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완주하는 여정은 없다”…사회혁신가의 ‘페이스’를 지키는 법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동문 ‘N포럼’…올해 12회째
소진 넘어 조직·관계·AI로 ‘오래 일하는 조건’ 모색

“셰르파와 코파일럿, 페이스메이커는 역할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타인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곁에서 최적의 경로를 제시하고 동력을 더해줍니다. 혼자 완주하는 여정은 없습니다.”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6 N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혁신가가 오래 활동하려면 개인의 의지뿐 아니라 업무 부담을 나누고 판단을 돕고 속도를 조절해 주는 동료와 조직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동문들이 사회혁신 현장의 의제를 논의하는 ‘2026 N포럼’에서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는 사회혁신가가 혼자 버티기보다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포럼

N포럼은 아산나눔재단의 사회혁신 리더 양성 프로그램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동문들이 현장에서 마주한 고민을 직접 의제로 정해 여는 자리다. 동문회 엔스퀘어(NSQUARE)가 주최하며 2015년 시작해 올해 12회를 맞았다. 올해 주제는 ‘페이스메이커―우리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는 방법’이다. 사회혁신가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개인의 회복을 넘어 조직과 동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 계속되는 소진 신호…회복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으려면

공익활동가의 건강과 소진 문제는 여러 조사에서 반복해 나타났다.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2019년 활동가 약 1000명을 조사했을 때 55%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2021년 조사에서는 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조건 가운데 건강 영역이 가장 낮았다. 동행이 2025년 심리상담을 지원한 활동가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56% 이상이 심각한 수준의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진 동행 사업처장은 높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오히려 활동가의 도움 요청을 늦출 수 있다고 짚었다. 자신의 어려움을 개인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 처장은 “활동을 하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고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조건에서 누구나 그럴 수 있다”며 “소진을 서로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활동가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조직 차원에서 설계한 사례도 소개됐다. 쉬운 정보 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은 구성원이 오래 일하는 것을 조직의 전문성과 연결했다. 현재 구성원은 21명으로 평균 근속기간은 4년 7개월, 5년 이상 근속자는 절반을 넘는다. 설립 이후 누적 퇴사자는 6명이다. 쉬운 정보는 입사 후 제작·감수·협업 경험을 거치며 전문성이 쌓이는 만큼 구성원의 경험이 곧 조직의 역량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일하는 방식에도 반영됐다. 소소한소통은 4.5일제와 유연근무제, 월 8일 리모트워크 등을 운영한다. 4.5일제도 한 번에 도입하지 않고 월 1회 금요일 조기 퇴근에서 시작해 횟수를 단계적으로 늘렸다.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는 “구성원이 필요로 하는가, 조직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 두 가지가 맞아야 회사가 할 수 있다”며 “시도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함께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회고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AI 활용을 통한 업무 방식의 변화도 논의됐다. 송다혜 지피터스 총괄은 반복 업무를 줄여 사람과 커뮤니티에 집중할 수 있다고 짚었다. /N포럼

◇ 반복 업무는 AI에…사람에게 돌려주는 시간

AI는 사회혁신가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변수로 제시됐다. 이중학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AI가 직무 자체를 대체하기보다 그 안의 과업을 나눠 맡는 방향으로 업무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봤다. 중간관리자가 해온 정보 취합·정리·전달 등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AI를 개인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도구에 머물게 하기보다 업무 흐름에 연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인이 AI를 잘 쓰는 것과 일의 흐름에 AI가 녹아드는 것은 매우 큰 차이”라며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반복 업무를 덜어낸 시간을 사회문제 해결 등 핵심 업무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AI를 업무 흐름에 연결한 사례도 소개됐다. 송다혜 지피터스 총괄은 두 명이 500명 규모의 4주 AI 스터디를 운영하며 설문 취합과 인증, 고객응대에 상당한 시간을 썼다. 송 총괄은 “매일 설문 데이터를 내려받아 데이터베이스에 옮기는 데만 한 시간가량이 들었고, 밤에는 인증과 고객응대를 위해 대기했다”며 “반복 업무를 AI로 자동화한 뒤 참가자가 과제를 더 잘 수행하도록 돕고 커뮤니티 경험을 설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됐다”고 전했다.

송 총괄은 반복 업무를 줄이는 것에서 나아가, 기술을 함께 익히는 관계의 역할도 강조했다. 과거에는 코딩 없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노코드 도구로 현장의 아이디어를 대신 구현해줬지만, 사업이 확장될수록 다시 기술 지원을 요청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후 사람들이 서로 기술의 문턱을 넘도록 돕는 커뮤니티에 주목했다. 그는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줬던 건 기술의 힘이었다”며 “조직 내에서 흔들려도 방향을 잡아준 건 커뮤니티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사람의 소진을 개인의 회복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오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이날 포럼 전반을 관통했다. 박정웅 임팩트얼라이언스 팀장은 “소진은 어떤 전투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쩌면 전쟁의 문제일 수도 있다”며 “각자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지보다 고개를 들고 전장의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고 짚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