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빠진 기후 리더십… 中·英이 메운다 [글로벌 이슈]

중국, 청정에너지에 1373조 투자
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대폭 상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반(反)환경 정책이 국제 기후 리더십의 균형을 흔들고 있다. 미국은 파리협정 탈퇴에 이어, 석탄·가스·차량 배기가스 규제 등 환경정책을 줄줄이 완화하며 사실상 글로벌 기후 질서에서 이탈했다. 지난 3월 13일, 하루 만에 발표된 환경규제 완화 조치는 31건에 달했다.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는 중단됐고, 화석연료 산업 확대에 본격 나섰다.

◇ 석탄·가스 규제 푼 미국…기후 공백 메우는 중국과 영국

미국의 공백을 메울 주체로 주목받는 국가는 중국과 영국이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친환경 성장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창 국무원 총리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반(反) 환경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 대신 글로벌 기후 논의를 이끌어갈 국가로 중국과 영국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는 어도비 AI 파이어플라이를 통해 제작된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어도비 파이어플라이

기후 전문 매체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청정에너지 분야에 6조 8000억 위안(한화 약 1373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청정에너지 산업은 지난해 중국 GDP의 10%를 차지했으며, 전체 성장률의 26%를 견인했다. 이는 중국 경제 평균 성장률의 약 3배에 달한다.

영국도 ‘새 기후 리더’로 부상 중이다. 지난해 11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기후 리더십의 중심은 영국이며, 런던은 세계 최고의 녹색 금융 허브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영국은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81%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국부펀드를 활용해 민간 청정에너지 투자도 700억 파운드 이상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3월엔 에너지 규제기관 오프젬이 전력망 확충을 위한 40억 파운드(약 7조 569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승인했다.

◇ 中·英 장관 회담에 녹색채권 발행까지…기후협력 외교로 확장

기후 리더십 경쟁은 외교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에드 밀리밴드 영국 에너지안보·넷제로부 장관이 베이징을 찾아 중국 고위 당국자들과 회담했다. 영국 장관의 중국 방문은 8년 만이다.

영국의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 넷제로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가운데 3월 17일 진행된 중국-영국 에너지회의에서 양국의 에너지 협력이 논의됐다. /중국 국가에너지국(NEA)

양국은 이 자리에서 탄소포집 기술, 녹색 기술 공급망 구축, 핵심 광물 확보, 석탄 의존 완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밀리밴드 장관은 “기후변화로부터 미래 세대를 지키려면 주요 배출국 모두가 행동해야 한다”며 “중국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중국 역시 협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딩쉐샹 중국 부총리는 “녹색·저탄소 분야를 포함한 금융·무역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으며, 양국 관계 강화를 통해 글로벌 기후 대응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관계자들은 올해 중 런던 방문도 계획 중이다.

양국의 기후외교는 금융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사상 처음으로 런던에서 위안화 표시 ‘녹색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행 규모는 최대 60억 위안(약 1조 2115억원)으로, 지난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영 경제·금융 대화의 후속 조치다. 이는 중국이 해외에서 자국 통화로 발행하는 첫 녹색 국채다.

중국 재정부는 “국제 자금을 유치해 저탄소 개발을 추진하려는 전략”이라 밝혔다. 이 조치는 지난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영 경제·금융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는 파리협정 이후 국제 기후 거버넌스의 방향을 가를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선회한 상황에서, 중국과 영국이 새 시대의 기후 리더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