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O(Non-Profit Organization)는 경제적 이윤추구가 아닌 조직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비영리조직이다. 국내법상 비영리법인은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하는 것은 물론, 정부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의 인가 및 허가를 통해 설립가능하다. 비영리법인은 이윤에 대한 배당이 금지되며, 해산시 자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비영리민간단체, 사단법인, 재단법인 및 사회복지법인 등의 특수목적법인 등이 이에 해당된다.
협동조합기본법상의 사회적협동조합 역시 비영리 법인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선 협동조합 사업 40% 이상을 지역사회 기여 등 공익적 목적에 대한 사업을 실행해야하며, 협동조합의 사업에 해당되는 부처의 인가를 받아야한다. 공익적 목적의 사업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 부처의 판단에 따라 법인은 해산된다. 물론 다른 비영리법인과 마찬가지로 배당은 금지되고, 해산시 자산은 국고로 귀속된다.
2017년 7월 기준, 전국에 이러한 사회적협동조합은 718곳이 존재한다. 비영리사업을 위해 다른 법인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협동조합이라는 법인격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협동조합 한달살기 다섯번째 이야기는 가치로운 일을 위해 협동조합을 택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전 세계 공정무역 시장은 1조6339억원. 국내 공정무역은 2003년 아름다운가게에서 판매한 아시아 지역 수공예품으로 시작됐다. 이후 커피, 초콜릿, 설탕, 올리브 등 식품 영역으로도 확장됐다. 지난 2007년에는 공정무역 기업들이 모여 한국공정무역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공정무역 시장 규모는 약 190억원으로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지만, 점차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공정무역은 단순히 공정한 가격의 거래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정무역 생산자들의 인권을 고려하고 자연환경도 고민한다. 그리고 공정무역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방식까지 고려한다. 이를 위해서 공정무역 생산지에는 생산자와 공정무역 관계자 일부가 참여하는 생산자협동조합이 설립된다. 한국에서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을 유통 및 판매하는 (재)아름다운커피는 원두와 카카오의 생산지에 생산자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빈곤국 여성들이 만든 의류, 생활용품 및 천연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그루(페어트레이드코리아) 역시 생산자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을 통해 거래한다.
공정무역 생산지는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공정무역 기업의 도움을 받는 수혜자에서 직접 공정무역을 위한 협동조합의 경영자로 변화하는 것. 이러한 능동적인 참여는 생산자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줘 생산성을 높인다. 또한 공정무역 생산지의 다양한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궁극적으로는 공정무역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에서는 단기간의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 아닌 각 조합원들의 기술 숙련도 향상을 위한 교육 및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내부인력의 성장은 자연스레 협동조합의 경쟁력을 상승시킨다.
좀 더 쉽게 일상에서 공정무역 협동조합을 찾는 방법도 있다. 시민청 지하(서울시청 지하)에 위치한 지구마을사회적협동조합을 방문하면 된다. 지구마을사회적협동조합은 공정무역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공정무역의 가치를 알리고 공정무역 기업의 성장과 제품 판매를 위해 설립됐다. 매장은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을 재료로 하는 공정무역 카페와 가방, 의류, 화장품 등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장으로 구성돼있다.
지구마을사회적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공정무역 제품은 200여종이 넘는다. 커피, 초콜릿, 생활용품, 화장품 등등. 진열된 상품 옆에는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을 소개하는 리플렛이 비치돼있다. 공정무역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도 자세히 알 수 있다. 공정무역 제품을 구매하면,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도 해주신다. 베트남에서 만들어진 공정무역 캐슈넛부터 고양이 모양의 손목 보호대 겸 안대… 세심한 소품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까운 지인의 생일 선물로 공정무역의 가치를 전할 수 있는 공정무역 제품을 추천한다.
반려동물과 협동조합
반려동물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5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은 700만 마리가 넘는다. 전체 가정의 21.8%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반려동물은 이제 하나의 가족이다. 2012년 9000억원이었던 반려동물 시장 규모도 2015년 1조 8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성장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느끼는 부담 중 하나가 의료비 문제다. 의료보험 수가제(의료보험에 포함되는 의사의 진료 행위에 따른 지원 금액이 정해놓은 제도)가 적용되는 대인 진료와 달리 동물 진료는 수가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수술, 일부 치과진료와 마찬가지로 동물병원마다 진료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다니면 되겠다 싶지만, 적정진료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수술 후 입원을 하며 안정을 취해야하지만, 비용을 낮추기 위해 마취도 깨지 않은 채 돌려보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후유증으로 반려동물이 더 큰 고통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반려인이 적정가격과 적정진료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하 우리동생)은 반려인이 모여 출자하고, 함께 의사결정하며 운영되는 국내 최초의 동물병원 협동조합이다. 동물진료의 어려움을 겪는 반려인이 모여 동물병원협동조합을 설립한 것. 일반적으로 동물병원은 동물병원 원장(수의사)이 병원의 경영과 진료를 모두 담당한다. 그러나 우리동생은 총회를 통해 선출된 경영진이 경영을 담당하고 수의사를 고용한다. 덕분에 고용된 수의사는 동물 진료에만 매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동생은 설립목적에 따라 적정가격과 적정진료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동생에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임대료, 기타 비용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좀 더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의 진료를 위해 노력한다. 협동조합의 정보 및 경영상태는 협동조합의 주인인 소비자조합원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
우리동생의 내부운영도 남다르다. 게시판에는 우리동생의 정관 전문이 사람편과 동물편으로 나눠져 부착돼있다. 조합원이 키우는 반려동물을 투표를 통해 동물 대표를 선발한다. 명함도 독특하다. 직원 명함에는 직원의 반려동물 사진이 있다. 동물과 사람을 평등히 바라보는 병원임을 알 수 있다.
동물 진료뿐만 아니라 우리동생만의 차별화된 사업도 진행한다. 아이쿱생협과의 협업을 통해 가공하고 남은 무항생제 닭의 부산물로 만든 동물간식을 만든다. 동물보호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유기동물 대상으로 진료도 한다. 매월 수의사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동물들의 건강을 위한 강의도 진행한다. 모두 협동조합이기에 가능한 시도들이다.
물론 1500여명이나 되는 조합원 모두의 의사결정을 반영해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영의 어려움도 크다. 임대료는 매년 꾸준히 법정상한선까지 증가하고 있다. 인건비 및 운영비 등을 고려하다보니 적자가 발생하고, 조합원들의 후원과 회비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을 위해 적정가격과 적정진료를 최우선으로 하는만큼 이러한 부분은 서로가 감내한다고. 다만, 적정진료에 대한 고민 없이 싼 가격을 앞세운 타 동물병원의 가격표만을 보고 우리동생의 가격에 불만족하는 일부 조합원도 있단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동생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대의원 총회로 조합원총회를 갈음한다. 협동조합기본법상 200인을 초과하는 협동조합은 총 조합원의 10% 이상의 범위 내에서 대의원회를 구성해 조합원 총회에 준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안정적 경영을 위해 우리동생은 매월 1회 이상씩 12명의 이사들이 모여 이사회를 진행한다. 중요한 안건이 있을 경우에는 월 3회 이상 모이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납부하는 회비 제도도 도입했다(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납부한 조합원들은 납부한 금액 내에서 30%의 진료비를 할인 받으며, 우리동생은 납부된 회비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경영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동생의 조합원이 매월 30~40명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쟁력이 소비자인 조합원 수인만큼, 앞으로 우리동생의 성장과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문화예술과 협동조합
뉴스에는 매일 같이 수십억의 재산을 가진 유명연예인과 예술가들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한달 수익 100만원도 되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술 시장도 마찬가지다. 작품 하나에 몇 천만원, 몇 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을 그리는 화가는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창작활동에만 매진하는 화가는 드물다.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선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화가협동조합은 화가들이 좀 더 나은 여건에서 작품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국화가협동조합에서는 화가조합원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화가조합원의 생활비 등의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작품판매 대리, 미술도구 공동구매, 작품전시회 등을 지원한다. 서울 서초구 지역에 화가조합원들을 위한 상설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하고 파격적인 지원만큼, 화가조합원이 되기 위해선 객관적이고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야한다. 조합원 심사는 연 2회에 진행되며, 총 3차까지 이어지는 선발 절차를 거친다.
1차 심사는 블라인드 리뷰다. 한국화가협동조합의 화가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작품사진 10장을 메일로 발송해야한다. 작품사진은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없도록 익명으로 처리돼, 10명의 심사위원에게 전달된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들도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평가기준은 작품성과 작품의 발전가능성. 합격과 불합격 여부만 결정한다. 10명의 심사 위원 중 7명 이상의 심사위원이 합격 판정을 내리면 1차 심사를 통과하게 된다.
2차 심사는 실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실제로 작품활동에 전념하는지 살핀다. 여기에서 작품의 수준뿐만 아니라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 성실도를 평가한다. 혹시 작품활동을 하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되면, 이 역시 심사에서 탈락된다.
3차 심사는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로 초대한 이들이 심사를 하며, 70% 이상의 합격판정이 있을 경우에 비로소 조합원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렇게 엄격한 절차가 진행되는만큼 현재 한국화가협동조합의 화가조합원은 14명에 불과하다.
물론 까다로운 심사는 높은 진입장벽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지원의 기회는 열려 있고 재도전도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엄격한 과정은 선발된 화가조합원들의 실력에 대해 신뢰를 가지는 중요한 포인트다. 결과적으로 ‘한국화가협동조합의 화가조합원’이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어진다.
화가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평소 그림에 관심은 많으나 그림을 구매하기에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화가협동조합의 화가조합원의 그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감사전을 열기도 한다. 화가뿐만 아니라 그림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작품활동에 필요한 도구를 공동구매도 한다. 더 많은 이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월간지 발간도 준비 중이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선 많은 비용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치에 동의하는 후원사들도 모집한다. 이 과정 속에는 이사장인 황의록 아주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역량과 경험이 묻어져있다. 황 이사장이 본인의 사재를 털어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 체계를 만들었건만, 하필이면 ‘협동조합’ 법인을 선택했다. 화가와 소비자를 위한 협동조합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위한 결정이란다.
협동조합이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의 하이라이트는 가수 이랑의 수상 장면이었다.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아 수상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 가수 이랑은 본인이 받은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친다. 트로피는 가수 이랑의 한달 방세였던 50만원에 팔려나간다.
객석에 있던 아티스트들과 관객들에게 즐거운 퍼포먼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지만 보상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가수 이랑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가수 이랑의 노래를 듣고 즐기고 응원하는 이들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매월 회비를 납부하면서, 이랑의 작품활동과 생활을 지원한다. 그 대신 조합원은 조합원을 위한 콘서트를 저렴한 값에 즐기고 신규 앨범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런 협동조합이 꼭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일 필요는 없다. 앞서 소개했던 한국화가협동조합 역시 일반협동조합이지만 비영리사업을 주로 진행한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필요 때문에만 생겨나지 않는다. 사회적인 필요, 문화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시대의 협동조합은 가장 협동조합적인 방식으로 소중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연구원으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컨설팅하고 교육하는 쿱비즈협동조합의 이사로 활동하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지난 3월 사표를 던졌습니다. 지금은 쿱비즈협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협동하는 청년에서 협동하는 노년이 되고 싶은, 협동조합과 사랑에 빠진 남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