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멜버른·피닉스 등 40개 도시, 데이터센터 환경 관리 위한 공동 협약 출범
국내선 데이터센터 확충·유치 경쟁 활발…환경 영향 관리 논의는 과제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전력망 부담과 물 사용량 증가, 탄소 배출 등의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세계 주요 도시들이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환경·사회적 영향을 관리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런던·멜버른·피닉스 등 40개 도시는 데이터센터의 전력·물 사용을 줄이고 청정에너지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에서도 인프라 확충과 함께 전력·물 사용 등 환경 영향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는 데 필요한 연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수만 개의 서버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24시간 가동하는 시설이다. AI 서비스 이용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컴퓨팅 자원과 냉각 설비가 필요해진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이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인프라라는 점이다. 서버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전력과 물이 투입된다.
전력 소비 증가와 함께 탄소 배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전력 공급이 화석연료에 의존할 경우 AI 인프라 확대가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5~3.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 전력·물 부담 커지자 40개 도시 ‘공동 대응’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 런던과 호주 멜버른, 미국 피닉스를 비롯한 유럽·북미·아시아 지역 40개 도시는 2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기후행동 주간(London Climate Action Week)’을 계기로 데이터센터의 환경 영향을 관리하기 위한 ‘글로벌 도시 데이터센터 협약(Global Urban Data Centres Pact)’을 출범했다.
협약은 데이터센터의 청정에너지 사용 확대와 자원 효율성 제고, 도시계획과의 연계 등을 위한 공통 원칙을 담고 있다. 참여 도시들은 이를 데이터센터 인허가와 입지 선정, 기업 및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세부 기준은 각 지역의 기후와 인프라 여건에 맞게 적용된다.
도시들이 공동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가 속도가 기존 규제 체계를 앞지르고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일례로 멜버른에는 현재 약 50개의 주요 데이터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들 시설은 2030년 도시 전력 수요의 약 10%, 2040년에는 최대 2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물 사용량도 약 200억 리터로, 도시 식수 공급량의 4%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인근 지역에는 현재 운영 중이거나 건설이 계획된 데이터센터가 225개에 달한다. 케이트 가예고 피닉스 시장은 관련 사업이 모두 추진될 경우 지역 전력 수요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으며, 소음과 토지 이용, 배터리 저장시설 안전성 등을 둘러싼 주민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성명을 통해 “인공지능과 디지털 인프라는 전 세계 도시의 미래 번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주민들은 성장이 책임감 있게 관리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니컬러스 리스 호주 멜버른 시장은 데이터센터가 “1950년대 에어컨 이후 전력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며 투자 유치 경쟁 과정에서 환경 검토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에어컨 보급에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데이터센터 증가는 불과 몇 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시티 경쟁이 환경 훼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AI 인프라 확충 속도 내는 한국…환경 논의는 공백
한국에서도 AI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에 7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조성 중이다. 삼성SDS는 경북 구미에 60MW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하는 한편, 전남 해남 국가 AI컴퓨팅센터 사업에도 참여했다. SK그룹은 이달 말 국내 주요 권역에 1GW(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 5곳을 구축하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AI 데이터센터를 국가전략기반시설로 지정하고 입지 규제 완화와 인허가 절차 간소화, 세제 지원 등을 담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인프라 확충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02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AI를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규정하며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 도약과 성장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10조1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GPU 1만5000장 추가 확보와 AI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전력·환경 영향에 대한 고민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전환연구소·참여연대·환경정의가 지난해 지방선거 공약을 분석한 결과, 광역·기초단체장 후보 624명 가운데 77명(12.3%)이 데이터센터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체 선거구의 4분의 1가량(25.9%)에서 관련 공약이 등장했지만, 재생에너지 공급 대책을 함께 제시한 후보는 4명(5.2%)에 그쳤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전국에서 100곳이 넘는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환경영향평가 기록이 공개된 곳은 5곳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또 데이터센터 규제 완화와 전력·용수 공급 지원 등을 담은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국회 소위 통과 후 2개월 만에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기후·환경 영향을 관리하기 위한 입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물을 사용하는 인프라임에도 지역 수자원을 비롯한 환경·기후 영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며 “기가와트(GW)급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전력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도 함께 늘어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데이터센터 수만 늘리는 전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