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카킨도 지역, 11년된 월드비전 사업장
우간다 서쪽 끝, 카킨도(Kakindo)로 가는 길은 멀었다. 16시간 걸려 도착한 공항에서, 다시 6시간을 차로 달렸다. 포장도로는 붉은 흙길로 바뀌었고, 길옆으로 줄줄이 선 나무에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곳. 여기는 월드비전이 2006년 첫 삽을 뜬 카킨도 사업장이다. 올해로 11년째. 아이와 마을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 식수도, 보건도, 영양도, 안전도, 부모들의 소득까지도 조금씩 갖춰가야 하는 먼 길. ‘끝이 있을까’ 싶은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변화의 현장을 찾았다.
◇아동을 위한 자립 마을
“사람은 넘쳐나는데 깨끗한 물은 부족했어요. 아이들 영양실조도 심각했고요.” 2007년부터 이곳을 지켜온 나오미(34) 월드비전 카킨도 지역개발 매니저의 말이다. 처음 5년은 급한 불부터 껐다. 말라리아, HIV, 수인성 감염 질병….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식수도 파고, ‘아동 결연’을 맺어 예방접종도 하고, 영양교육도 했다. 5년 이후엔 사업을 좀더 촘촘하게 엮었다. 영아 예방접종, 산모 관리, HIV 테스트를 위해 시골을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도 시작했다. 학교에선 남녀 아이들에게 면 생리대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부모들에겐 소득 증대 교육을 했다.
“식수 펌프를 팔 때는 꼭 ‘식수 위원회’를 꾸려요. 식수 위원회가 주체가 돼서, 마을 사람들 머릿수대로 돈을 걷어 초기 펀드를 조성합니다. 수리나 부품 구입 등 돈의 사용 시기나 내역도 위원회에서 정합니다. 저희는 결국 떠날 사람이니, 지역이나 지역정부에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죠.”(나오미 지역개발 매니저)
◇지역이 이끄는 변화
11년이 지나자, 지역이 조금씩 변했다. 그 안에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폴 마파비(31)도 그중 하나다. 그는 여자아이들의 조혼을 막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 모임’ 리더다. 멤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조혼을 막을 방법을 실컷 얘기하다 돌아간다. 우간다 현지 NGO들이 힘을 모아 조혼 신고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한목소리를 냈다. 그는 어린 조카들을 맡아 키우면서부터 마을 내 소녀들을 지킨다. 여자아이를 꾀는 어른들을 경찰에 신고도 한다. 2년 전부턴 다른 마을 아버지들과도 함께한다.
옆 마을에 사는 베로니카(54)는 이곳의 ‘리드 마더’다. 똑같이 가난한 환경임에도, 그녀의 아이들이 유독 건강한 걸 지켜본 월드비전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베로니카는 ‘지역기반 영양식습관 교육법’을 이끈다. 일명 현지에서 구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교실이다. 그녀는 “한 엄마가 데려온 아이가 3개월 만에 6㎏이나 늘어 등뼈도 더 이상 도드라지지 않은 걸 봤다”고 했다.
2006년 지원 시작, 올해로 11년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조성위해
식수, 보건부터 교육, 환경까지
지역 사람들이 변화 이끌도록 해면 생리대, 평화 교육 통해
아이들이 부모에게 영향주기도
◇마을이 자란다, 아이와 함께
지난 20일, 우간다 서쪽 카킨도 지역에서 찾아간 키리사 초등학교 교실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댄스 대결 참가자는 총 3개팀, 키냐 르완다족, 반요로족, 바키카족 등 각기 다른 부족 출신이다. ‘피스 빌딩(Peacebuilding·평화 구축)’ 수업의 일환이다.
“르완다에서 이주민이 많이 넘어오다 보니, 부족 갈등이 상당해요. 다른 부족에서 시집온 여자를 죽이기도 하고,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요. 건강한 지역이 되려면 평화 문제를 다룰 시기라고 봤어요.” (나오미 지역개발 매니저)
피스 빌딩 사업이 시작된 건 3년 전부터다. ‘피스로드(Peace Road) 커리큘럼’을 도입해, 14개 학교에 담당교사 두 명씩을 뒀다. 지난 한 해 트레이닝을 거친 후, 올해 초부터 본격 평화 교육이 시작됐다. 방법은 단순했다. 한데 어우러져 놀고, 먹고, 춤추기. 배려하는 법 배우기. 키리사 초등학교의 ‘평화 교사’ 아트곤자 머시(31)씨는 4개월째임에도 “변화가 놀랍다”고 했다.
“남학생들에게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갈 때 쓸 수 있는 공간을 짓게 했어요. 일부러 각기 다른 부족 친구들을 섞어놓았죠. 아이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스스로의 장점이나 가족의 모습을 적어보게 하고, 서로 공을 던지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해요. ‘우리가 다르지 않고, 친하게 지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줘요.”
효과는 컸다. 아이들이 지역의 ‘평화 대사’가 됐다. 우간다의 반요로족 출신인 아시바 윌슨(16)군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 동네로 들어온 아이들이 싫었어요. 싸움만 많아지고 스트레스만 컸거든요. 어른들도 마녀 집이라고 했고요. 이제는 친구들 너무 사랑해요.” 처음엔 시큰둥하던 엄마 아빠도 서서히 바뀌었다. “이제는 이 친구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도 해요.”
◇4년, 남아있는 과제들
자립까지 4년. 아직 남아있는 장애물도 있다. 바로 기후변화. 매년 두 번씩 꼬박꼬박 찾아왔던 우기가 언젠가부터 고장났다.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하고, 내리는 비도 줄었다. “10년 전에 왔을 때는 여기가 다 숲이었어요. 나무를 베어버려 이젠 다 옥수수밭이에요.” 월드비전은 지난해부터 ‘환경’도 새롭게 다루기 시작했다. 숲을 재생하는 프로그램이다. 시골 마을에서 만난 이리자부(45)씨의 커피나무 잎은 어른 손보다 컸다. 100년은 족히 됐다는 귀리나무 그늘진 곳으로 커피나무, 카카오나무, 카사바나무가 쭉쭉 커가고 있었다. “귀리나무 잎에는 질소가 풍부해요. 커피 재배에 아주 좋습니다. 나무를 베어 버리면 우리 지역엔 새도, 동물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예요. 나무를 베지 않고도 더 좋은 수확을 할 방법이 있어요.”
지난해부턴 지역정부도 나서 생태 순환 농업을 적극 장려한다. 그는 사실 지역에서 손꼽히는 엘리트다. 농사지어 대학도 나왔고 ‘소액 금융’ 워크숍으로 인도에도 다녀왔단다. 다른 삶도 가능했을 텐데, 그에게 카킨도로 돌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곳이 곧 제 삶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