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나 미디어에서 유명인이나 일반인이 자신의 가방 속 물건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방 속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까? 그 속을 살펴보면 소비 트렌드를 알 수 있고, 조금씩 달라지는 일상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핸드크림을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이제는 손 소독제가 추가됐다. 겨울철 핫팩이 있던 자리는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갈 차례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 텀블러 외에 생수병도 하나씩 넣기 마련이다. 다 쓴 물건을 다시 채우고, 낡은 것을 새로 바꾸면서 새삼 ‘작은 전자 기기들과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이 많은 물건을 어떻게 매일 들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편리함이 가져온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이제 인류는 ‘플라스틱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류를 향한 플라스틱의 역습이 시작됐고 이제는 대안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부터 투명 페트병을 별도 분리배출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기업과 상품이 많아지며 구매도 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우시산’은 작년에 페트병 6개로 만든 원사가 들어간 맨투맨 티셔츠로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의 789%를 달성했다. 업사이클링 전문 브랜드 ‘젠니클로젯’은 천막 자투리로 만든 어닝 백, 페트병을 이용한 펫 백 등 다양한 상품들로 완판 행진을 이어간다. 비닐은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47만톤이 버려진다고 하는데 이러한 비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핸드메이드 카드 지갑을 만드는 예비 사회적 기업 ‘두에코’도 있다.
이런 기업들의 상품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플라스틱을 줄이고 대체하는 방법을 찾아나서야 한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플라스틱 대체재를 개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기존 화장품 용기에 플라스틱 사용량을 70% 낮춘 종이 용기를 개발했다. 현대리바트의 경우는 가구를 운송할 때 필요한 완충재로 100% 재생 종이를 재료로 한 친환경 ‘허니콤’을 사용한다. 가구 업계에서 스티로폼을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CJ제일제당은 생분해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로 알려진 ‘PHA’에 집중한다. 아쉬운 점은 PHA의 경우 기존 재활용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고, 생분해 환경을 충족해야 할 뿐 아니라 생산 비용이 높다는 문제가 있다.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패키지를 찾는 것이 더 필요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용기를 경량화하거나 생분해 플라스틱을 찾는 방법,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플라스틱에 대응한다. 하지만 아이쿱생협의 접근은 다르다. 아이쿱생협은 연간 118억개의 페트병이 발생하는 한국에서 플라스틱병을 사용하지 않는 생수 공급에 나섰다. 재생 가능한 멸균 종이팩과 사탕수수를 소재로 한 뚜껑을 사용하는 ‘기픈물’은 환경을 생각하는 조합원들의 요구와 실천을 뒷받침하려는 결과물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상품의 위력을 알고 있다. 혁신적인 상품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소비자들을 보면 생산이 경제생활의 변화를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상품에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18세기에, 소비자들은 노예 노동으로 생산되는 설탕을 보이콧함으로써 노예 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은 환경문제에 민감하고 이것을 소비로 표현한다. 내 주변을 넘어 전 지구적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해 기꺼이 ‘돈쭐낼’ 준비가 되어 있다.
오래된 가방을 정리한다. 내가 앞으로 사용할 가방은 어닝 천이나 페트 원사를 사용한 친환경 백이 될 것이다. 그 안에는 종이 용기에 담긴 자외선 차단제와 멸균 종이팩에 담긴 생수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 가방 안에 물티슈나 일회용품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대신 면 손수건 몇 장과 비닐을 대신하는 장바구니가 텀블러와 나란히 있을 것이다. 당신의 가방 속은 어떠한가?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