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언어 장벽 뛰어넘고… 붓과 먹으로 새로운 소통 이어가

예술 교육 프로그램 ‘꿈에햇살예술공방’

“‘엄마는 뿔났다’라는 드라마 보셨어요? 그 드라마 제목을 제가 썼어요. 여기 ‘뿔’자를 보면 특이하게 생겼죠. 왜 이렇게 썼을까요?”

아직은 한글보다 고향의 글자가 더 익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글자의 모양과 의미를 연결시키는 강사의 설명은 글자의 차이를 뛰어넘어 ‘엄마’와 ‘가정일’이라는 기억들을 들춰냈다.

“엄마가 살림을 하면서 힘든 일들이 많잖아요. 그런 힘든 것들을 이렇게 소의 뿔이 돋은 것처럼 표현해봤어요.”

지난 10일 부천이주노동자복지센터에서 사석원 명예 강사가 채본을 그리고 있다.
지난 10일 부천이주노동자복지센터에서 사석원 명예 강사가 채본을 그리고 있다.

지난 9일 부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국내 캘리그라피 1세대인 강병인 작가가 명예교사로 참여한 예술교육이 한지공예 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교육의 최종 결과물인 한지 등(燈)에 새겨 넣을 글씨를 쓰는 수업을 받고 있는 이들은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이다.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마주쳤던 장벽인 한글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손길이 사뭇 진지했다.

“한글을 단순한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삼았을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 한글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감정을 넣을 수 있다면 비로소 새로운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명예교사로 참여한 강병인 작가는 이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작가가 주목해왔던 한글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하기를 바랐다.

“한국에서의 운명을 기대한다”며 ‘내 운명’이란 글씨를 써냈던 사취은씨는 “이런 수업이 새로운 재능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희망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느끼는 기쁨도 크고, 힘들더라도 직업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외환은행나눔재단이 후원하고,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기획 및 실행하는 예술 교육 프로그램 〈꿈에햇살예술공방〉은 다문화이주여성 및 미혼모 등을 대상으로 생산적 예술 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후원사인 외환은행나눔재단과의 협의하에 작품의 전시와 판매도 이루어질 계획이다.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 시장성이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지난 10일 명예교사로 참여한 사석원 작가는 이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다문화 가족이나 이주민들을 교육해보면,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자유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경험과 훈련이 부족해 거친 면은 분명히 있지만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생명력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이 있고요.”

미상_사진_꿈에햇살예술공방_부채_2012사석원 작가의 결론은 “대부분의 참가자가 붓과 먹을 처음 써본 사람들인데 겁없는 표현이 좋았고, 실제로 시장에 나갈만한 인상적인 결과물들도 있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날 먹과 물감을 이용하는 ‘수묵담채화’ 수업의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그 형식 자체에서 낯섦을 느낀 듯 강사가 만들어 준 채본(견본 그림) 몇 점을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석원 강사의 계속되는 칭찬과 독려로 이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감정을 한지에 또렷이 새기기 시작했다.

녹색과 분홍색을 깔끔하게 사용해 난초를 표현한 참가자도 있었고, 선생님이 그려준 닭을 참새로 둔갑시키는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먹’을 아냐는 물음에 ‘오징어’라고 답했던 바로 그들이다.

수업을 마친 강병인 작가와 사석원 작가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재미만 있는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사후관리’나 ‘판매구조의 확보’ 같은 포괄적인 지원이 있어야 실질적인 자립모델로의 정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의 김민지 사무국장은 “기간이나 사후 관리, 그리고 지원에 대한 자체모델 형성 등은 이번 시험운영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문제”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순수하게 경쟁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추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냉정하게 평가받고 선택받을 수 있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라는 것이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