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업 부도와 파산, 그리고 수감…희성(가명·14)이네 가족에게 하루아침에 위기가 닥쳤다. 한때 해외 유학 생활까지 할 정도로 부유했던 4남매는 채권자를 피해 경기도 모처의 단칸방 오피스텔로 쫓겨났다. 아버지가 경제사범으로 5년 형을 선고받으면서, 어머니 홀로 아르바이트로 희성이와 초등학생 하나, 미취학 아동 둘인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살길이 막막했지만 다섯 가족이 기댈 곳은 없었다. 돈을 빌릴 곳도, 신용 대출도 모두 막혀 아픈 동생이 병원에 갔다가 그대로 돌아 나오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의 수입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지원도 희성이네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경제·심리적 고통에 사회적 편견까지…삼중고 시달리는 수용자 자녀들
5만4000명. 지난 2017년 전국 교정 시설에 수감된 수용자의 미성년 자녀 수다(국가인권위원회 ‘수용자 자녀 인권상황 실태조사’). 수용자 가정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1.9%. 국내 가구 평균(2.3%)에 비해 5.5배 더 많다. 수용자 자녀와 가정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세움의 이경림 상임이사는 “부모 수용 전부터 빈곤했던 가정도 있지만, 부모가 사업으로 생긴 채무를 갚지 못하거나 회사 공금을 횡령하는 등 ‘경제사범’으로 당장 오갈 데 없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특히 수감 부모가 아버지인 경우,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이 사라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실제 인권위가 국내 교정 시설 수용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수감 부모의 절대다수(90.4%)가 남성이었고, 세움이 2015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지원한 수용자 자녀 96명 중에서도 82.3%(79명)가 아버지가 수용된 경우였다.
부모의 수용이 자녀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도 문제다. 수용자 자녀의 경우, 부모의 이혼율이 일반 가정에 비해 5배가 높다. 이 상임이사는 “수용자 자녀는 부모 수감 이후에 양육자가 평균 두세 번은 바뀐다”며 “국내 아동 중에서도 수용자 자녀가 가장 취약하다는 지표”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부재로 실제 우울증·틱 장애 등 정신과적 증상을 겪는 경우도 있다. 최윤주 세움 사업팀장은 “어머니가 수감되고, 아버지가 빚을 갚기 위해 떠나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던 3남매가 동시에 틱 장애가 온 경우도 있었다”면서 “최근 단체 지원을 받는 아동 20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한 결과, 전반적으로 우울이 높았고 그중 7명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동네가 작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아빠 얘기를 다 알아요. 친구 부모님은 친구더러 ‘부모님 거기(교도소) 간 애랑 놀지 말라’고도 했어요.”
수용자 자녀는 ‘범죄자 또는 가해자의 자녀’라는 사회의 편견에도 부닥친다. 실제로 수용자 자녀의 사연을 소개한 한 기사에는 ‘염치도 없다’,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교도소에 수용되며 할머니 손에 길러진 민지(가명·27)씨도 수없이 차별을 겪은 당사자다. 이웃들은 그녀를 볼 때마다 “너희 아빠처럼 살지말라”고 말했고, 친구 부모님들은 “수용자 자녀와는 어울리지 말라”며 아이를 단속했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는 “네가 부모님만 잘 만났으면”하면서 민지씨를 붙들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녀는 어린시절을 ‘아빠가 교도소에 계신 것도, 집이 가난한 것도, 할머니와 사는 것도 힘들어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회고한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들 역시 ‘피해자 자녀도 못 돕는데 왜 가해자 자녀를 돕느냐’는 비난에 맞닥뜨린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홍보나 모금이 힘들다보니, 또다시 지원이 적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쉽다. 이경림 상임이사는 “법무부 산하에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스마일센터’ 등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으며, 가해자의 자녀도 2차 피해자로서 도움이 필요한데 아직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면서 “단체 입장에서는 이러한 편견 때문에 홍보나 공개 모금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더나은미래가 공익 섹터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리 사회 4대 ‘나눔 사각지대’ 중 하나에도 ‘수용자 자녀’가 포함됐다. ☞전문가들이 선정한 2018 ‘나눔 사각지대’는?
◇같은 범죄 피해자인데…수용자 자녀 지원은 ‘빈 구멍’
상황이 이런데도 수용자 자녀에 대한 지원은 사각지대에 있다. 일단 수용자 자녀를 정의하고 지원하는 근거 법령이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규칙, 기타 규정 어디에도 체포나 구속, 이후 재판 과정에서 수용자 가족이나 자녀와 관한 조항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수용자 자녀에 대한 정보가 수집되는 공식적인 절차가 없어, 부모 수감으로 아동이 방치되거나 긴급한 상황이 생겨도 지원할 길이 깜깜하다. 인권위 실태조사의 연구책임자인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부모 체포 시 자녀들의 충격을 완화할 장치와, 부모와 분리된 이후 자녀를 아동보호체계로 연계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수용자 자녀 지원의 근거가 될 법률을 제정하거나 ‘아동복지법’ ‘한부모가정지원법’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등 기존 법률을 개정해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부처와 민간 협력을 모아줄 국무총리실 산하의 컨트롤타워 기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수용자의 미성년 자녀를 보호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 내용을 담은 법률안(‘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수용자 자녀와 가족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제도 역시 비어있다. 현행법상 여성 수용자는 직접 낳은 아이를 18개월간 양육할 수 있고, 차단 시설이 없는 장소에서 접견할 수 있다. 반면, 가족 접견실이 없는 교도소나 남성 수용자인 경우에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10~15분이란 짧은 시간동안 자녀를 만나야 한다.
최근에는 민간의 활약이 빈틈을 일부 메우기도 했다. 세움이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아동친화적 접견실(가족세움)’이다. 수용자 자녀와 부모가 장난감·동화책 등을 갖춘 편안한 공간에서 2시간 동안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민간단체와 법무부, 각 교도소가 협업하면서, 전국 교도소 52곳 중 13개소에 불과하던 가족접견실이 지난해에 6곳, 올해는 6곳까지 추가 확대됐다. 교도소 민원실에는 ‘미성년 자녀를 만나는 모든 수용자는 평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문구도 붙었다. 세움은 이밖에도 수용자 자녀를 대상으로 장학금, 진로상담, 면회지원에서부터 캠프, 사진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산하인 세움 외에 법무부 산하에도 기독교세진회, 한국교정선교회 등 7개 기관이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고 있다. 법무부 산하 단체는 대부분 수용자 교화 차원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고 있으며, 아동복지 차원에서 복지적 접근을 하는 민간단체는 현재로썬 세움이 유일하다.
◇수용자 자녀 지원 명문화한 미국·자녀 양육권 보장하는 영국…해외는?
해외는 수용자 자녀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전 세계에서 수용자 자녀 문제를 가장 크게 떠안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내 수용자 수는 1925년에서 2015년 사이 500% 증가(미 법무부 사법통계국)했고, 2015년 기준 미국 내 교도소 수용자 수는 152만6792명에 달했다. 인구 10만명 중 666명(0.67%)이 수감된 셈인데, 수용자 수가 많은 만큼 수용자 자녀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 전체 아동의 7%(약 500만명)가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용된 경험을 했을 정도다.
미국 정부는 수용자 자녀 문제에 관련 법을 제정하고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0년간 7억달러를 투입해 위기아동 1억명을 대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위기아동 범주에 수용자 자녀를 포함시켰다. 2006년엔 ‘자녀와 가족 서비스 개선에 관한 법률(the Child and Family Services Improvement Act)을 통해 수용자 자녀 멘토링 프로그램을 명문화하고, 아동가족국을 담당 부처로 위임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는 수용자 자녀 지원 활동 실무자 모임을 소집, 연방 프로그램과 정책을 평가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수용자 자녀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도 했다.
미국은 민간에서도 수용자와 그 자녀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미국 전역에서 수용자 자녀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주거, 의료, 금전 지원 프로그램부터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학업, 심리 지원, 가족 관계 유지를 위한 접견 지원 등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프로그램들이 실행되고 있다. 유명한 예로는 미국 PBS의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가 운영하는 인형극 사이트를 들 수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수용자 부모를 둔 3-8세의 미취학 아동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법을 인형극으로 쉽게 설명한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웹사이트는 수용자 자녀뿐 아니라 보호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툴킷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는 별도의 법이나 제도는 없지만, 교정 당국 차원에서 여성 수용자와 자녀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영국은 여성교도소 6곳에 “Mother and Baby Unit(MBU)’라는 별도 거주 시설을 설치, 18개월 미만 아기를 어머니가 돌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호주 여성 교도소도 MBU를 운영하는데, 특히 호주의 ‘퀸즈랜드 타운스빌 여성 교도소’의 경우, 자녀가 5세가 될 때까지 MBU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캐나다도 MBU와 비슷한 “Mother-Child Program(MCP)”을 여성 연방 교도소에서 운영하고 있다. 여성 수용자가 교도소 안에서 4세 이하 자녀와 함꼐 거주할 수 있는 ‘풀타임’ 프로그램, 5세부터 12세 자녀와 주말과 휴일 동안만 함께 지내는 ‘파트타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직접적 지원 뿐 아니라 옹호(advocacy)에 적극적인 선진국도 있다. 유럽에는 19개국의 수용자 자녀 네트워크인 ‘코프(Children of Prisoners·COPE)’가 2013년부터 매년 수용자 자녀 권리 옹호 캠페인을 벌인다. 코프의 캠페인 캐치프레이즈는 ‘내 죄는 아닌데, 여전히 형량을 받고 있다(Not my crime, Still my sentence)’이다.
박혜연·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