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포장된 ‘홍보수단’ 아닌 진짜 CSR을 보여줄 때

전문가 20인의 2016 CSR 전망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매년 줄어 CJ·삼성 책임경영 엇박자 CSR 잘하는 기업, LG·코웨이 올해는 SDGs·기후변화 주목 저성장·장기 불황 지속으로 기업 간 CSR 격차 커질 것 진정성 엿볼 수 있는 시기 될지도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모 기업의 CEO가 ‘기업이 왜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CSR이 돈 벌어줄 것도 아니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누가 읽느냐’고 말하더라. 이전 CEO가 혁신적으로 CSR 회의체를 구성하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보고서를 만드는 등 전사적인 공감대를 높여왔는데, CEO가 바뀌니 모든 CSR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 비용 절감만 외치는 경직된 조직으로 순식간에 변질되더라.” “두산인프라코어가 ‘사람이 미래’라는 메시지를 기업의 본질로 강조해왔는데,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자 인력을 대거 자르는 모습에 진정성과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CSR팀 과반 이상을 자르고 조직을 전격 축소했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본성이 드러난 것 같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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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과 장기 불황이 예견된 2016년, 과연 CSR은 지속될 수 있을까. ‘더나은미래’가 신년을 맞아 CSR 분야 전문가 20명에게 향후 5년 CSR 분야의 화두와 전망을 물어본 결과,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국내 CSR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는 CSR을 잘하는 곳과 못하는 기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 해가 될 거라는 것이다. 김종대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역대 최악의 CSR 사례로 기억될 폴크스바겐 연비 조작 사건은 CSR의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가 ‘진정성’임을 다시 보여줬다”면서 “폴크스바겐이 CSR(특히 환경 분야)을 기업의 경쟁력으로 자랑하다가 모두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신뢰를 잃은 것처럼, 국내에서도 CSR을 홍보 수단으로 어설프게 포장해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한 기업들은 올해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축된 경제, 퇴보하는 CSR

최근 국내 CSR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기업도 2012년 117곳에서 2013년 103곳, 2014년 91곳, 2015년 76곳으로 감소하고 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투명성을 위해 CSR의 가장 기본이 되는데도, 더 이상 발간하지 않거나 콘텐츠 없이 사진만 붙여 넣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각 기업에 대한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평가도 이어졌다. “CJ의 CSV(공유가치창출)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은 인정하지만, CSV를 선포한 후에도 계열사 CJ제일제당의 청년 인턴 투신자살, 담합에 따른 공정위 과징금, CJ제약의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 등 엇박자 행보를 보여 안타깝다” “책임 있는 기업의 상징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에 계열사 전체가 가입되지 않은 유일한 5대 재벌 기업이 바로 삼성인데, 과연 사회적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등 따가운 질책이 있었다. 반면 긍정적인 움직임으로는 2015년 현대차·삼성물산 등에서 주주와의 소통 강화 및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기업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한 것, 성과평가지표(KPI)에 이해관계자 소통·사회적기업 등 CSR 관련 이슈를 반영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CSR을 가장 잘하는 기업으로 LG를 꼽았다. 그 이유로는 “지주회사제도를 처음 도입해 지배구조 투명도를 높였다” “거버넌스(지배구조)만 봐도 노동조합이 CSR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 “이해관계자 포럼 등 지속적으로 외부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을 들었다. 그 외에 2015년 3월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한 사회책임경영위원회를 설치한 신한금융지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의무 기업이 아님에도 지난 12월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파리 기후변화협약(COP21)의 ‘글로벌 기후변화협약’에 지지 선언을 하고, 자발적 탄소 감축 계획에 서명한 코웨이도 언급됐다.

◇주목할 이슈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기후변화, 공급망 관리

올해 주목해야 할 CSR 이슈로는 SDGs(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와 기후변화로 압축됐다.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유엔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적용할 지구촌 개발 의제로, 빈곤 퇴치·기후변화 대응 등을 비롯해 경제성장·일자리 증진·지속가능한 산업화 등 17개 목표와 세부 과제가 있다. 이윤석 이노CSR 대표는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평균 2도 이하로 낮추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목표”라면서 “파리 기후협약(COP21)에서 감축 목표량이 설정됨에 따라 기업들 모두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팀장은 “올해 SDGs에 발맞춰 각국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세부 지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면서 “유럽 국가 7곳은 기업과 인권 관련 국가액션플랜(NAP)을 선정했고, 전세계 40여개 국가가 NAP수립을 준비하거나 검토중이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과 달리, 소극적인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파트너는 “유럽 사례를 보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공정 및 에너지원 자체를 바꾸는데, 한국에선 LED 전구 교체가 전부였고 정부를 상대로 온실가스배출권거래 관련 소송을 걸었다”면서 “이는 규제 대응을 한 것이지 CSR 차원의 노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민구 영국표준협회(BSI) 그룹 코리아 이사는 “글로벌 기업들이 ‘우리와 일하려면 글로벌 사회적책임 표준에 준하는 요구 사항을 맞춰라’ ‘환경·안전·인권 등을 준수하고 있는지 현장 심사를 나가겠다’ 등 협력사 공급망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애플·BMW 등은 이미 국내 기업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에까지 수준 높은 CSR을 요구하고 있어서, 공급망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글로벌 계약 및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나은 CSR을 위해선 CEO부터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향후 CSR의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변화로 “CSR에 대한 CEO의 인식과 관심”을 꼽았다. 리더가 바뀌지 않는 한 CSR의 성장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 김태영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교수(부원장)는 “세계적인 카페트 회사인 인터페이스는 최고경영진이 열정적으로 나서서 유해물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미션제로’ 프로젝트에 20년간 장기 투자한 결과, 온실가스·석유사용량 감축 등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면서 “한국도 CEO가 직접 나서서 조직을 챙기고, 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CSR 전략을 짜야만 경쟁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기업 내부 CSR 전문가 양성, 소비자 및 투자자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단 지적도 많았다. “소비자와 투자자는 기업의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자인 만큼,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매출 및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응을 해야 한다” “CSR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시 의무가 법제화돼야, 책임 있는 투자와 소비가 촉진될 것”이란 의견도 많았다. 향후 5년, 저성장 위기를 CSR로 극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저성장 위기를 기회로 보라”고 조언했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소비자들은 돈을 쓰는 것에 더 진지해지고, 호화로운 것보다는 가치 있는 것을 찾는 등 소비 문화가 성숙해진다”고 예상했다. 일례로 다국적 에너지기업 셸(Shell)은 환경 파괴 주범으로 세계 악덕 기업 1위에 올랐지만, CSR 차원의 꾸준한 노력으로 2008년 국제투명성기구로부터 ‘동종업계에서 재무 성과를 가장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업’이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유명훈 코리아CSR 대표는 “영국 방송사 ‘채널4’는 런던 올림픽 방송권을 따내지 못하는 위기 속에서 황금 시간대에 장애인올림픽을 중계하고, 장애인을 ‘초인’이라 명명하며 장애인식 캠페인을 전개했다”면서 “세상의 편견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CSR 차원의 노력 덕분에 역대 가장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냈고 영국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기업 내부 조직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면서 “내부 구성원에 대한 인권 경영, 인간적인 존중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움 주신 분들: 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고대권 한국SR전략연구소 부소장, 김기룡 플랜엠 대표, 김도영 CSR포럼 대표, 김동수 한국생산성본부 센터장, 김종대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김태영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SKK GSB) 교수(부원장),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서명지 CSR임팩트 대표, 안정권 슬로워크 CSO, 유명훈 코리아CSR 대표, 이윤석 이노CSR 대표,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팀장,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파트너, 전민구 영국표준협회(BSI) 그룹 코리아 이사,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이상 가나다순). 정유진·권보람·강미애·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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