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수)

심장에 구멍 난 딸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구세군·KB국민은행·금융감독원, 캄보디아 아동 심장병 의료지원

‘딸바보’ 아빠는 자꾸만 울었다. 이야기를 하다가도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 지난 1일, 경기도 부천시 세종병원에서 만난 꾼바랑(44)씨는 딸아이 쯔레이쿳(12)양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기적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10번 넘게 이어졌다. 캄보디아어 통역을 도와주던 임향(52) 구세군 캄보디아 대표부 사관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가 지극정성이에요. 딸이 6시간 수술받는 동안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내내 기도하더니, 수술 끝나고는 딸 바람 쐬게 해준다면서 등에 업고 돌아다니더라고요. 수술 시기가 너무 늦어서 위험하다 보니 의사선생님께서 고민을 많이 하셨대요. 다행히 수술이 너무 잘됐어요. 이번이 아니었으면 내년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하니, 너무 감사하죠.”

1일 세종병원을 방문해 심장 수술을 마친 어린이들을 격려한 김연아(왼쪽부터) 선수,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윤종규 KB국민은행장. /KB국민은행

1일 세종병원을 방문해 심장 수술을 마친 어린이들을 격려한 김연아(왼쪽부터) 선수,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윤종규 KB국민은행장. /KB국민은행

아내가 임신 6개월 되던 날, 의사 선생님은 쯔레이쿳의 심장에 큰 구멍이 있다고 했다. 태어난 아이는 입술이 파랬고, 손발톱은 보랏빛이었다. 일곱 아이를 남겨두고 아내는 4년 전 남편을 떠났다. 농장에서 코코넛을 따주고 받는 삯으로 여덟 식구가 먹고살았다. 운이 좋아 5달러를 버는 날도 있었고, 일이 없는 날도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도, 언니 동생들 밖에 나가 자전거를 탈 때도 아픈 딸은 늘 혼자 집에 남았다. 열 살 넘게 자라준 딸이 고마우면서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 “수술은 꿈도 못 꿨죠.” 아빠의 눈가가 또다시 촉촉해졌다.

그런 아빠에게 기적이 찾아왔다. 딸의 심장을 수술할 기회가 찾아온 것. 구세군과 KB국민은행, 금융감독원이 협력하는 사회 공헌 ‘캄보디아 아동 심장병 의료지원사업’을 통해서다. 2012년 시작된 사업이 올해로 5년째. 지금까지 56명,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 윤종규 KB국민은행장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국내로 초대해 수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캄보디아 현지에 심장병 수술이 가능한 헤브론 심장센터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우리나라도 83년 미국 낸시 레이건 여사가 국내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지원한 이후 여러 아이가 수술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 들어와 수술받고 요양 기간을 지나면서 눈에 띄게 혈색이 좋아지고 밝아진 아이들을 볼 때 가장 보람되다”고 했다.

“올해 수술받은 10명 중 3명은 내년을 장담하기 어려운 아이들이었습니다. 폐동맥 고혈압까지 있어서 굉장히 복잡한 경우였죠. 선천성 심장병은 확률 문제라 보통 100명 중 한 명은 태어나요. 우리나라도 90년대 초까지는 심장병을 앓는 아이가 많았는데 이제는 의료 기술이 좋아져서 보통은 돌 전에 치료합니다. 예전엔 구호단체 도움으로 미국 가서 수술받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고요.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 시작한 셈이죠.”(김성호 세종병원 소아청소년과 부장)

올해, 새 생명을 선물 받은 아이는 10명. 푸른빛을 띠던 얼굴에도 홍조가 돌고, 숨 쉬는 게 불편해서인지 엄마 옆에 붙어 울기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병실을 휘젓고 다니는 ‘장난꾸러기’로 거듭났다. 아장아장 걸으며 온갖 물건을 만져보는 뜸낙(1)군 뒤를 쫓는 비치카(47)씨는 연신 “하지 말라”고 말은 하면서도 영 좋은 눈치다. 25일 만에 떠나버린 친엄마를 대신해 뜸낙을 키워온 고모 비치카씨는 “수술 전엔 늘 몸이 뜨겁고 잠자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이젠 잠도 잘자고 밥도 많이 먹어서인지 한국 와서 3주 만에 3㎏이 늘었다”고 했다. “정말로 기적 같아요.”

옆 침대에 둘러앉은 엄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이 찾아든 병실에는 눈물과 웃음이 넘쳐났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