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정부가 책정한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146조2000억원이다. 기업이 사회공헌에 쓴 자금은 2조4093억원, 개인 기부금은 1조2592억원에 달했다(2016년 기준, 한국가이드스타).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나눔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신년 기획으로 공익 섹터 전문가 5인에게 우리 사회 속 나눔 사각지대를 물었다. 전문가 5인은 ‘노인(안전·정신건강)’ ‘미혼모’ ‘소년원 출소 청소년, 수용자 자녀’ ‘발달장애(문화예술)’ 총 네 영역을 사각지대로 지목했다. 조상미 이화여대 사회적경제 협동과정 교수는 “기업 사회 공헌이나 자원봉사 분야도 아동, 청소년 등에게 집중되어 있고, 미혼모나 정신 질환자, 장애인이나 수용자의 자녀 등 사회적 편견이 많은 대상에게는 나눔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편견에 또 한 번 상처 입는 ‘사회적 소수자’
“성폭행 피해자, 성매매 업소 여성, 가정 폭력 피해 여성, 장애인 미혼모… 우리 시설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들입니다. 바깥에 이야기하기도, 펀딩을 열기도 조심스럽죠. 가끔 후원자가 나타나도 당장 (후원) 효과가 나타나는 청소년 미혼모를 선호하지, 이런 사례까지 지원하기는 주저합니다. 편견이라는 장애물도 있으니 어려움은 배가됩니다.”(이숙영 마포 애란원 원장)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마포 애란원’. 이곳은 출산한 미혼모가 처음 지내며 자립을 준비하는 1차 미혼모 시설이다. 특히 미혼모 중에서도 우울증, 대인 기피증, 공황 장애 등 정신 질환이 있거나 장애 등이 있어 몸이 불편한 이들이 생활한다. 운영 관리비의 90% 이상을 정부 보조금에서 충당하고 있지만 건물 임대료, 관리비, 치료비, 식비,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늘 적자다. 이숙영 원장은 “이곳 미혼모 대부분이 신체 및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어 치료비가 만만치 않게 드는데 사회적 편견과 관심 부족에 모금이 잘 되지 않는다”며 “한 달 평균 정기 개인 후원금은 30만원 남짓이어서, 지난해에도 미혼모 두 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병원 측의 후원이 끊겨 치료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장애가 있거나 정신 질환이 있는 미혼모들은 장기 치료가 필요해 효과성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개인이나 기업 후원자 처지에선 후원 대비 효과가 크지 않으니 후원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라 덧붙였다.
모금을 통해 후원금이 생긴다 해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미혼모들에겐 상처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더해진다. 미혼모 A씨는 “지난해 기관에서 진행한 온라인 모금함에 ‘책임지지도 못할 거 왜 낳아서 애까지 고생시키냐’ ‘아이를 낳은 건 본인 선택인데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냐’는 등 내 사연에 달린 댓글을 보고 큰 상처를 받았다”면서 “이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후원을 받을 용기가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온라인 모금하면 오히려 비난 댓글에 용기 못 내
소년원 출소 청소년과 수용자 자녀 또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소년원 출소 청소년을 지원하는 한국소년보호협회는 법무부의 위탁을 받아 지난 20년 동안 연간 300여 명의 출소생에게 거처와 교육, 취업 훈련 등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법무부의 지원금과 간간이 들어오는 후원금으로는 현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상황. 지역 사회나 온라인을 통한 모금을 진행하지만 ‘범죄자를 돕는다’는 싸늘한 시선에 모금이 쉽지 않다. 이새봉 사무총장은 “많은 사람이 소년범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 ‘후원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기업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 있다는 이유로 후원을 꺼린다”면서 “자신의 사업체에 출소생들을 취업시켜주겠다 해놓고 나중에 성실하지 않을 것 같아 취소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용자 자녀 역시 부모의 범죄 이력으로 ‘빈곤과 사회 부적응의 고리’에서 고통받고 있다. 수용자 자녀의 장학금 및 교육 등을 돕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이경림 상임이사는 “수용자 자녀 사업에 관한 기사가 나온 뒤 ‘피해자 보호나 지원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가해자 자녀까지 도와줘야 하냐’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말지, 자식이 죗값을 받는 거다’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면서 “펀딩을 시작하면 더 많은 비난 여론이 생길까, 아이들이 글을 보고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실제 통계로도 드러난다. 지난해 국내 최대 온라인 모금 플랫폼인 네이버 해피빈에 개설된 상위 11개(모금액 2000만원 이상, 기업 기부금 50% 이상 제외) 모금함 중 6건이 ‘환아 지원’, 3건이 지진, 수해 등 ‘재난·재해’였으며, ‘조손 가정’과 ‘반려동물’ 관련 모금함은 1개씩이었다. 조성아 네이버 해피빈 공익네트워크팀 팀장은 “질병, 장애, 유기 동물 등 생계 유지 관련 취약 계층에 대한 모금함은 모금 선호도가 높은 반면, 사회 구조로 인한 소수자, 사회적 낙인이 있는 보호관찰 청소년, 미혼모 등 사회 소수자 등은 상대적으로 모금 선호도가 낮고 모금함에 악플이 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장 효과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는 관심 없어”… 노인·장애인 문제 속 사각지대
당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아 나눔의 손길 밖에 있는 영역도 있다. 노인의 경우 낙상·교통사고 등 안전 문제, 우울증 등 심리·정서적 문제가 여기 해당한다.
“지난주 한 어르신이 사는 집에서 원인 불명 화재가 났어요. 어르신 층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이유로 위층과 아래층이 수리비를 어르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현재 법적 공방 중입니다. 뒤늦게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화재 예방 교육이 필요했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야는 모금률이 저조하고 관심도 적어 단체도 진행하긴 어렵습니다.”(권양희 우리모두재가노인지원센터 센터장)
서울 종로구 일대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권 센터장은 “안전 교육이나 우울증처럼 ‘사건이 터지기 전’ 예방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작다”며 “기업 등에 사업을 제안해도 부각되지 않거나 아동·청소년 문제에 묻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문제는 ‘젊을 때 하고 싶은 것 다 하다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진 것 아니냐’는 식으로 ‘당사자 책임’이라는 인식이 많아 기부가 안 되는 경향도 있다”며 “개인 문제 또한 결국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는, 즉 ‘공공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의 문화 예술 및 교육 지원 역시 같은 이유로 사각지대에 있다. 발달장애 청소년 첼로 앙상블 ‘날개’는 2016년 ‘전국 장애 학생 음악 콩쿠르’에서 금상과 교육부 장관상까지 받은 팀이다. 하지만 바로 그해 창단 4년 만에 해체 위기를 맞았다. 기업들의 후원이 모두 끊겼기 때문이다. 이주희 밀알복지재단 홍보팀장은 “여러 기업에 후원을 제안했지만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기 어려운 문화 예술보다는 예후가 좋은 치료비 지원을 선호하는 게 사실”이라며 “4개월 만에 후원 기업이 나타나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지만 이런 상황은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어 “발달장애인에게는 정서적 안정과 의사소통을 위해 문화 예술 치료가 중요한 치료 방법 중 하나인데, 정부 지원은 장애인 보장구 지원 등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도움 주신 전문가 5인: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정무성 숭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총장, 조상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상 가나다순)
박민영·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