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기업과 사회] 연간 5조원 기업 기부가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한국의 기업 기부금은 2018년에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10년의 총액은 48조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10년 동안 3조원에 이르는 돈을 기부했다. 2022년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은 37개나 된다. 이렇게 많은 기부금은 어떤 임팩트를 주고 있을까?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자선적 기부 vs. 임팩트 기부

어느 기업이 10억원으로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 많은 아이가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지원이 끊어지면 아이는 다시 굶게 된다. 허기를 채울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기업은 같은 금액으로 취약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와 소셜벤처를 지원했다. 부모가 감옥에 가게 된 수용자 자녀 단체, 이주배경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 부모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직 등이다.

한국 기업은 주로 자선적 기부를 한다. 생색도 나고 홍보하기도 좋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거나 어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임팩트기부’가 필요하다. “기부자들은 노숙자 쉼터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노숙자 문제를 끝내기를 원한다.” 지난 2017년 9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린 글 중 일부다. 글로벌 기업과 재단들은 진짜로 사회를 바꿀 기부를 시도하고 있다.

2016년 ‘구글 임팩트 챌린지 코리아’는 한국의 소셜 섹터를 들썩거리게 했다. 세상을 바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모받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챌린지는 기존의 기부와는 달랐다. ‘사회문제 해결’을 정면으로 내세웠다. 수혜자 지원이 아니라 ‘비영리단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했다. 기부 시장에서 소외된 ‘작은 단체’들이 선정됐다. ‘성과 측정’은 까다롭지만 기부금 사용과 활동은 ‘단체의 자율’에 맡겨졌다.

복지 기부 vs. 권리 옹호 및 생태계 기부

아름다운재단의 연구보고서 ‘한국 기부문화 20년 조망’에 따르면, 우리의 기부 분야 중 자선단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최소 44%에서 최대 99%나 된다. 복지 편중이 심하다. 한국 기업은 권리옹호 활동에 잘 기부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의 문제를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접근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누구나 존엄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장애인, 아동, 이주민,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는 늘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

생태계를 만드는 기부가 필요하다. 오래 걸리고 금방 성과를 거둘 수는 없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아동학대가 이슈가 될 때 학대 아동쉼터에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아동학대를 아동의 권리 관점에서 다루는 전문가와 단체를 양성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수의 소액 기부 vs 빅뱃(Big Bet)

한국 기업은 주로 소액, 다수, 단기의 기부를 한다. 홍보나 사업적 이익, 관계 때문에 기부를 하면 많은 곳에 쪼개 기부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빅뱃(Big Bet)이 화제다. 빅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베팅하는 기부를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부부가 만든 게이츠재단은 전세계 소아마비 종식을 위해 20년간 8조에 달하는 돈을 기부했다. 이후 소아마비는 사실상 사라졌다. 맥아더 재단은 ‘100&Change’라는 공모전을 한다. 중요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무려 1억 달러를 준다. 아마존 창업자의 전 부인 매켄지 스콧의 기부는 신선하다. 많은 기부자가 관심두지 않는 이슈와 단체에 조용히 기부한다. 역사적으로 소외된 인종, 성, 장애, 계층 이동, 민주주의 등을 위한 비영리단체에 기부한다.

유행에 따른 기부 vs. 전략적 기부

한국 기업들은 유행처럼 기부한다. 언론이 주목하는 이슈에 집중한다. 기업의 목적, 미션, 업의 성질에 따라 기부하는 흐름이 커져야 한다. 소비재 기업은 소비에서 소외되는 장애인이나 노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 제조업은 비중이 커지는 이주 노동자와 이주배경 아동의 문제를, IT기업은 기술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을, 식품기업은 굶는 아이들의 인권에, 모빌리티 회사는 장애인 등의 이동권 문제에 집중하면 어떨까?

전략적 기부가 필요하다. 기부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수단을 다양화하며, 목적에 따라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 수혜자와 관련자들의 참여 방법을 모색하고, 기여가 미칠 임팩트를 측정·평가해야 한다. 한국 기업 중에는 기부의 내역, 용도, 목적과 기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부의 임팩트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임팩트 리포트를 내는 기업은 거의 없다. 임팩트를 측정하는 경우에도 수혜자의 숫자와 금액을 평면적으로 나열한다. 500명의 아이에게 도시락을 주는 일과 한 곳의 단체를 지원하는 일의 임팩트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임팩트는 범위, 깊이, 기간, 성과 등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

기부와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기업답게 지속가능한 기부를 해야 한다. 무상지원보다 대출이 때론 좋은 방법이 된다. 소셜벤처에 투자하거나 인내자본으로 기능하는 임팩트 투자도 기업의 몫이다. 혼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기업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이니셔티브를 만들거나 공동행동을 한다. 한국 기업들은 제각각이다.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를 추구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사회변화를 꾀하는 비영리단체를 발굴, 지원하는 공모사업을 시작했다. 2020년까지 207개 단체에 400억원이 지원됐다. 카카오 김범수 전 의장은 브라이언임팩트를 설립해 빅벳을 실천하고 있다. ‘스케일업’이 필요한 비영리단체에 최대 수십억원을 지원한다. SK행복나눔재단은 ‘세상 파일’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질문을 던지고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이동이 빈번한 장소에서 휠체어 사용자를 보기 어려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휠체어 이동정보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렇게 기부의 목적과 방법, 흐름에 변화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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