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통제사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SF 미스터리 장르로 풀어낸 소설집. 엉망이 된 기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날씨 통제사의 이야기인 ‘벙커가 없는 자들’, 태평양에 실재하는 쓰레기 섬을 시체 섬으로 비틀어 표현한 ‘그레이트 퍼시픽 데드 바디 패치’,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던 인류가 파멸한 이후의 세계를 다룬 ‘비지터’ 등 저자 특유의 재치와 필력이 흥미진진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주노동자, 퀴어 등 소수자의 이야기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함께 수록돼 있다. 총 8편의 단편은 독자를 각기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일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세계를 경험한 독자들은 이윽고 섬뜩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작가가 그려 낸 그저 허구의 세계가 아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음을.
최정화 지음, 창비교육, 1만5000원, 252쪽
유류품 이야기
가방 123개, 옷 258벌, 신발 256켤레…. 10·29 참사 유실물센터에는 현장의 얼룩이 그대로 묻은 물건들이 늘어져 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라도 보여주듯 유실물은 검게 때가 타고 찌그러졌다. 검은 얼룩으로 물든 건 유실물뿐만이 아니다. 대형 참사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는 것 같지만, 이 또한 결국 아픔을 덮은 채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려보내야 할까?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선행돼야 할까? 저자는 재난 이후, 회복의 과정을 얘기한다. 그는 미국 9·11테러, 아이티 대지진 등 인류를 충격에 빠뜨린 대형 참사 현장에 늘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장에서 실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 매일 죽음을 목도하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상처입은 이들에 큰 울림을 준다.
로버트 젠슨 지음, 김성훈 옮김, 한빛비즈, 1만9800원, 408쪽
미래가 있던 자리
‘지속가능성’이 근대 이전의 중세시대에서 유래한 개념이라면 믿겠는가. 어부조합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규정을 만들고 지켜왔던 보덴호 사례, 당대 경제호황의 수혜자인 거부(巨富) 야코프 푸거가 사회공헌을 위해 세운 사회주택단지 ‘푸거라이’, 물살이 센 강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 시민의 모금으로 건설된 아비뇽의 생베네제 다리까지. 근대로 오면서 이러한 사례가 각각 ‘공유경제’ ‘기부’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됐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흔히들 중세시대라 하면 가난·전쟁 등 암흑기를 떠올리지만, 앞선 사례들은 불평등 사회에 사는 현 인류에게 되려 길잡이가 돼 준다. 중세인들은 이미 약 1000년 후의 미래를 내다봤던 것이다.
아네테 케넬 지음, 홍미경 옮김, 지식의날개, 2만2000원, 416쪽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