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포스코청암상’ 봉사상 수상자
이철용 사단법인 캠프 대표 인터뷰
필리핀 마닐라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폐기물 더미 사이를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닌다. 폐품을 주워 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그곳에서, 한 남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저 아이들도 꿈을 꿀 수 있을까?” 이 작은 물음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바로 지난 22일 ‘2025 포스코청암상 봉사상’ 공동수상자로 발표된 이철용 사단법인 캠프 대표다. 25년 동안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빈민 등 소외된 이웃과 함께해 온 그는 IMF 이후 교회를 떠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 외국인 근로자에서 장애인, 빈민까지…‘현장에서 찾은 해답’
이 대표의 활동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거리로 내몰린 외국인 근로자들을 돕는 일에서 시작됐다. 당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국제전화 요금은 큰 부담이었다. 이에 외국인 근로자와 그 가족이 서로 영상편지를 촬영해 서버에 올릴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 인터넷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의 관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거리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를 우연히 지켜보며, 이들 또한 이동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한국 최초의 장애인 인터넷 신문 ‘위드뉴스(With News)’를 창간해, 장애인 이동권과 차별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2007년, 그는 필리핀을 방문하던 중 마닐라의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쓰레기 더미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 그는 국제개발협력 NGO ‘사단법인 캠프’를 설립했다. 그는 필리핀 최대 빈민 연합 단체인 ZOTO(Zone One Tondo Organization)와 협력해, 필리핀 최초로 여성·아동·장애인 등 빈곤층 관련 뉴스를 영어로 제공하는 인터넷 신문을 운영했다.
◇ 필리핀 빈곤 문제 해결의 시작, ‘사회적 기업’ 모델을 도입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에는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했다. 그해 필리핀을 덮친 대규모 태풍으로 마닐라의 85%가 침수되고, 수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의 구호가 아니라, ‘일자리’다.”
이후 그는 빈민 지역인 불라칸주 타워빌에 여성 가장을 위한 사회적 기업 ‘익팅(Igting)’ 봉제센터를 설립했고, 이후 유기농업협동조합 ‘네이처링크’, 보건의료협동조합 ‘클리닉코뮤니타드’, 소상공인 협동조합 ‘띵딕’ 등을 운영하며 자립 가능한 지역 공동체 모델을 구축했다.
캠프는 ‘현장’인 필리핀에서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2023년에는 코이카와 함께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서 ESG 기반 농업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캠프지속가능발전센터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구축해 태양광 및 지하수를 개발하는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도 저변을 넓혔다.
이 대표의 목표는 “단체가 현장을 떠나도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을 나눠주는가’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는가’다. 이를 위해 지역개발에 깊은 애정을 가진 현지 전문가를 만나 토론하고 배우며 해당 지역의 방식으로 일을 풀어가는 것을 배운다. 외부 지원이 끊겨도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경제적 자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적 자립”이라며 “빈곤의 문제가 금방 해결되지 않는 만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상 소감을 묻기 위해 연락한 지난 23일에도 이 대표는 필리핀의 한 고등학교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더나은미래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상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항상 지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해왔기에,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봉사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봉사자 스스로가 누군가를 기쁘게 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라며 “불안과 좌절 속에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봉사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