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터’(zero waster)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이다. 제로 웨이스터의 사전적 정의는 폐기물 혹은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 생산·소비 전반에 걸쳐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주변에서 ‘별나다’ ‘구질구질하다’ ‘유난 떤다’ 등의 곱지 않은 시선 또한 견뎌야 한다.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최근 몇 년 새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큰 주목을 받았다. 제로 웨이스트는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재활용폐기물 대란 등 사회 이슈와 맞물리며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기자는 지속 가능한 미래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직접 ‘제로 웨이스터’에 도전했다. 본격적인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스로 기준들을 정했다. ▲친환경 교통수단 이용하기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잔반 남기지 않고 남을 시엔 다회용기에 담아오기 ▲그린피스 캠페인 ‘채소 한 끼, 최소 한 끼’ 실천하기 ▲사전에 쇼핑 리스트 작성하고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낭비 방지하기 등이다. 체험은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진행됐다.
폭우 속 비건식당 찾아 헤매다 친구와 의절 위기
체험 첫째 날. 평소라면 버스나 택시로 금방 이동했을 3km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대기오염의 주요 오염원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승용차 4.5대에서 1년간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30년생 소나무가 가로·세로 100m 규모로 빽빽하게 채워진 숲이 필요하다. 기자는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선택했다. 소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 한낮의 더위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기상청은 발표한 이날 한낮 기온은 34도였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막아낸 탄소 배출량은 0.279kg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육류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의 탄소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고기 소비가 계속 늘어나면 숲은 파괴되고 토양과 물, 대기오염 문제까지 발생한다. 현재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약 14%를 차지한다. 그린피스는 ‘채소 한 끼, 최소 한 끼’라는 채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에 포함한 그 캠페인이다.
기자는 평소 마라탕을 즐겨 먹는다. 물론 육류 위주다. 하지만 이번 체험기간에는 과감하게(?) 비건 옵션을 선택했다. 당연히 기존에 먹던 마라탕보다 맛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깔끔하고 담백했다. 국내 채식 인구가 증가로 채식 시장의 경쟁력도 높아졌다는 이야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채식에 대한 좋은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21일 서울에는 비가 무척이나 많이 내렸다. 함께 밥을 먹기로 한 친구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수행 중인 기자 덕에 채식 식당을 찾아 한참 거리를 헤맸다. 친구의 눈이 점점 날카로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삶이 타인과의 관계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글이 번뜩 생각났다. 의식적인 소비를 하는 환경 실천 라이프는 역시 쉽지 않다.
‘귀차니즘’을 극복하면 플라스틱이 줄어든다
플라스틱은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만 약 500년 걸린다. 기자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많다. 그래도 줄여보기로 했다. 불과 3일이지 않은가. 먼저 사용 중인 도구 중 플라스틱이 아닌 제품으로 대체 가능한 물품과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을 파악했다. 생각보다 많았다. 이제 플라스틱 대체품을 구입할 차례다. 19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 있는 제로웨이스샵 ‘더 피커’에는 생각지 못했던 물건이 많았다. 플라스틱 섬유로 만들어진 수세미가 아닌 흙 속에서 자연 분해되는 천연 설거지용 수세미와 목욕 스펀지를 구매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대신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빨대와 세척솔도 구매했다.
기자는 평소 화장을 지울 때 일회용 화장솜을 사용해왔다. 하루 평균 2~3개씩은 사용해왔다. 사용해온 화장솜을 대체하기 위해 친환경 다회용 화장솜을 구매했다. 다회용으로 빨아서 재사용이 가능하니 화장솜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일 수 있게 됐다. 화장솜 사용 후 씻는 일이 무척이나 번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안할 때 바로 손빨래해서 건조하니 별로 번거롭지 않았다.
마침 칫솔도 새로 바꿔야 할 시기라 친환경 대나무 칫솔도 구입했다. 플라스틱 재질의 칫솔은 매년 39억개씩 버려진다. 칫솔 몸체는 플라스틱으로, 모(毛)는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분리수거를 할 수도 없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반면 대나무 칫솔의 몸체는 천연 대나무, 모는 생분해성 플라스틱(PLA) 소재로 만들어져 100% 자연 분해된다. 일반 칫솔보다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현명한 소비라고 여겨졌다.
제로 웨이스터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없다. 한 끼 식사에도 플라스틱 배달 용기가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음식을 해먹게 됐다. 장을 보기 전에 꼭 사야 할 것들만 사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미리 메모장에 적어갔다. 장을 보기 위해 시장에 갔는데, 대부분의 식재료들은 일회용 랩으로 포장돼 있거나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또 혼자 먹기엔 부담되는 양으로 포장돼 있었다. 식재료를 파는 상인에게 “죄송하지만 포장이 안 돼 있는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담아갈 수 있을까요”하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요구를 들어줬다. 미리 챙겨간 다회용 밀랍 백과 다회용기가 요긴하게 쓰였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는 것도 플라스틱 줄이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다. 20일 방문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기자의 텀블러는 친환경적인 대나무 섬유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진 생분해성 제품이다. 플라스틱이 완전히 분해되는 500년의 세월에 비해 대나무 텀블러는 3년이면 땅속에서 완전히 분해된다.
우여곡절의 제로 웨이스터 체험을 마무리하며 처음에 세웠던 다섯 가지 기준을 체크해봤다. 괴로웠던 시간만큼이나 성취감도 컸다. 완벽한 제로 웨이스터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체험이 끝난 이후에도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게 됐다. 라이프 스타일은 자연스럽게 바꿀 수 없다. 특히 환경을 위한 습관을 바꾸려면 굳은 다짐이 필요하다.
이혜원 청년기자(청세담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