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분석④ <지속가능경영(CSR) 향방 -下>
지난 11월 7일, 국민연금공단 16대 이사장으로 임명된 김성주 신임 이사장의 취임사다.
612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년 하반기에 도입키로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으로, 투자의 전 과정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하고 주주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영국·일본·네덜란드·스위스·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 등 20개 국가에는 이미 도입돼있다.
한국 역시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지만, ‘큰 손’ 투자자인 국민연금은 그동안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이에 따라 스튜어드십 코드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사황이 반전됐다.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 심층분석, 제4편은 지속가능경영(CSR) 향방이다.
◇새정부 지배구조 개선 압박 강화···전자투표제·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주목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 CSR 키워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무화할 뿐 아니라 다중대표 소송제,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등의 의무화가 추진된다. 또 기업의 주식 및 이익 일부를 근로자와 공유하는 ‘미래성과 공유제’ 도입도 추진된다. 이같은 3가지 이슈는 문재인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재계에 폭풍을 몰고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올해부터 섀도우보팅((Shadow Voting)이 폐지되면서, 지배구조의 혁신이 예상된다. 섀도우보팅은 주자가 주주 총회에 참석할 수 없더라도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섀도우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를 열지 못하는 것을 막는 장점이 있는 반면, 주주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섀도우보팅 폐지를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국제적 평가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라며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거래소와 함께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자율공시를 강화해 나가는 등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이 시장에서 확실히 대우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섀도우보팅의 폐지로 인한 ‘주총대란’을 막을 대안으로 전자투표제를 꼽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해외에 있거나 바쁜 일정으로 인해 주총에 출석하지 못하거나 여러 회사가 동시에 주총을 열어 출석이 어려울 경우,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주총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서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2009년 상법 개정을 통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이사회 결의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 대기업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코스피 상장기업 770곳 중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한국예탁결제원). 그러나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 전자투표제 의무화 추진이 도입된 이후, 대기업 중에선 SK가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11월 20일 SK(주)는 이사회를 열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현대차, LG, 롯데(하이마트 제외) 등 5대그룹 중 최초다.
이뿐만 아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공식화하면서,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실시된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및 스튜어드십코드 관련 중간보고’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사외이사(감사) 후보 추천 △이사회 및 집행임원과의 사전 비공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강화 △개선이 시급한 중점대상회사 공개 △수탁자책임위원회(가칭)의 확대 개편으로 독립성·견제·책임투자 전문성 강화 △전체 의결권 행사 내역 및 과정 공개 △최소 연1회 주주활동 내역 공시 △책임투자 규모를 주식<채권<다른 자산군으로 단계적 확대 △ESG 평가체계 구축 및 ESG 평가보고서 작성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이재광 ESG모네타 대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아 문제가 됐는데, 이번 중간보고에 개선방안이 다소 부족해보였다”면서 “투자위원회가 중요한 안건의 경우 심의위원회에 의견을 ‘구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의견을 ‘구해야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기금정책분석실 관계자는 “연내 최종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하고 확정된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 중 한국투자신탁운용, 하이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KB자산운용, 신한 BNP파리바자산운용, 메리츠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동양자산운용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고 사모펀드(PEF)와 자문사 등을 포함해 총 21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 국민연금공단과 IBK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사회적책임 둘러싼 투자자·소비자 모니터링 대비해야
최근 대기업 CSR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관련 정보를 요구하는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ESG 정보에 따라 투자 여부 및 주주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9월 국민연금은 59%의 지분을 가진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수납 용역업체 비위 행위를 고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시작했다. 현재 한국의 책임투자 규모는 총 7조8650억원(2015년말 기준)으로, 중간보고에 따르면 2019년까지 약 11조44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ESG 정보 공시는 전세계적인 트렌드다. 캐나다, 호주, 영국 등엔 ESG 관련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의 경우 환경 관련 공시 제도를 운영중이다. 또한 이러한 ESG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전 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약 22조8910억 달러로, 2014년 대비 약 25% 증가했다. 2016년 현재 전문적으로 운용 중인 전 세계 투자자산의 약 26%가 책임투자전략에 의해 운용될 정도다. 미국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S&P500 기업 중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은 전체 지수 편입기업 중 무려 82%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환경 관련 일부 영역에 한해서만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고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기업도 81곳에 그친다.
이에 국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대기업 비재무 정보 공시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상장법인이 발간하는 사업보고서에 기업의 사회적책임 정보를 공시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ESG 정보를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하긴 했지만, 법이 통과될 경우 금융당국은 공시 관련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국내에도 ESG 정보의 범위, 공시 양식 등이 공표되는 것.
전문가들은 향후 대기업의 ESG 등 비재무 정보 관리 및 공시수준이 기업 신뢰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대다수 기업의 IR팀에서 CSR팀에 협조를 구하는 등 ESG 데이터 관리에 돌입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 사무국장은 “향후 국민연금이 ESG 수준이 낮고 문제가 많은 블랙리스트 기업을 공개하면 그 여파가 투자자·소비자 등에게 확산될 것”이라며 “특히 배임·횡령·일감몰아주기 등으로 공정위에 적발된 기업들부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경고 및 주주권 행사가 시작될텐데, 과거와 주주총회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생과 관련해선 ‘협력이익배분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는 대기업이 협력사에 판매수입·순이익·목표초과이익·임금 등을 공유하는 제도로, 2020년까지 200개 기업으로 확산하는 계획이 국정과제에 담겼다. 이번 정부에선 강제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협력이익배분제를 시행하는 기업의 조세 감면, 인센티브 등을 통해 자연스레 유도하려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 발의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계류 중으로, 법안에는 협력이익배분제 추진본부를 만들어 협력이익공유계약을 인증하고 차후에 이익을 공유한 대기업에 세금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이 담겨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협력이익배분제 모델을 개발해 내년 2월쯤 협력이익배분제 모델을 발표할 예정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기술탈취와 부당존속거래를 막는 방안이 시급하며, 최저임금이 올라간 만큼 납품단가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유진·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