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경력·장애인 고용 성과도 거래하자”…보조금 넘어선 사회문제 해법 제안

[현장] ‘넥스트 솔루션: 보조금·규제를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로’ 세미나
사회적 가치 거래, 어디서 적용할 수 있나…시장 작동 위한 조건 짚어

“보조금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많이 연구돼 왔지만 영원히 보조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 안에서 돈이 도는 구조를 고민하다 보니 ‘거래’라는 방식이 나왔습니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가 1일 서울 성동구 MYSC 메리히어 메리스튜디오에서 열린 ‘넥스트 솔루션(Next Solution): 보조금, 규제를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로’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그는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한 만큼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기업과 개인의 참여를 넓히고,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월 1일 서울 성동구 MYSC 메리히어 메리스튜디오에서 열린 ‘넥스트 솔루션: 보조금·규제를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로’ 세미나에서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

SK그룹 산하 사회적가치연구원(CSES)과 엠와이소셜컴퍼니(MYSC)가 함께 연 이번 세미나는 보조금과 규제를 넘어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사회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청년 경력 형성과 장애인 고용 등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사회적 가치의 거래 가능성을 살펴봤다. 거래를 위한 조건과 제도적 과제도 함께 논의했다.

사회적 가치는 이제 윤리를 넘어 경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 2025’에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등을 세계 경제와 사회를 위협하는 주요 위험으로 꼽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임팩트 투자부터 사회성과 달성 정도에 따라 보상하는 임팩트 연계 금융까지, 사회적 가치와 자금을 연결하는 다양한 방식이 등장했다.

사회적 가치 거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문제를 해결해 만든 성과 자체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 성과를 측정해 가격을 매기고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탄소배출권처럼 원래 가격이 없던 가치도 측정과 제도 설계를 거치면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임가영 사회적가치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회적 가치 거래는 가능과 불가능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계하고 합의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사회성과 거래 플랫폼 ‘커먼 굿 마켓플레이스(CGM)’에서는 사회성과를 측정·검증해 거래 가능한 ‘임팩트 자산’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330만 달러(약 45억3400만 원) 이상이 거래됐다. 국내에서는 MYSC가 코이카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스타트업의 사회성과 자산화를 추진 중이다. 인도에서 교육 솔루션을 운영하는 태그하이브를 비롯해 머쉬앤·보딧 등 3곳은 현재 사회성과 검증을 진행 중이며, 2곳도 추가로 자산화할 예정이다.

MYSC는 코이카와 함께 한국 스타트업 5곳의 사회성과를 글로벌 사회성과 거래 플랫폼 ‘커먼 굿 마켓플레이스(CGM)’에 등록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CGM에 올라온 태그하이브와 머쉬앤의 프로젝트. /CGM 홈페이지 갈무리

◇ 청년 경력·장애인 고용도 ‘거래’ 대상으로

이날 세미나에서는 청년 고용과 장애인 고용을 사회성과로 보고 거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김정태 MYSC 대표는 청년이 첫 직장에서 3년간 경력을 쌓은 성과를 ‘청년경력형성크레딧’으로 발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졸업 후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1개월이 걸리는데,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7개월에 불과하다”며 “청년 채용 수보다 청년이 첫 일자리에서 경력자산을 만들었는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크레딧은 1~3년 차에 걸쳐 나눠 발급하고, 직무 훈련과 임금 상승 등 경력 형성 성과를 평가한다. 기업이나 기관이 크레딧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구조다. 해외에서도 고용 성과에 보상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인도는 올해 정부와 기업 등 민간의 자금을 모아 약 900억 원 규모의 ‘스킬스 아웃컴스 펀드’를 조성했다. 훈련기관이 자격 취득과 취업, 고용 유지 등의 성과를 내면 검증을 거쳐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장애인 고용도 의무고용률을 초과해 고용한 성과를 거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조희진 사회적가치연구원 팀장은 장애인 의무고용제가 1991년부터 시행됐지만 국내 10대 기업 중 7곳이 의무고용률에 미달하는 등 실효성이 낮다고 짚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 고용에 따른 편익보다 비용이 크다”며 “고용이 늘지 않으면 결국 정부의 추가 지원이 필요해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무고용률을 초과한 기업의 고용 성과를 미달 기업이 구매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다만 고용 인원뿐 아니라 고용 형태와 질을 어떻게 반영할지 기준을 설계하고, 거래가 장애인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임금 수준이나 근속기간, 고용 형태 등 일자리의 질을 보여주는 요소를 거래 가치에 반영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적 가치 거래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며 “노동계와 장애계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회적 가치 거래, 신뢰 높일 측정·검증 필요”

(왼쪽부터) 9월 1일 열린 ‘넥스트 솔루션: 보조금·규제를 넘어 사회적 가치 거래로’ 세미나에서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실장, 박미 코이카 혁신기술사업팀장, 김정태 MYSC 대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강서윤 월드비전 팀장, 이지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가치연구원

이어진 토론에서는 사회적 가치 거래의 필요성과 적용을 위한 조건이 논의됐다. 박미 코이카 혁신기술사업팀장은 정성적 설명만으로는 ‘국내에도 어려움이 많은데 왜 해외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성과를 사회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지표화해 시장의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공과 시민, 시장이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이카는 이 같은 성과를 측정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로 연결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봤다.

거래에서 발생한 보상이 당사자의 참여를 이끌고, 사회문제 해결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서윤 월드비전 팀장은 에티오피아의 조림사업에서 탄소크레딧 판매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해 학교와 도로 등을 정비한 사례를 들었다. 주민들이 사업 성과를 체감할수록 조림과 재조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이는 다시 성과를 높여 자금 제공자의 사업 리스크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가 작동하려면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검증할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도 과제다. 이지윤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장애인 고용을 형식적으로 하면서도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는 ‘소셜 워싱’이 거래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짚었다. 또 사회적 가치에 화폐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선의를 돈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경제적 유인을 보완하기 위한 방식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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