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5일(화)

“15년 장기 사업하는 이유? 사람까지 변화하려면 시간 필요하기 때문”

한국 월드비전 국제개발사업
1997년 스리랑카 ‘섬머 아일랜드’ 식수사업 물탱크·정화시설 건설해 깨끗한 물 공급
주민 스스로 학교 만들고 길 내는 등 변화
“학교·화장실 만들어 달라”던 브룬디 교사들 사업 5년째, 상점 수익으로 장학금 지원해

“흙먼지 날리던 땅이었는데, 이젠 집집마다 텃밭에서 고추, 가지, 호박을 길러요. 아이들은 물 길으러 가지 않고 학교에 다닙니다. 꿈만 같던 일이 현실이 된 거지요. 지금 태어난 애들은 예전 모습을 상상도 하기 어려울 거예요.”

스리랑카 남쪽 끝, 작은 귀퉁이에 있는 ‘섬머아일랜드’. 아지스 페레라씨는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스리랑카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이 지역엔 전염병이 끊이질 않았다. 먹을 물도 부족해, 농사는 꿈도 못 꿨다. 17년 전인 1997년, 한국 월드비전이 들어온 후 길고도 느린 변화가 시작됐다. 지역 8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식수 사업이 진행됐다. 마을 사람들이 동원돼 지역 곳곳에 펌프가 뚫리고, 커다란 물탱크와 식수정화시설도 들어섰다. 주민들을 중심으로 ‘식수 위원회’도 꾸려졌다. 사용료를 걷어 식수시설을 관리하고, 빈곤 가정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물’과 함께 다른 변화도 시작됐다. 농업용 우물과 관개수로가 설치되고,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농업기술과 작물 보관법 교육이 수차례 이어졌다. 학교 건물이 세워지고, 학교는 아이들로 채워져 갔다. 개울로 가로막혔던 마을과 마을 사이를 주민들이 직접 흙으로 메워 길을 냈고, 힘을 모아 지역의 열악한 집들을 고쳐나갔다. 2012년 무려 15년 동안 계속된 사업을 종결한, 월드비전 스리랑카 ‘섬머아일랜드’ 지역 변화의 현장이다.

월드비전 국제사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현장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왼쪽부터 이창표(39) 국제사업본부 과장, 최순영(42) 국제사업본부 과장, 박해인(29) 국제사업본부 간사, 백진(34) 지역개발팀 과장, 전지환(42) 국제구호팀장.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 국제사업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현장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왼쪽부터 이창표(39) 국제사업본부 과장, 최순영(42) 국제사업본부 과장, 박해인(29) 국제사업본부 간사, 백진(34) 지역개발팀 과장, 전지환(42) 국제구호팀장. /월드비전 제공

◇최소 15년, 지역사회와의 ‘긴 호흡’

“변화엔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을 변화시키기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월드비전 국제개발사업 담당자들의 말이다. 3~5년 프로젝트식이 아닌, 오랜 기간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변화를 일구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성장 뒤에도 월드비전의 ‘긴 호흡’이 함께했었다. 1950년 월드비전의 첫 번째 지원국이었던 우리나라가 1991년 지원을 끝내기까지 무려 41년 동안 사업이 이어졌다. 이제 한국 월드비전은 전 세계 33개국 126개 사업장에 ‘긴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1988년 시작한 방글라데시 선더번 사업장, 2000년대 초 시작한 몽골·방글라데시·케냐 사업장 등은 15년 동안 해온 사업을 끝내고 곧 지원이 종결된다.

“3~4년 진행하고 끝내는 프로젝트성 사업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웁니다. 15년 후 월드비전이 나가고 나서, ‘어떤 모습일까’를 그리며 준비하는 거죠. 지속성에 기반을 둔 장기 사업 위에, 코이카 등의 3~4년 프로젝트성 사업이 더해지기도 합니다.”(백진 지역개발사업팀 과장)

교육사업을 담당하는 박해인 간사는 “5년 된 부룬디 사업장에 방문하니, 이전엔 ‘학교 언제 세워주느냐’,’화장실은 안 만들어주느냐’고 보이는 부분만 이야기하던 교사들이 스스로 운영위원회를 꾸려 만든 학교 개발계획도 보여주고, 텃밭을 일궈 학생들 급식에 내놓기도 하고, 상점을 마련해 얻은 소득으로 학생들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국제개발_월드비전해외사업현황_2014

◇’더욱 큰 변화’ 만들기 위해 전문성 강조해

올해 23년을 맞은 한국 월드비전의 국제개발사업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개발사업팀 내에 ‘전문 사업팀’을 신설한 것이다. 백진 지역개발사업팀 과장은 “이전엔 한 직원이 2~3개의 국가를 맡아 식수와 보건, 교육, 소득증대사업 등 한 나라에서 진행하는 모든 업무를 총괄하다 보니 직원들 업무가 대체로 비슷했다”며 “분야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008년부터 사업팀을 꾸려야 한다는 논의와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사업팀은 각 분야의 ‘굵은 통뼈’를 자랑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월드비전 국제사업본부 ‘보건전문가’인 최순영 과장은 국제보건 분야 경력만 올해로 16년째다. 1998년에 발을 들인 이후 월드비전과 국제적십자사에서 유고슬라비아, 요르단, 이라크, 케냐 등 ‘긴급 보건 지원’이 필요한 세계 긴급구호 현장 곳곳을 누볐다. 반평생 긴급구호 현장을 누벼온 전지환 국제구호팀장이나, 학부 전공부터 석·박사에 이르기까지 ‘농학’을 전공하고 농업 분야 국제개발의 한길을 걸어온 이창표 국제사업본부 과장 역시 알아주는 ‘농업 전문가’다. 이창표 과장은 “농업이야말로, ‘식량’ 문제에서부터 영양, 소득 증대에 이르기까지 개발도상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영농법 교육에서부터 보관 방법, 유통 구조, 시장 접근성 등 각 현장에 맞게 다양한 단계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자연농법’을 중심으로 현지에 맞는 방법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했다. 최순영 과장은 “우간다 월드비전에선 모자 보건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오래 해왔는데, 그 결과 모자 보건 관련 정부 서비스를 모니터링하는 현지 NGO도 만들어지고, 우간다 북부지역에선 가정 내 아동 건강을 위한 식량 안보와 가정폭력 관련 조례가 제정되기도 했다”며 “옹호(Advocacy) 활동도 강화해, 후원 사업이 사업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정부를 움직이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전보다 회의 시간이 훨씬 길어졌어요(웃음). 한 사업장을 두고 전문가 여럿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각자 보는 지점도 다르고 접근 방법도 다르니까요. 언젠가 우리 일이 없어지는 게 목표입니다.”(최순영 과장)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