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고통과 상처가 사회적인 것이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발생합니다. 비영리는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고통에 공감하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김승섭 서울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
지난달 30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2024 엔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비영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참사 생존자 트라우마 연구 경험 등을 소개하며 인종·성별·성소수자·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가 받는 차별 속 ‘이 시대의 비영리의 역할’에 대해 역설했다.
엔포럼은 사회혁신리더 양성 교육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동문으로 구성된 엔스퀘어가 주최하고 아산나눔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로, 올해 10회를 맞이했다. 2024 엔포럼의 주제는 ‘비영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함께 만든 변화, 함께 만들 변화’다. 이날 포럼에는 사회적 기업, 비영리 단체 등 소셜섹터에서 활동하는 4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의 수용인원인 340명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이날 행사에서는 비영리의 본질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자세 등에 대해 논의가 이어졌다. 1부에서는 영리 기업인 ‘파타고니아 코리아’와 비영리 조직 ‘러블리페이퍼’가 함께 ‘가치 있는 일을 하는 태도(닥친 일에 내몰린 본질과 가치의 상실, 가치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리기업으로서 ‘지원’한다기보다는 ‘연대’하는 마음으로 비영리와 함께 환경보호에 나서겠습니다. 낙숫물이 모여 바위를 뚫듯, 단체와 연대라는 이름의 물방울을 계속해서 떨어뜨릴 겁니다.” (김광현 파타고니아 코리아 환경팀장)
김광현 파타고니아 코리아 환경팀 팀장은 환경 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한다’는 표현을 강조했다. 김 팀장은 파타고니아 코리아가 매출의 1%를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1% For The Planet’ 캠페인을 소개하며 “세종보 농성 지원, 설악산 케이블카 시위 등 지역 환경 단체의 현장 이야기를 듣고 프로그램을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블리페이퍼의 목표는 ‘5년 뒤에 망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해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 구축돼야 합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다음 발표에 나선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영리에서 비영리 조직으로 전환한 경험을 소개했다. 기 대표는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보고 이분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2013년 창업한 러블리페이퍼의 초기 사업은 어르신들이 수거한 폐기박스를 더 비싸게 구매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드는 모델이었다. 기 대표는 사업을 운영하면서 어르신의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사회적으로 지지의 필요성을 느껴 법과 제도의 개선에도 힘을 썼지만, 영리 조직으로의 한계를 느껴 비영리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기 대표는 “기존에는 소수의 어르신을 지원했다면 지역사회 차원에서 돕기 위해 ‘자원재생활동가 지원 센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며 “앞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센터를 2026년까지 5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포부를 밝혔다.
2부에서는 ‘우리를 버티게 한 힘, 그리고 우리를 나아가게 할 힘’을 주제로 구정혜 YWCA 사무총장은 YWCA의 1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 소개했다. 구 총장은 “지난 100년 동안 역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조직의 목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정의했다”면서 “구성원들과 목적과 신념을 공유하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의·평화·생명 운동의 사명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김정태 MYSC 대표는 국제 NGO 종사자에서부터 임팩트 투자자까지의 경험을 말했다. 김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면서 “영리나 비영리의 구분 없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는’이라는 주제로 ▲세계 최초 청각장애인 아이돌 ‘빅오션’을 기획한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선거투표 가이드북을 제작한 조현익 스튜디오 하프-보틀 그래픽 디자이너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의 이은희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엄윤미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이번 포럼을 통해 소셜섹터 관계자들이 기존 비영리를 넘어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으면 한다”며 “여러 단체가 ‘나와 같은 상상’을 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주파수로 상상’하는 사람들을 만나 사회변화의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기용 더나은미래 기자 excuse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