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벤처스 ‘월간 클라이밋’ 개최
韓 농업의 미래, 로컬기업에 달렸다
기후기술 스타트업, 해외로 나가야
“국내에서는 전 국민이 소비하는 농산물 양의 25%밖에 생산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죠. 한국의 기후·지정학적 조건과 경제적 기회비용 때문입니다. 한국 농업 기술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매우 선진적입니다. 다만 해외시장 진출 면에서 아쉽습니다. 국내 식량 수급의 75%를 담당하는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 중 하나입니다.”(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30일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농식품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가 ‘기후위기시대, 농업의 본질적 문제를 겨냥하라’를 주제로 개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농업 부문 투자자와 연구원, 스타트업 관계자 등이 모여 투자 동향과 기술 현황, 스타트업의 과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줄어든 농업 인구, 서비스가 채운다
이날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기후위기 시대의 한국 농업의 구조변화와 스타트업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남 소장은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정부 주도로 모든 시스템을 정비해 산업 구석구석에 정부 영향이 대단히 크다”며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1962년도에 수많은 농업 기관과 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이 기관들이 여전히 농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남 소장에 따르면 오랫동안 유지된 농가지원 정책과 기관 영향력은 스타트업이 농촌 현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었다.
남 소장은 “그럼에도 농업 스타트업에는 기회가 있다”며 “농업 시장도 농업서비스 중심으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운, 육묘, 모내기 등 농사 일련의 과정에서 농민이 직접 하는 건 많지 않고, 외부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며 “이런 변화가 구조화되는 가운데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 소장은 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로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업의 특성상 전국에 사업장이 분산돼 있어 어떤 서비스든 지역으로 전달되려면 비용이 들고, 중간 역할을 할 로컬기업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농업 인구가 감소하면서, 농민을 대신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로컬기업은 늘어날 것”이라며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는 이 로컬기업의 성패에 달렸다”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농업 스타트업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기술 스타트업 3곳의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김민석 에이아이에스(AIS) 대표는 “매일매일의 날씨가 다르고, 기후변화도 덮쳤지만, 재배 방식은 지난 수십년 동안 동일했다”며 “생산에 대한 불확실성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AIS는 기후와 작물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파종일, 효율적인 물·양분관리 방법, 예상되는 생산량 등 최적화된 작물 생육·재배 솔루션을 제공한다. 김 대표는 “초고령화에 진입하면서 농작업을 위탁하는 ‘농작업 대행’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AIS는 대행사업하는 전국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하고, 국제농업박람회 등에 참가해 해외 고객 유치에도 나설 것”이라고 했다.
영농형 태양광 솔루션을 개발하는 엔벨롭스의 윤성 대표는 “태양광은 전 세계적으로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설치 진행 속도가 더디다”며 “농경지에 일반태양시설 설치를 제한하는 규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경지를 전용할 경우 우려되는 식량안보 문제, 주민 반발 등이 이유다. 엔벨롭스가 개발한 영농형 태양광은 농경지에 태양광 패널을 두되, 바닥에 직접 설치하지는 않는 방식이다. 토양에서 떨어진 공중에 세워놓는다. 패널 하부에서는 작물을 재배해 토지이용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윤성 대표는 “기존 농지 기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태양광 발전이 가능해 사회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발란스는 미생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연작지 토양을 초작지 수준으로 회복하고, 연작한 땅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신 대표는 농업 스타트업 분야의 인재 유출에 대해 지적했다. 신재호 대표는 “성장한 연구 인력이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지 않고, 농업 분야에 남도록 하기 위한 비용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30명 규모의 집단을 구성해 유지,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농업에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이날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농업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에는 연사들과 최재욱 법무법인 디라이트 파트너,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6인이 참여했다. 이주량 연구위원은 “각국 정부, 글로벌 기구 등이 내놓은 정책이 정말 많다”면서 “글로벌 정책시장을 타겟팅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업 스타트업은 정책 시장과의 균형, 글로벌 시장과의 관계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와 투자사도 국내 농업 스타트업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재욱 파트너는 “지난해 농업 스타트업 전반에 대한 투자는 44% 감소했지만, 기후기술에 대해서는 오히려 늘었다”며 “농업 쪽에서도 기후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남재작 소장은 우리나라 농업 부문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짚었다. 그는 “농업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뚜렷한 지향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고령화, 기후변화, 식량 위기 등으로 해방 이후 유지되던 농업 시스템이 전환점에 있는데, 농업의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농업은 5000만 인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산업이고, 10년 내에 생태계 자체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지금은 비전과 가이드를 설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이어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데 사람들은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번 행사는 ‘월간 클라이밋’의 일환으로 개최했다. ‘월간 클라이밋’은 매월 시의성 있는 기후 주제와 관련한 산업 동향, 유망 스타트업 사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소풍벤처스가 주최하고 카카오임팩트재단이 후원한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