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부터 야구 경기 관람에 취미를 붙였다. 초보 야구팬으로서 처음으로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자체에서 안전 안내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며칠 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구를 찾기 위한 수색이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고 나서야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스쳐 지나갔던 뉴스 헤드라인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혹시 대전을 돌아다니다 늑대와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한편으로는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야생성이 거의 없어 스스로 먹이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대전에 간 날은 늑구가 탈출한 지 나흘째였다. 늑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반응이 뉴스를 뒤덮고 있었다. 공포로 시작된 관심이 어느새 한 생명체를 향한 걱정과 애정으로 바뀐 것이다.
너무 오래 발견되지 않아 어디선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닐까 싶던 무렵, 늑구 생포 소식이 들렸다. 일면식도 없고 대전 사람도 아니며 오월드를 가본 적조차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 늑구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늑구의 탈출기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국회에서 진행한 장기 감축경로 공론화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탄소중립기본법 입법 시한을 앞두고 국회는 대국민 공론화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권자인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공론화의 특성상 짧은 기간 안에 진행될 경우 충분한 학습과 숙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헌법불합치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후기 감축 부담을 미루는 선택지가 시민 대상 설문에 포함되어 우려가 더욱 컸다. 늑구라는 이름이 붙기 전, 처음 동물원을 탈출한 늑대라는 존재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닮아 있었다.
우려와 달리 제한된 공론화 과정 속에서도 시민들은 슬기로운 판단을 내렸다. 참여 시민의 75% 이상이 초기에 더 많이 감축하는 방식으로 감축경로가 수립되어야 한다고 응답했고, 미래세대 대표단은 숙의 과정을 거친 후 전 세계 평균 감축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문항에 절반이 동의했다. 초기에 더 많이, 그리고 평균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감축목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 공론화를 통해 확인된 시민들의 뜻이었다.
잠시 경로를 이탈해 방황하던 장기 감축경로는 늑구처럼 무사히 돌아왔다. 2년 전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단기 비용 부담을 이유로 의욕적인 감축목표 수립을 기피하고, 그 책임과 피해 비용을 미래세대에 전가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회가 법으로 감축목표를 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공론화는 그동안 반복되어 온 실수를 시민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늑구의 탈출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동물원 운영 방식과 동물 복지에 관한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하듯이, 감축 부담이 미래로 떠넘겨지는 관행을 끊어내려면 입법이 필요하다. 이미 국회에 발의된 법안 8개 중 6개는 조기 감축 경로에 해당하는 중간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다. 법 개정 시한을 넘긴 책임을 피할 수는 없지만, 5월 말 국회 기후특위 임기 종료 전까지 공론화 결과를 반영한 법 개정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바란다.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앞두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공론화가 진행되는 동안 실루엣만으로는 분간하기 어려웠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공론화 결과에 대한 의혹 제기와 벼락치기로 발의된 법안들이 그 실체를 알려주고 있다. 무관심은 자격 미달이고, 무대응은 직무 유기다.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배출권거래제 4차 할당계획 수립, 그리고 장기 감축경로 입법까지, 작년부터 이어진 목표 수립 국면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저무는 노을을 뒤로하고, 돌아온 늑구와 함께 기후 목표 이행의 시간을 맞이하자.
김민 빅웨이브 대표
필자 소개
‘당사자에서 배제되고 파편화된 청년들이 기후위기의 대응의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단법인 빅웨이브의 대표입니다.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어벤져스’를 모으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하여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전히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NGO, 국회, 정부 위원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사회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후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기후 유니버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