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MBC ‘무한도전’ SNS에서 ‘국민의원’ 모집 글을 봤어요. 아동학대 현장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법을 묻는 질문에 ‘아동학대가 없는 대한민국을 바랍니다’라는 의견을 써냈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방송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우연히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계기로, ‘아동학대 법안 국회 통과’를 이뤄낸 이들이 있다. 아동권리NGO 굿네이버스 직원들이다. 대선을 앞둔 지난 4월 무한도전 ‘국민내각’ 편에서 아동학대 법안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방송 출연을 신청하고 TV에 얼굴을 비춘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팀 고완석(36·사진) 과장이었다.
“현장에 200명 정도가 있었는데, 나오는 주제가 무척 다양했어요. 아동학대를 이야기하러 갔는데 학대만 해도 동물학대, 노인학대 등 많아서 모두 한마디씩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4~5시간 녹화를 하다 끝나기 직전에 같이 간 임광묵 관장이 마이크를 빼앗다시피 발언권을 얻었어요. 그 덕에 ‘아동학대 상 아동의 나이는 만 18세’ ‘아동학대 신고 전화 112’ 등을 전국 시청자에게 알렸죠.”
당시 방송을 탄 임광묵 굿네이버스 전남중부권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부모 교육 의무화법’을 제안했다. 안희선 아동권리사업팀 대리, 이종광 은평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도 함께였다. 이후 직원들은 당시 현장에서 아동학대 법안 발의를 약속한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과 합작해 입법을 준비했다.
이로부터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하 아동학대특례법)이 탄생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오신환 의원이 발의를 선언해 놀랐어요. 의원실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법일 텐데 처음부터 공부하겠다며 열심이었고요. 방송에서는 부모 교육 의무화를 이야기했지만, 여러 가지를 논의한 끝에 현장 필요도가 높은 아동학대처벌법을 먼저 발의하기로 했어요. 저희가 현장의 이야기와 관련 이슈, 법 체계 등에 대한 내용을 준비해 가서 두세 차례 의원실 측과 만났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소통했습니다.”
이번에 개정된 아동학대처벌법은 학대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명령에 ‘상담 위탁’을 추가해 아동에 대한 보호를 확대했다. 여기에 비가해 부모 등 아동 보호자가 치료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생겨 가족치료 형태의 개입도 가능해졌다. 보호처분 또는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에 응하지 않은 가해자에게는 벌금형을 최대 1000만원까지 올리는 내용도 생겼다.
“특례법에 ‘피해 아동보호명령’ 제도가 있는데, 정작 학대 피해아동의 후유증에 대한 심리 상담 등 심리·정신적 차원의 치료에 관해서는 규정이 따로 없었어요. 부모가 동의를 안 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으니, 현장에서 심리치료 비율이 아주 낮았죠. 이를 법으로 강제하고 아동이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주변 상담시설에서 편하게 상담받을 수 있도록 건의했죠. 현장에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나 기관 수를 늘리는 아동학대 인프라 확대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NGO 활동에는 사업 수행뿐 아니라 학계와 정치권에 의견을 전하고 관련 효과성을 연구하는 옹호(Advocacy)도 포함된다. 기존 방식과 달리 예능을 통한 옹호 과정을 몸소 경험해본 고완석 과장은 “방송뿐 아니라 이렇게 정부나 입법기관 등에 의견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한다”며 “국회 포럼이나 연구 모임 등도 현장 상황과 관련 이슈를 많이 아는 NGO들과 더욱 협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