 고민할 때

엔씨소프트 등 몇몇 기업 교육용 게임 만들었지만 소수에 불과한 실정
게임회사_ “게임은 문화콘텐츠산업 도박처럼 인식돼 억울”
전문가들_ “게임 중독 예방·치료 등 사회공헌 지원 늘려야”

1991년 3월, 대구시 수돗물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악취의 진원지는 바로 두산전자 구미공장. 공장에서 낙동강으로 무단 방류된 페놀원액 30t이, 파이프 파열로 인해 상수원으로 유출된 것이다.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졌고, 그룹회장이 물러났으며, 환경처 장관까지 경질됐다. 70%에 이르던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이 55%까지 떨어졌고, 하이트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 사건 이후 두산은 대표적 환경친화기업으로 변신했다. 전체 예산의 0.1%에 불과하던 환경부문 투자액을 5.9%까지 늘렸고, 1992년 국내기업으로선 최초로 환경보전강령을 제정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아예 EHS(환경 건강 안전:Environment Healthy Safety)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편성하고 있다.

최근 게임업계의 처지가 딱 20년 전 ‘낙동강 페놀사건’과 비슷하다. 청소년 게임중독과 게임의 폭력성 등 사회적 역기능이 커지면서, 게임회사들을 향한 날선 비판이 거세지고 사회공헌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 7조원대, 게임회사들의 사회공헌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7조4312억원이다. 아이템 거래 규모는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게임업계 1위인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엔씨소프트와 네오위즈게임즈, NHN한게임 등은 6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CJ E&M은 사회공헌활동으로 2009년부터 교과부와 함께 장애아들을 위한 '장애학생 e스포츠대회'를 벌이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 엔씨소프트의 교육용 PC게임 '프리라이스'. /CJ E&M, 엔씨소프트 제공
CJ E&M은 사회공헌활동으로 2009년부터 교과부와 함께 장애아들을 위한 ‘장애학생 e스포츠대회’를 벌이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 엔씨소프트의 교육용 PC게임 ‘프리라이스’. /CJ E&M, 엔씨소프트 제공

사회공헌 규모는 어떨까. 이들 회사는 한결같이 “구체적인 비용이 얼마인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네오위즈게임즈 관계자는 “영업이익의 1%를 사회공헌 기부금으로 적립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의 국내기업 사회공헌비 지출액(매출액 대비 0.23%, 경상이익 대비 4.76%, 2009년 기준)보다는 적은 규모다.

CJE&M엔씨소프트_사진_사회공헌_프리라이스_2012최근 2~3년 사이 게임회사들은 사회공헌 전담부서나 사내봉사단을 만들며 사회공헌 흐름에 발맞춰왔다. 엔씨소프트는 2008년부터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아동ㆍ청소년들이 유엔의 식량원조 및 긴급구호활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용 PC게임 ‘푸드포스(Food Force)’ 한국어버전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사회공헌 브랜드 ‘그린피망’을 만들어 ‘1게임1사회공헌’을 추진하고 있다. 청소년 가족캠프와 난치병어린이돕기 자선게임, 어린이 바둑캠프 등을 추진했다. CJ E&M은 2009년부터 교과부와 함께 장애아들을 위한 ‘장애학생e스포츠대회’를 벌였고, 게임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해 학부모 게임교실을 열고 있다.

◇게임회사 사회공헌은 수세적 대응?

하지만 게임회사들의 사회공헌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차갑다. 지난해 한 리서치회사가 발표한 ‘국내 5대 게임기업 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는 기업을 묻는 문항에 가장 높은 응답을 받은 엔씨소프트와 NHN 한게임 모두 34.7%와 31.2%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게임회사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반기업 정서에 대한 수세적 대응 혹은 사회적 압력으로 인식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제조물 책임이 있듯이 게임도 엄연한 서비스고 산업인데, 게임업체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 ‘게임이 비타민인가, 마약인가’를 묻는 여러 목소리에 대해, 게임업계에선 “우리는 그냥 재밌는 게임을 만들 뿐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감당할 몫”이라고 귀를 닫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돈을 벌려면 마약이나 술을 팔아도 되지만, 이 사회는 돈만 벌면 다 되는 게 아니다”며 “조지 소로스와 워런 버핏,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나 투자에 대해 끊임없이 가치와 철학을 얘기하지만, 대한민국 게임업계를 만든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넥슨의 김정주 대표 등은 그런 인식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게임회사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게임이야말로 K-POP보다 먼저 해외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문화콘텐츠산업인데, 우리나라에선 알코올이나 도박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게임회사사회공헌_매출액과영업이익_2012◇게임회사, 전략적 사회공헌해야 할 때

10여 년밖에 안 된 신생산업이기에, 게임업계는 이제부터라도 전략적인 사회공헌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관호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9개 게임사가 공동출연한 게임문화재단 기금 70억원을 통해 게임 역기능 예방과 치료, 게임문화 조사연구, 게임문화장학금 등 사회공헌 분야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회공헌의 규모와 폭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공헌 컨설팅업체 플랜엠 김기룡 대표는 “강원랜드나 KT&G, 마사회 같은 업체들은 일반기업에 비해 사회공헌 예산이 훨씬 많다”며 “코카콜라가 청소년들의 건강체조를 보급하는 사회공헌을 하듯, 게임회사들도 업계의 이익을 순수하게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CEO 개인의 기부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 등 미국의 오너 경영진들은 그동안 수십조원의 개인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큰 존경을 받아왔다. 이에 반해 국내 게임업계 경영진들은 ‘벤처부자’ ‘3조 주식부자’라는 명칭에 비해, 기부에는 인색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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