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주차장. 휠체어를 탄 남성 앞에 영국의 프리미엄 택시로 알려진 ‘블랙캡’이 멈춰 섰다. 검은색 대형 세단에서 내린 운전기사는 뒷좌석 문을 열고 하단에서 설치된 휠체어 경사로를 꺼냈다. 휠체어를 탄 승객은 기사의 도움을 받으며 경사로를 올라 차량에 탑승했다. 기사는 휠체어를 안전벨트로 고정한 뒤 운전석으로 옮겨 운행을 시작했다.
국내에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UD)이 적용된 블랙캡 택시가 도입됐다. 코액터스·이큐포올·닷·협동조합 무의 등 소셜벤처 4곳이 ‘모두를 위한 택시’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았다. 블랙캡은 현재 총 2대로 지난 20일부터 서울 전역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 서비스 ‘고요한M’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일반 택시의 두 배 정도다.
블랙캡은 차량의 트렁크를 개조해 운행하는 기존 장애인콜택시와 달리 비장애인 승객과 마찬가지로 차량 옆으로 탑승할 수 있다. 차를 인도로 옮겨 세우지 않아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승·하차가 가능하다. 내부 공간이 확보 돼 휠체어 탑승자와 보호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블랙캡 차량을 마련한 건 코액터스다. 코액터스는 2018년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고요한택시’ 서비스를 출시했고 지난해부터 여객자동차 운송플랫폼사업 면허를 받아 ‘고요한M’을 운영 중이다. 고요한M의 블랙캡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몫은 소셜벤처 닷이 맡았다. 닷은 차량 내부에 시각장애인용 촉각 디스플레이 ‘닷 패드’를 설치했다. 닷 패드는 시각장애인 승객에게 경로와 예상시간을 손끝과 음성으로 전달한다.
청각장애인 승객을 위한 기술은 이큐포올의 아바타 수어기술로 커버했다. 스크린을 통해 운행 정보를 얻거나 운전기사와의 소통을 돕는 기술이다. 장애인 협동조합 무의는 탑승객에게 서울시내에서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식당과 카페, 화장실 등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는 “시장 반응을 지켜보면서 블랙캡 도입 수를 점차 늘려갈 것”이라며 “승객이 장애인바우처 혜택을 통해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유니버설 디자인 택시인 블랙캡의 국내 상륙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민간의 영역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현행 복지제도 안에서 택시서비스의 이동권을 확대하기에는 예산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고 낮은 보급률과 긴 대기시간, 지역 간 이동제한 등의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송민표 대표는 “민간 택시 서비스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UD 택시를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의 이동권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UD 택시 서비스의 확장을 위해선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해외에선 블랙캡과 같은 UD 택시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국에선 장애인, 참전 연금 수령자 등에게 ‘택시카드(Taxi Card)’라는 바우처를 제공한다. 블랙캡을 포함한 UD 택시에 탑승할 때 1회 이용 시 기본 2.5파운드(약 4000원)를 지원받는다. 일본의 경우, UD 택시인 ‘JPN 택시’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지난 2017년 ‘2020년 도쿄 패럴림픽’ 개막에 맞춰 ‘차세대 택시 보급 촉진사업’을 시행하고 그 일환으로 UD택시를 구매하는 운송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했다. 지자체별로 금액의 차이가 있지만, 최대 100만엔(약 97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도쿄 택시 10대 중 2~3대는 JPN 택시로 운행되고 있다. 뉴욕에서는 이미 지난 2013년 법을 만들어 일반 택시회사가 휠체어째로 들어가는 택시를 2020년까지 50% 보유하도록 했다.
‘모두를 위한 택시’ 서비스가 대한 정부 지원으로 자리를 잡으면 UD 차량에 대한 시장이 형성돼 더욱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국내에서도 UD 택시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UD택시 서비스를 위한 차량 개발에 뛰어드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