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의사결정 과정에서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요소 중 하나가 회사의 부채(負債)다. 회계적으로 부채는 자본과 함께 자산을 구성한다. 흔히 부채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늘날의 경제는 부채를 질 수 있는 것도 능력으로 본다. 부동산이나 자동차 구입 같은 큰 소비를 할 때는 물론이고 몇만원, 심지어 몇천원짜리 물건도 할부로 구매하는 마당에 부채는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단 적절히 관리한다면 경제 활동에 활력을 부여한다.
또 하나, 창업자가 어떤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지도 묻곤 한다. 특히 친하게 지내는 창업자들이 있는지, 사업상의 멘토가 있는지를 묻는다. 흔히 네트워크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이 관계들을 나는 다른 말로 관계적 부채라 부른다. 자본적 부채를 조달하는 것이 재무전략에 있어서 중요하듯이 관계적 부채를 얼마나 어떻게 쌓을 것인지는 정보나 기회를 양과 질을 좌우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이를 약한 연결 이론(Weak Tie Theory)이라 부른다. 약한 연결 이론에 의하면 나에게 사회생활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가족, 연인, 절친한 친구 등 가까운 관계(strong ties)의 사람들보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weak ties) 사람들이다. 약하게 연결된 사람들은 내 주변과는 다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아닌 필요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이론적 설명이다.
창업가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부탁도 어려워하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려는 창업자와 그렇지 않은 창업자. 어떤 성향이 사업에 더 유리할까? 나의 결론은 빚지는 것, 즉 부채감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을 위해서 무조건 금전적 빚을 지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돈을 자주 빌려주거나 빌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부채이니 밑도 끝도 없이 인생은 한방이라는 관점으로 내질러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기준은 문제 해결을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모두가 부채 하나 없이 자기 자본만으로 구성된 회사를 꿈꿀지 모르지만, 그건 말 그대로 꿈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적정한 부채는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거나 사업기회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본 부채에도 이자율이 다르듯 관계 부채 역시 그 질이 다르다. 가급적 사업상에 도움이 될만한 분들로 점점 관계 부채를 형성해 나간다면 필요한 시점에 의미 있는 정보나 기회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관계 부채가 도움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질 좋은 관계 부채를 쌓는 법이란 결국 양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또 부채는 사업의 본질이 아니다. 그래서 부채비율은 관리되어야 한다. 관계적 부채도 마찬가지다. 부채를 해소하느라 업무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수준이면 족하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창업자의 인생은 부채 인생이다. 투자도 보조금도 모두 빚이다. 동료의 소중한 시간과 인생을 우리 회사에 쏟아붓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부채다. 하지만 재무적이든 관계적이든 부채를 언제, 얼마나, 어떤 조건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곧 우리 회사의, 또는 창업가의 레버리지를 의미한다. 괜히 부채가 자본과 함께 자산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져야 한다. 달리 말하면 신세를 지고 또 신세를 지워야 한다. 다만 동료의, 지인들의, 파트너 기업들의 사소한 호의를 잊지 않고 어김없이 돌려줄 수 있는 부채감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하다. 사실 상대가 나에게 빚을 내어주는 것은 서로 신뢰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관계를, 기회를 최대로 레버리징하여 변화를 만들어내는 창업가들을 위해 소풍의 올여름 굿즈는 부채[扇]를 고민하고 있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