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Z의 휠체어] 건강하게 살 권리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에 간 적이 있다.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는 나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지민아, 너는 수영 어떻게 해? 휠체어에 앉아서 해?” 나는 상당히 황당했다. 철과 쇠로 만들어진 휠체어가 물에 뜰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친구를 이해한다. 초등학생이 ‘운동하는 지체장애인’을 볼 일은 패럴림픽을 빼고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이 있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퍼스널트레이닝(PT),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은 더욱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지체장애인을 보기 쉽지 않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지체장애인이 운동할 수 있는 장소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입구가 완만하고, 엘리베이터가 있고, 장애인 화장실과 탈의실이 있는 운동 시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설령 찾는다고 해도 ‘장애인은 사고 위험이 더 크고,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질 수 없다’라며 등록을 거부당하기 일쑤다. 고의가 아닌 이상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내부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선 시설이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또 장애인이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편견 아닌가?

사람들이 묻는다. “장애인 복지관을 이용하면 되지 않나요?” 2016년 나는 서울의 모 장애인 복지관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2년 이상을 기다렸다. 장소와 인력은 극히 한정돼 있는데, 수요자는 너무나 많다. 사설 센터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렇다 보니 간신히 등록에 성공하면 멀리 이사를 하더라도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며 다니던 곳에 다닐 수밖에 없다. 대기를 하는 동안에는 운동할 수 없어 건강이 악화한다. 거대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나는 체육 시간에 항상 ‘깍두기’였다. 피구 경기를 할 때 심판을 보고, 계주에서 기권하고, 체육 실기 평가에서는 항상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고의적인 배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경기에 참여하기 어려우니 심판 역할을 주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학교로서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육 활동에 관한 관심이 사라져갔다.

체육대회 날도 즐겁지 않았다. 게임 특성상 팀 전으로 진행되는 활동이 많다 보니 소외되는 일이 많았다. 선생님들은 나에게 역할을 주기 위해 애쓰셨고, 만년 응원 담당이 됐다. 응원도 한 두 번 해야 즐겁지, 매번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응원만 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할 것이다. 어쩌다 계주에 참여했던 날, 우리 반은 하위권을 차지했고 ‘너 때문에 졌다’라며 나를 욕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나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체육대회를 불참하게 됐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체육 수업에서 즐거웠던 기억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체육 수업이다. 장애 학생 건강 체력평가(PAPS-D)나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하는 통합체육 수업 안내서 등의 정책과 대안이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수업을 듣는 처지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많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언제나 체육 시간을 선생님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말로는 ‘통합체육’을 지향하지만, 학교로서는 장애 학생끼리 체육 수업을 듣게 하거나 비장애 학생과 함께 할 때 장애 학생들을 미시적으로 배제하기 훨씬 쉽다. 이러한 학창 시절을 지낸 장애인은 성인이 돼서도 운동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싫어하게 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체장애인 중에는 불균형한 체형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앉아있고 덜컹거리는 도로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 통증을 달고 산다. 걷지 못해 늘 운동 부족을 겪는다. 누구보다 운동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이들을 위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없다. 하루빨리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우리 주변에서 운동하는 장애인을 더 쉽게, 많이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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