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1년, 상장사 84% 이사회 바꿨다…일각선 소송·사업 지연 우려

개정 상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나면서 국내 상장사들의 이사회 풍경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가 책임을 지는 대상이 주주로 넓어지자, 안건을 심의하는 내부 절차가 엄격해지고 전문가 의견을 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다만 소송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법 개정 이후의 경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84.3%가 상법 개정에 맞춰 이사회 운영 제도를 변경했다고 응답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확대되자 사전 방어막 구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들이 선택한 구체적인 대응책(복수응답)을 보면 사내 법무나 준법 감시 조직을 통한 사전 모니터링 단계를 새로 만들거나 강화했다는 답변이 47.0%로 가장 비중이 컸다. 회계나 법률 등 전문 기관의 외부 자문을 더 많이 받기 시작했다는 대답이 45.7%로 뒤를 이었으며, 이사회 의사록에 개별 이사들의 의견과 표결 결과를 명확히 남기기 시작했다는 비중도 43.7%에 달했다. 이밖에 회의 전 안건을 미리 공유해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정비(39.7%)하거나 별도의 특위를 꾸리는 방식(14.0%)도 동원됐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기업 경영에 긍정적인 신호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조사 대상의 39.6%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책임감이 커지고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는 효과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22.4%의 기업은 규제 준수를 위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결론을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부정적인 부담이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법적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공포감은 상당한 수준이다. 조사에 참여한 상장사의 절반이 넘는 53.7%가 주주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위험성이 전보다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위험이 줄었다고 본 기업은 6.0%에 그쳤다.

이 같은 리스크는 경영 현장의 발을 묶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체의 21.7%는 사내외 법적 검토가 길어지는 바람에 신규 투자나 사업 재편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이 늦어지거나 보류, 혹은 아예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향후 도입될 연쇄적인 제도 개편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여전히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당장 다가오는 단계별 의무화 조치와 관련해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 중 전자주주총회 시스템과 운영 체계를 완비했다고 밝힌 곳은 16.0% 수준이었다.

또한 자산 1000억 원 이상 2조 원 미만 기업 중에서 독립이사 선임 기준을 맞추기 위해 후보자를 발굴하고 검토하는 단계에 있는 기업은 52.8%로 집계됐다. 강화된 자사주 소각 규정과 관련해서는 의무 대상 자사주를 가진 기업의 64.9%가 여전히 세부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이에 따라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경영 위축을 막을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장사들은 정책적 보완 과제로 노동조합의 이익 배분 요구 등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사가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충실의무 기준 마련(37.3%)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과감한 경영 활동을 보호해 주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해 달라는 요구(20.3%)와 기업 실무자 대상의 법률 교육 지원(12.7%)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금윤호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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