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⑧ 문제 정의에 관한 문제 #2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아침에 눈을 떴더니 집 앞에 지름 30m의 싱크홀이 생겼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더니, 모두 삽 한 자루씩을 들고 왔다. 문제가 해결될까? 지질, 토목, 건축 등 관련 전문가와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도 모두 모여야 한다. 반대로 지름 1m의 웅덩이가 생겼다. 이웃집에 연락했더니, 지질, 토목, 건축 전문가와 정부, 지자체에 연락하겠다고 한다. 이때는 삽 한 자루만 들고 오면 된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해결 대안은 크기가 맞아야 한다. 큰 문제를 지향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나치게 크다’라는 말은 상대적이다. 큰 문제를 정의했다면 그에 맞는 대안이 있어야 하고, 문제를 작게 정의했다면 또 그에 적절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환경 문제’를 제기할 때는 그에 맞는 해결 대안을, ‘한강 수질 오염 문제’를 제기할 때는 또 그에 맞는 해결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결될 것 같고, 사람들이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

몇 년 전, ‘과자 과대포장 고발’ 영상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만약, 그 청년이 ‘과자 업체의 부도덕성 고발’이라고 했거나, ‘대기업의 사회적 윤리 위반’이라고 했거나,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대기업의 시장 지배’라고 했다면, 우리가 그만큼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냈을까? 우리가 만약 그 문제에 그만큼의 관심이 없었다면, 언론은 그 문제를 다루었을까?

광고, 홍보 등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1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 부족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 2만 원의 후원금이 필요하다면,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문제의 크기와 해결 대안의 크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5명의 어린이에게 1개월 동안 영양식을 제공할 수 있으니, 2만 원을 후원하라는 제안을 한다. 심지어 이미지에서도 이 원리는 통한다. 800만 명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못 가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수의 아이만 보여준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800만 명이라는 숫자보다 이 어린이 하나의 문제라고 여기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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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국제구호단체 유니세프의 모금 포스터. ⓒunicef

 

사회 문제를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예도 있다. 사회적기업 컨설팅을 하다 보면 ‘청년 문화예술가들의 경제적 자립’ 문제에 관해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있다. 동의한다. 청년 문화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점차 문화예술이 우리 곁에서 멀어질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만의 존재 이유가 있다. 공기, 바람, , , , , , 장난감, 안경, 커피 등등. 지금 당신 주위를 둘러보라. 그중에 존재 이유가 없는 무엇인가? 우리는 존재 이유에 가치를 매겨서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소유하거나 일시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청년 문화예술가들이 만든 작품 또는 상품은 어떤 존재 이유가 있는가? 그들이 고민해야 문제는 ‘경제적 자립’ 아니라,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서 있는 역할’이다. 역할이 있고 수행할 있다면, 경제적 자립은 저절로 따라오는 보상이다. 서울 명동을 지나는데, 소극장으로 보이는 곳에 인상적인 간판이 있었다.

예술이 밥을 먹여줄 수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을 이기심(利己心)이라고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최근 2년여 동안 참여한 서울시의 전통시장 지원 사업에서 뒤늦게 깨달은 것이 있다. 전국에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지만, 도대체 전통시장을 살려야 하는지 이유를 없었다. 전통시장이 잘 돼서 상인이 돈을 번다고 세상에 무엇이 바뀌는지 이해할 없었다. 단순히 마케터로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을 뿐이다. 모두 마치고 돌아보니, 전통시장은 우리에게 존재 이유가 있었다. 대형마트가 생기기 전에 전통시장은 우리의 삶에 많은 영역을 차지했다. 좋은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이웃과 함께 장을 보기도 했고, 친구 한두 명은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사하셨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고, 배움의 터전이기도 했다. 흔히들 전통시장에는 정이 있다고 한다. 대형마트가 생겨나자 전통시장에 정은 사라지고 소비 기능만 강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소비는 대형마트가 잘하는 역할이다. 그것이 대형마트의 존재 이유다. 전통시장이 잘하는 것을 잘해낼 , 우리에게 존재 이유가 있다. 막연히 전통시장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이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있을지를 얘기해야 한다. 역할을 잘해낼 , 전통시장이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년 예술가들의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청년 예술가들이 우리의 삶에 무엇을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청년들에게 자신의 작품과 상품을 내놓을 기회가 많지 않은 문제도 있다. 그것은 ‘경제적 자립’ 아니라 ‘기회’ 문제다.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다. 기득권이 자신이 가진 기회를 청년들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그리고 청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려,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위로하거나 풍요롭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다.

3 , 어느 청년 사회적기업가와 사회 문제를 정의하는 멘토링을 하고 있었다. 기업이 하는 일은 청바지 업사이클링이었다. 아버지가 입던 청바지로 아들을 위한 파우치를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청바지를 버리지 않고 멋지게 재사용하는 것이다. 그가 처음 주장한 사회 문제는세상에 청바지가 너무 많다였다. 세상에 청바지가 많은 문제인가! 한참을 파고들었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면바지가 썩는데 8~10년이 걸리지만, 청바지는 80년이 걸린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많은 청바지 파우치를 만드는 아니라, 더는 파우치를 만들 청바지가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가 사회적기업을 하는 이유는 청바지 업사이클링이 아니라, 청바지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다.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했다. ‘기업은 궁극의 질문 하나를 던져놓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그의 대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의 고객이 점차 없어지고 있는가?

고객이 없어진다는 것은 파우치로 만들 청바지가 더는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신이 하려는 일은 업사이클링 파우치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청바지를 쉽게 사고 쉽게 버리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사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은 그것으로 우리의 조직이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함이다. 진정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되면 세상은 대가로 우리의 조직도 성장시켜 것이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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