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화)

“아이들은 씨앗… 나무로 잘 크도록 돕는 게 내 역할”

안면기형 어린이 재건 수술 돕는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카스텔바작’

故요한 바오로 2세 무지개 예복 디자인

“아이들 미소 찾아주는 것만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 바뀔 수 있어”
소아암 홍보대사 등 사회공헌 활발

레이디가가의 청개구리 코트, 고(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무지개 예복을 디자인한 프랑스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 카스텔바작(Jean-Charles De Castelbajac·66·사진)이 지난 3일 한국을 찾았다. 그가 방일(訪日) 일정을 조정해가면서까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안면기형 어린이의 재건 수술을 지원하는 국제 의료 NGO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Operation Smile Korea)’ 홍보대사 임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 4일 학동의 한 아트갤러리에서 카스텔바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양수열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양수열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림 하나 그려도 될까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가 깜짝 제안을 했다. 흰색 몽땅분필이 몇 번 벽 위를 오가더니 흉터 자국을 가진 소년의 옆얼굴이 나타났다. 몇 번의 손길이 더해지자 소년의 얼굴은 금세 환한 미소로 뒤덮였다. 등 뒤에는 작은 날개가 솟았다. 카스텔바작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인 천사 그림이다.

“저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천사를 그려왔어요. 하나하나 모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이죠. 이 천사는 안면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미소를 선물해주는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예요. 상처가 있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죠.”

1982년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윌리엄 매기(William P. Magee)와 그의 아내 캐슬린(Kathleen)이 설립한 오퍼레이션 스마일은 전 세계 35개국에 지부를 둔 의료봉사단체다. 60여 개 국가에서 구순구개열 등 안면기형을 가졌거나 화상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성형·재건 수술을 돕고 있다. 2010년 문을 연 한국지부는 베트남, 중국, 네팔 등지에서 1700여 명의 아이에게 수술을 지원해왔다.

카스텔바작과 오퍼레이션 스마일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6월 그의 개인 전시회를 관람한 송신혜 사무총장의 요청에 카스텔바작은 흔쾌히 ‘OK 사인’을 보냈다.

“우리 사회는 점점 어렵고 힘들게 변하고 있어요.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죠.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손가락질을 받거나 배척당하니까요.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의 사업 내용을 듣고 단번에 홍보대사직을 수락했습니다. 환한 미소를 찾아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인생에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한국은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나라예요. 삼촌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고, 저 역시 42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이곳 문화와 정서에 푹 빠졌죠.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예술가는 세상을 이끄는 사람, 사회공헌 당연해

카스텔바작은 앞서 20년간 유니세프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며 자신의 작품 50여 점을 자선경매에 기부했다. 프랑스 소아암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어린이 지원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매우 엄격한 군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게다가 기숙학교에 다니는 11년 동안 1년에 한 번 정도만 부모님을 볼 수 있었어요. 50여 년 전 외롭고 우울했던 소년은 상상력과 표현력을 발휘해 예술가로 성장했습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은 이처럼 늘 상상 이상입니다. 15년 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빈민가의 한 소년이 쇠막대기 한 자루로 정말 멋지게 공을 치고 있었어요. 그 아이가 세계적인 골퍼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아이들은 씨앗이에요. 싹이 움터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죠.”

카스텔바작의 사회공헌은 어린이 지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2008년에는 차별금지운동을 벌이는 ‘세계스마일리협회(Smiley World Assosiation)’에 의류 수익금을 기부했고, 2010년과 2012년에는 국제인권운동단체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에 디자인을 기부해 후원 물품 제작에 활용하도록 했다.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함께 직접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그 경매 수익금을 ‘카를라브루니 재단(Carla Bruni Foundation)’, 암 연구 등에 기부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는 왜 이토록 사회공헌에 열정적일까. 카스텔바작은 “공익적 활동은 예술가의 의무”라고 답했다.

“예술가에게는 ‘독선(Dogma)’이 없어요. 그림, 음악, 연기 등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죠. 제가 1997년 교황청의 의뢰로 ‘세계 청소년의 날’ 기념미사에 쓰일 예복을 무지개 색으로 디자인한 것처럼요. 그 예복뿐만이 아니에요. 저는 제 그림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믿어요.”

카스텔바작은 이후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의 홍보대사로서 자선화보 촬영, 자선경매 작품 기부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방한 중 디자인한 로고와 캐릭터 각 1점은 캠페인과 어린이 마스크 등 후원물품에 활용된다. 사업 현장 방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직접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홍보대사 활동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특히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미래 세대를 위해 무언가 하는 일은 절 언제나 설레게 하거든요. 히어로 영화의 ‘스파이더맨’처럼 뭐든 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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