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의 현실과 대안’ 시리즈] ①
나눔 선포한 기업 다수가 사회공헌 홍보에만 ‘눈독’
기부금 투명성도 떨어져
“진정성 없는 공헌 계속되면 부정적 이미지 탈피 못 해”
‘사회공헌 2조원 시대’라고 한다.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비용 지출액은 2조8735억원에 달한다(전경련 사회공헌백서, 2010, 220개 기업). 하지만 사회공헌에 대해 일부 기업은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다”고 하고, NGO나 복지기관 등에선 “진정성 없는 마케팅·홍보수단”이라고 하기도 한다. ‘더나은미래’는 기업 사회공헌의 현실과 대안을 3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지난해 5월, 국내 대표공연장과 문화나눔사업인 꿈나무 오케스트라 후원을 사회공헌활동으로 펼친 H기업. 이 기업은 당시 “꿈나무에 대한 악기구입과 연습공연 등 다양한 후원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H기업은 이 사업에 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벤트와 광고비용으로 지출한 비용이 4억원으로, 저소득계층을 위한 실제 지원액은 1억원에 불과했다. 행사진행을 맡았던 관계자는 “자체광고에 대부분을 써놓고 사회공헌이라고 홍보하는 기업이 얄밉지만 1억원 지원이 어디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 사회공헌 비용, 진짜 2조원일까?
‘더나은미래’가 최근 국내 전문가 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사회공헌 인식조사’ 결과, 많은 전문가들은 “홍보와 이미지에만 치우친 진정성 없는 사회공헌의 부정적 영향”을 언급했다. 우선 가장 의문을 품는 건 ‘2조원’이란 비용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회공헌비용으로 유일하게 인용되는 것은 전경련 사회공헌백서다. 매년 각 기업체별 설문조사를 통해 사회공헌 비용을 측정한다. 하지만 기업 자체적으로 수치화하다 보니, 검증이 어렵다.
한 기업사회공헌 관계자는 “기부금 항목에는 준조세성격의 기부도 많고 기업출연재단에 내는 돈도 많아, 전체 사회공헌 사업비 예산은 기부금의 1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적은 사업비 중에서 이런저런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실제 현장에 돌아가는 금액은 100분의 1도 안 될 만큼 적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직원 자원봉사를 금액으로 환산하고, 타 기업에도 서로서로 물어보면서 자의적으로 비용을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통업체인 H기업 관계자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엔 200억 가까운 사회공헌 예산을 썼다고 하지만,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문화센터 운영비용을 사회공헌예산으로 잡는 등 비용 부풀리기가 많다”고 말했다.
◇ 나눔에 후한 기업 vs. 인색한 기업
‘더나은미래’는 사회공헌성 지출로 분류되는 50개 상장기업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자료(기부금 항목)와 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사회공헌비용)를 비교분석해봤다. 기부금액별로는 SK(2631억)와 삼성전자(2188억), SK텔레콤(1233억), 현대중공업(1067억), 신한금융지주(1066억) 등은 기부금이 1000억원을 넘는 5대 큰손이었다. KT, 우리금융, 포스코, 현대자동차, 하나금융지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한편 매출액 대비 기부금이 높은 기업은 우리금융(5.28%), 강원랜드(2.39%), KT&G(0.89%), NHN(0.83%), SK텔레콤(0.79%), 두산중공업(0.44%), KT(0.40%), 신한금융지주(0.34%), SK(0.291%), 현대중공업(0.286%) 등이었다. 이들 기업은 전체 매출액의 0.24%를 사회공헌비용으로 쓰는 전경련 조사평균보다 그 비율이 높았다.
반면, 현대글로비스와 SK하이닉스, 대우조선해양, S-OIL, 삼성SDI, 현대건설 등은 매출액 대비 기부금이 0.01~0.03%대로 평균에 훨씬 못 미쳤다. 50대 기업 대다수가 기부금을 공개한 반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사회공헌 비용을 공개한 기업은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공개기업 중에선 한국전력이 2971억원으로 가장 높았고, 삼성전자(2399억)와 신한금융지주(1334억), 포스코(760억), KT&G(540억) 등의 순이었다.
◇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 vs. 마케팅 이벤트를 사회공헌으로 포장
한편, 한국전력과 KT&G, 삼성전자, 신한금융지주, 아모레퍼시픽 등 많은 기업에서 기부금과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사회공헌 비용 차이가 컸다. 적게는 26억원에서 많게는 2662억원까지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손원익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예전에는 기업 사회공헌이 순수기부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기업이 광고·홍보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회공헌을 하는 ‘전략적 사회공헌’이 더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민간NGO에 100% 순수하게 기부하기보다, 이 중 50%를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진정성 유무가 판가름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력의 경우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에게 전기료 할인혜택을 준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료 할인은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비용 차이가 많은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일부 기업에선 마케팅 비용을 사회공헌으로 포장, ‘사회공헌 비용’으로 책정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관계자는 “저소득가정에 차량을 지원해 자립을 도모하는 한 대기업 사회공헌사업의 경우 지원되는 차량규모나 액수에 비해 광고는 어마어마하다”며 “이것이 마케팅성 경비인지, 사회공헌 경비인지 애매한데 판단할 기준도 없다”고 말했다.
◇ 사회공헌 홍보는 활발, 기부금 공개는 뒷전
사회공헌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기업도 많았다. LG, LG디스플레이는 기부금 항목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사회공헌비용도 아예 적어놓지 않았다. 전화 문의를 했으나 LG측은 답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공헌 홍보에는 목을 매면서도, 투명한 기부금 공개를 꺼리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장품업계 T사는 몇년 전 모 NGO와 협약식을 맺고, 전국 매장에 모금함으로 비치해 기부금을 전달하는 사회공헌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T사는 협약식에 유명 연예인 홍보대사를 초청토록 강요, 이들의 참여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 NGO 관계자는 “전국 매장에 비치한 모금함 관리도 안 되고, 일반 시민을 향한 기부 홍보도 제대로 하지 않아 기부금이 몇 백만원도 되지 않았다”며 “협약식 체결 때만 대대적으로 홍보해놓고 이후 모금함에 돈 안 걷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책임 회피하는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0년간 기업 사회공헌이 양적으로 팽창한 반면, 질적인 팽창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며 “사회적 책임이나 진정성보다 기업 홍보에만 집중할 때,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는 김경하·안영균 더나은미래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