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나무 3만 그루에 이어 ‘희망고 빌리지’… 부모 자립에 초점
망고나무 한그루 15달러 100년 동안 열매 맺어 장기적 도움 줄 수 있어
직업교육·문화센터·마트 등 복합 공간 ‘희망고 빌리지’
‘자선’ ‘봉사’ 아닌 ‘축제’로 자녀에게도 나눔교육 될 것
전·현직 영부인과 재벌가 안주인, 여성 최고경영자 등 국내 상위 1%의 옷을 만드는 ‘톱 디자이너’ 이광희씨는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외교통상부 산하 사단법인 ‘희망고(HIMANGO)’ 대표다. 2009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를 처음 방문한 이후, 이씨의 삶은 달라졌다. 수중의 돈을 털어 망고나무 100그루를 심었고, 지금까지 3만 그루를 심었다. 이제는 바느질과 농사기술을 배우는 복합교육문화센터인 ‘희망고 빌리지’를 짓느라 분주하다. 이씨의 남편인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 마케팅 전문가답게 ‘희망고’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며 물심양면으로 아내를 돕고 있다. 단 한 차례의 부부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은 이들이 ‘나눔이야기’를 위해 함께 자리했다.
―유명인사들은 대개 NGO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반면, 직접 사단법인을 설립해 아프리카 지원사업을 벌이는 경우는 드물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
이광희= 아마 부모님이 아니셨다면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수단 톤즈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이 꼭 고향에 온 것 같았다. 목사이던 아버님은 1950년대 6·25전쟁 직후에 해남 땅끝마을에 내려가서 교회를 세우고 ‘해남등대원’을 설립해서 전쟁고아와 장애아 수천명을 키웠다. 간호사 출신인 어머니도 평생 소록도 나환자와 고아, 전쟁 미망인을 뒷바라지했다. 부모님에 비하면 난 가진 게 아주 많다.
―3만 그루의 망고나무 묘목을 배분했다고 하는데, 왜 망고나무인가.
이광희= 망고나무의 개념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망고나무 한 그루를 심는 데 15달러 정도가 든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5~7년이 지나면 수확한다. 1년에 두 번 수확하는데, 열살 나무는 200여개의 열매를 맺는다. 한 번 자라면 100년 동안 열매를 맺는다. 시장에서도 비싸게 팔린다. 망고나무는 한 번의 투자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홍성태= 마케팅 교수로서, 존재 이유와 콘셉트·미션을 중요시한다. 많은 단체가 규모가 커지면 오히려 미션을 잊어버린다. 망고만 심거나, 우물만 파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프리카에서도 엄마들이 가정을 먹여 살리는 경우가 많듯이, 망고나무를 통해 엄마의 경제적 자립을 이끄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올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한 ‘희망고 빌리지’를 보니, 여성·남성 직업교육센터, 초등학교, 탁아소, 도서관 등이 다 있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지을 생각을 했나.
이광희= 나는 ‘아이’보다 ‘엄마’를 포커스로 뒀다. 아이 한 명에게 3만원을 후원하는 것보다 엄마의 경제력을 갖추는 데 3만원을 쓰면 아이 10명은 먹여 살릴 수 있다. 망고나무를 키우려면 아빠들에 대한 농업기술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았다. 부모들이 교육받을 동안, 애들을 돌봐줄 탁아소가 필요하다.
홍성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여보, 밤중에 생각났는데, 탁아소 지으면 되겠어. 남자들도 교육장소가 필요하겠어’ 하고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웃음).
―후원자 모금과 해외 지역개발사업 등 모두 새로운 영역인데, 어려움은 없는가.
이광희= 럭셔리한 디자이너 일과 NGO 일은 극과 극이다. 부모님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의지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푸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외부의 어려움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나 자신이다. ‘내가 끝까지 이걸 잘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 그다음은 다 된다.(이 대목에서 이씨는 눈물을 흘렸다.)
홍성태= 이것저것 따지는 분들은 오히려 후원에 인색하다.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님은 단 5분 만에 후원을 결정했다. 대성 김영대 회장님도 희망고 얘기를 듣고 나서 곧바로 후원을 결정했다. 물론 개미군단이 무섭다. 학생들도 망고나무 하나씩 심겠다면서 2만원, 3만원씩 후원해준다.
―희망고 행사를 하면서 ‘자선”봉사’가 아니라, ‘축제’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특이했다.
이광희= 망고나무 심는 날이 평생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 축제 같은 날이 되었으면 싶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망고나무 심는 의미를 알려주고, 이날만은 배불리 먹고 마시고 춤추고 놀고 싶어 축제를 벌였다. 값싼 일회적인 동정심이 아니라, 같이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홍성태= 유명 영화배우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측은하게 우는 모습이 싫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런 모습 찍어가면 어떻겠나. 돕는 것은 희망을 주고,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나눔이 이광희씨의 ‘희망고’를 낳았듯이, 자녀들에게도 나눔교육이 될 것 같다.
이광희= 작년에는 큰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다녀왔고, 올해는 작은아들과 함께 간다. 사람들에게도 아이들에게 탄생 기념으로,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망고나무를 한 그루 심으라고 한다. 나무가 크면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나눔교육이 될 것 같다.
홍성태= 큰아들이 그랬다. ‘아빠! 먹을 물도 없는데 세수는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부지런한 애들은 소가 오줌 누는 걸 기다려서 그 오줌으로 세수해요. 사진에 안 나오는 게 뭔지 알아요? 냄새예요. 애들과 온 동네에서 냄새가 나서 나는 ‘억~억~’ 하는데, 엄마들은 그 애들 붙잡고 뽀뽀해요.’ 아들은 결국 귀국행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회사복귀가 며칠 늦어졌다.
남수단 톤즈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에서 두바이로, 다시 케냐의 나이로비로, 또다시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 내린 후 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룸벡에 도착한다. 비행기만 4번 갈아탄다. 거기서 3시간 남짓 울퉁불퉁한 길을 차로 달려야 한다. 이광희씨는 “처음 패션을 시작할 때도 ‘좁은 길로 가자’가 좌우명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계속 가다 보면 오히려 결과는 빨라진다”며 “제2, 제3의 희망고 빌리지가 많이 퍼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