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는 있지만 투자 기준은 없다…기후솔루션 “투자 정합성 규제 필요”
국내 ESG 펀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펀드 명칭과 실제 투자 간 불일치를 통제할 제도적 기반이 미비해 그린워싱 문제가 시장 구조에 내재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장은 확대됐지만 이를 검증할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기후솔루션이 29일 발간한 보고서 ‘ESG 펀드 그린워싱을 해결하는 방법: 해외 규제 사례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ESG 펀드 규제 문제를 ‘공시 vs. 투자 정합성’이라는 두 축으로 분석하고, 한국이 공시 단계에는 진입했지만 ‘투자 구조 검증’ 단계로는 넘어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SG 펀드 시장은 2019년 약 5100억 달러(약 785조 원) 규모에서 2025년 약 4조1300억 달러(약 6355조 원)로 약 8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국내 ESG 펀드 시장도 빠르게 확대돼 2025년 기준 약 9조3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그러면서 ESG를 단순한 투자 트렌드를 넘어 자산운용업의 핵심 투자 분야로 자리 잡았으며 ‘ESG’라는 명칭 자체가 투자자에게 일종의 신뢰 신호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 신호의 신뢰도다. 보고서가 국내 ESG 펀드를 분석한 결과, ‘녹색’·‘지속가능’·‘친환경’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펀드 다수가 석탄화력, 석유·가스, 고배출 제조업 등 ESG 취지와 배치되는 산업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사례가 확인됐다. 같은 ‘ESG 펀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어도 실제 포트폴리오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런 결과가 개별 운용사의 일탈이 아니라 “명칭과 투자 사이의 정합성을 강제하지 않는 규제 구조”에서 비롯된 구조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ESG 펀드 규제는 자산운용사가 ESG 투자 전략과 평가 기준을 공시하도록 요구하지만, 그 전략이 실제 자산 구성에 얼마나 반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량 기준은 없다. 결과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투자한다고 밝히는지’는 규제하면서도 ‘실제로 그에 맞게 투자하는지’는 규제하지 못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 미국·EU·싱가포르, 공시 넘어 투자 기준으로 그린워싱 규제
해외 주요국의 규제 방향은 이와 정반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ESG 관련 명칭을 사용하는 펀드의 경우 전체 자산의 80% 이상을 해당 투자 전략과 일치하도록 운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럽연합은 SFDR과 펀드 명칭 가이드라인을 통해 최소 투자 비중 기준은 물론, 화석연료 기업 투자 배제 기준까지 명문화했다. 싱가포르도 펀드 순자산의 최소 3분의 2를 ESG 전략과 일치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들 규제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펀드명과 포트폴리오 간 ‘정량적 정합성’을 규제 대상으로 명시했다는 것이다.

집행 측면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미국·유럽·호주 등은 ESG 전용 법 제정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증권법·금융법상 ‘허위 표시 및 투자자 오인 유발 금지’ 조항을 그린워싱 규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그 결과 다수의 대형 자산운용사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일부 펀드는 명칭 변경이나 운용 전략 수정이 강제됐다. 특히 호주는 별도 ESG 법 없이도 일반 금융규제만으로 지속적으로 제재 사례를 축적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ESG 펀드 그린워싱에 대한 공식 제재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다. 공시 의무는 존재하지만 이를 토대로 실제 투자 내역을 검증·제재할 정량 기준이 없어 ‘위반’ 자체를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공시는 있는데, 위반이 정의되지 않은 시장”이라며 규제가 시장의 신뢰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SG 펀드 규제 공백은 한국의 기후 전환 자금 동원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ESG 펀드 그린워싱이 단순한 금융상품의 표시 문제가 아니라 자본 배분을 왜곡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투자자가 친환경·저탄소 전환을 기대하며 자금을 맡겼음에도 실제 자금이 고탄소 산업으로 유입될 경우, 투자자 신뢰가 훼손되고 기후 대응에 필요한 자본도 정작 필요한 산업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두 단계 접근’을 제안했다. 먼저 중장기적으로는 ESG 펀드에 대해 최소 투자 비중 기준(예: 70~80%)과 화석연료 등 투자 배제 기준을 도입해 펀드명과 실제 포트폴리오 간 정합성을 정량 기준으로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단기적으로는 제도 정비 이전 단계에서도 기존 자본시장법상 부실·허위 공시 관련 조항을 활용해 ESG 명칭 오용 사례를 적극 제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 저자인 기후솔루션 법무팀 최윤재 연구원은 “현재 ESG 펀드 시장은 이름과 실제 투자 내용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며 “단순 공시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기준과 집행이 결합된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SG 그린워싱은 단순히 표시 문구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결정하는 시장 구조의 문제”라며 “투자자 신뢰를 유지하고 기후 대응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과 집행 체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