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사무국장 인터뷰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김형수(36·사진) 사무국장은 1994년 6월, 대입에 ‘장애인 특별 전형’이 생긴다는 것을 들었다. 고3 생활을 하며 ‘차별받는 것은 나중의 문제고 일단 대학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지망한 김 사무국장은 수능과 대학별 본고사, 면접까지 봤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장애인 특별 전형 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아서 동기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야 겨우 합격 통지를 받았다.
대학 입학 후 학내의 장애인 문제와 교육권을 주제로 한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례를 접하면서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능숙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노하우가 생겼다. 김 사무국장은 ‘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에 2000년 대학 졸업 후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 들어가 장애인 학생들의 대학 입시와 구직 활동을 돕는 일을 했다. 2003년,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에서 독립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장애인 학생들을 도우면서 김 사무국장이 안타까울 때는 “장애인이라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취업이 힘든데 그냥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고등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김 사무국장은 “그런 말은 걱정으로 포장한 차별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대졸 실업률이 50%에 달해도 대학을 가지 않고는 자아실현이 거의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단지 취업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대학에 가는 것처럼 장애인 역시 똑같은 이유로 대학에 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교육시키기 위한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라는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강하게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더 나아가 장애인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 특별 전형’, ‘장애인 고용할당제’ 등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이미 완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이 아직도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이나 회사에서 장애인을 선발할 때 ‘당신도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위해 필요하다’가 아니라 ‘불쌍해서 뽑는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문제예요.”
김 사무국장은 “OECD 국가라면 ‘장애인도 사회구성원이다’라는 개념은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할 상식 아니냐”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의 편견만이 장애인의 교육과 취업에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들 스스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이미 많은 장애인이 활동하고 있는 특수교육학이나 사회복지학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전기공학이나 토목공학 등 의외의 전공을 선택했을 경우 장애인 취업률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적성을 바로 알고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 학생들에게 항상 “장애란 요소를 생각하지 말고 정말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장애인이라고 차별받아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장애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등한 동료의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늘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조직생활을 하려면 자신이 도움을 받은 만큼 남들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정책과 제도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보다 동료와의 사이 등 대인관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는 회원 150명의 작은 단체지만 목표는 확실하다. 장애인 학생들은 물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비장애인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을 때도 얼마 전 특수교육 중등 임용고사에 합격했다는 시각장애 1급인 이나영(24)씨가 인사를 하러 와 있었다. 이씨가 마치 친오빠에게 말하듯 “사회의 일원이 된 건 기쁘지만 학부모나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데 시간이 걸리진 않을까 걱정돼요”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김 사무국장은 “당당하게 하면 돼”라고 따뜻하게 격려했다. 이씨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의 든든한 손길에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밝은 미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