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조달러 ‘부의 이전’…“부모 재단 아닌 가치 물려줘야”[AVPN 2026] 

“부모의 의제 답습 말고, 경험에서 문제 찾아야” 

대규모 부의 이전에 따라 세대 간 기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단순히 부모 세대가 만든 재단이나 사업을 자녀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가치’는 이어가되 구체적인 기여 방식은 다음 세대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인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에서 열린 ‘2026 AVPN 글로벌 콘퍼런스’ 둘째 날 ‘유산의 전환: 세대 간 기부의 재구상(The Legacy Shift: Reimagining Generational Giving)’ 세션에서 세대교체기에 들어선 아시아 필란트로피의 방향이 논의됐다.  

토론은 프리야 샹커(Priya Shanker) 스탠퍼드대 필란트로피·시민사회센터(PACS)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았고, 니르자 비를라(Neerja Birla) 아디티야 비를라 교육재단 이사장과 로니 스크루발라(Ronnie Screwvala) 스와데스재단 설립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한 대규모 부의 이전이 있다. 스위스금융그룹(UBS)이 올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될 민간자산은 83조 달러에 이른다. 아시아·태평양 부유층 가문 가운데 40% 이상은 이미 자산을 이전하고 있거나 승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샹커 사무총장은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다음 세대가 마주할 문제도 달라지는 만큼, 앞선 세대의 기부 방식이나 사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세대의 진정성 있는 참여를 끌어내려면 이들이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한다”며 논의의 문을 열었다.

◇ 개인적 경험이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지다 

패널들은 개인적인 경험이 어떻게 사회문제 해결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각자의 통찰을 나눴다. 

비를라 아디티야 비를라 교육재단 이사장은 정신건강 분야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자신이 겪은 정신건강 문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음에도 고립감을 느꼈고, ‘자원과 의료 접근성마저 부족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까’를 고민하게 됐다”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금기와 낙인을 지우는 일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를라 이사장은 2016년 정신건강 사업 ‘엠파워(Mpower)’를 시작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인도인 5명 중 1명(약 2억 명)이 평생 한 번은 우울증을 겪을 수 있지만, 사회적 낙인과 인식 부족으로 실제 도움을 구하는 비율은 10~12%에 불과했다. 엠파워는 상담·진료와 교육·인식 개선 사업을 통해 이 간극을 줄이는 데 주력해 왔다. 엠파워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상담 약 26만 건, 헬프라인 상담 약 20만 건을 진행했고 워크숍 참여자는 약 43만 명에 이른다. 뭄바이 공립학교 교사 1만여 명을 교육해 학생 20만 명 이상이 정신건강 지원의 혜택을 받도록 한 사업도 추진했다.

스크루발라 설립자 역시 1990년대 인도 농촌 주민들이 직면한 식수 부족과 열악한 생활 기반을 직접 목격한 것이 필란트로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2년 자신이 창업한 미디어 회사 UTV를 월트디즈니에 약 14억 달러 규모로 매각하며 더 큰 재원을 확보하자, 이를 사회 변화의 촉매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아내 자리나 스크루발라와 함께 2013년 스와데스재단을 세우고, 농촌의 물·위생, 보건, 교육, 생계 문제를 함께 다루는 통합적 지역개발 모델을 운영해 왔다.

재단은 현재 1만여 명의 지역 자원봉사자와 270여 명의 상근 인력을 두고 있다. 2017년에는 마하라슈트라주 라이거드 지역에 가정용 화장실 1만5000개를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주민이 지역사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마을개발위원회(VDC) 모델을 도입했다. 스크루발라 설립자는 “사업에 앞서 주민들에게 ‘어떤 마을에서 살고 싶은가’를 묻고, 물과 화장실, 교육 등 주민들이 꼽은 필요를 토대로 사업을 설계했다”며 “주민이 원하는 변화를 직접 정하고 실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두 패널은 부모 세대가 특정 사업이나 의제를 물려주는 방식보다, 자신들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구체적인 기여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 “과감히 실행하고, 신뢰를 이어가야” 

사회문제 해결 방식을 선택한 뒤에는 과감히 실행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비를라 이사장은 “실행 과정에서 무엇이 통하고 통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검증하며 방향을 수정해 나가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짚었다. 스크루발라 설립자도 “연구와 분석도 필요하지만, 서류상의 논리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만큼 과감히 정해진 틀 밖으로 뛰쳐나가 실행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세션 말미, 두 사람은 이제 막 필란트로피 여정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스크루발라 설립자는 “자금을 여러 사업에 얕고 넓게 분산하기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훨씬 더 큰 승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비를라 이사장은 ‘신뢰’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필란트로피 자본이든 민간 자본이든 타인의 자원과 기대를 위임받아 움직이는 이상 모든 관계의 근간은 신뢰일 수밖에 없으며, 이 절대적인 가치만큼은 다음 세대에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로 세션을 마무리했다.

한편 AVPN은 43개 시장에서 700개 이상의 자금 제공 기관과 혁신 조직, 중개기관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회적 가치 네트워크다. 올해 콘퍼런스는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아시아 실행의 청사진(A Blueprint for Action in Asia)’을 주제로 진행된다.

인도 뉴델리=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댓글 작성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