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테크, 농업의 미래를 짓다<5·끝> 
반찬으로 농장과 도시를 잇는 ‘도시곳간’
“좋은 재료를 만들지만, 팔 곳이 없어요.”
청년 농부들의 이 말이 한 청년 창업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모님이 자양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던 옆 공간에서, 민요한 대표는 ‘로컬 농산물로 도시 식탁을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실험의 이름은 ‘도시곳간’. 평범한 골목 반찬가게 옆 작은 매장은 지금 전국 68개 지점을 둔 데이터 기반 로컬 유통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도시곳간은 지역 농가와 청년 농부들이 직접 만든 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반찬가게의 진열대가 농부들의 판로가 되고, 소비자는 그날 수확된 신선한 재료를 식탁에서 만난다. 민 대표는 “좋은 재료를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며 “고객이 반찬을 사는 동시에, 농가의 지속가능성을 지지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서울 광진구 자양시장에서 16평 매장으로 출발한 도시곳간은 한 달에 3억6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골목상권의 기적’으로 불린다. 지금은 전국 68개 지점을 운영 중이며, 연내 73곳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는 “단호박 식혜는 서로 다른 쌀 농가와 단호박 농장을 매칭해 만든 PB 상품인데, 지금까지 25만 병이 판매됐다”며 “농가와 협업이 곧 경쟁력이 된다”고 말했다.
◇ 데이터를 읽는 반찬가게
도시곳간이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민요한 대표는 “처음엔 감으로 메뉴를 만들다 팔리지 않은 반찬을 매일 버리기도 했다”며 “그때 배운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고 회상했다. 시행착오 끝에 얻은 교훈은 곧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2024년 기준 매출 260억 원 중 87%가 회원 고객에게서 발생했다. 카드 한 번만 꽂으면 고객이 무엇을, 언제, 얼마나 자주 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매장별 특색도 세밀하게 조정한다. 다산신도시 매장은 영유아 가정이 많아 저염 반찬이 잘 팔리고, 대치동 학원가 매장은 샐러드와 컵밥이 인기다. 그는 “지역별 성향을 데이터로 분석해 메뉴를 구성하고, 디지털 시스템으로 재고를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도시곳간의 차별화는 ‘데이터’에서 나온다. 그중에는 사람이 직접 모으는 데이터도 있다. “새로운 메뉴를 낼 때는 고객이 남긴 ‘먹고 싶은 메뉴’ 항목을 참고한다”며 “판매 전에는 ‘4000원이면 어떠세요? 비싸다고 느껴지시나요?’처럼 직접 물어본다”고 그는 말했다. 고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듣고 반영하면서 농가와 협업할 때도 “양을 줄이고 가격대를 낮춰보자”는 식의 제안을 건넬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고객의 피드백이 생산자와 연결되며, 농가 상품의 단가와 구성도 유연하게 조정된다. 민 대표는 “이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료를 발주하고, 메뉴를 정하고, 농가 협업량을 조정한다”고 민 말했다.
◇ ‘로컬 반찬’에서 ‘K-푸드’로, 세계 식탁 두드린다
도시곳간의 매장 대부분은 지역 농가와 직거래를 한다. 거창·부산·제주 등 가맹점은 반찬에 들어가는 농산물을 인근 소농으로부터 직접 배송받는다. 민 대표는 “직배송을 하면 물류비가 이중으로 들지 않고, 가맹점은 더 신선한 재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운송거리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이 같은 구조는 농가의 판로 확대에도 도움이 됐다. 고춧가루, 참기름, 김부각 등 로컬 제품이 대형마트에서 보기 어려운 ‘차별화된 맛’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그는 “처음엔 우리가 농가를 찾아갔지만, 지금은 농가에서 먼저 제안이 온다”며 “매출이 오를수록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된다”고 했다.

도시곳간은 최근 농협중앙회와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소풍커넥트가 운영하는 ‘엔하베스트엑스(NHarvest X)’ 프로그램에 선정돼, 매장 내에서 농협 PB상품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농협 제품은 신뢰도는 높지만 유통 채널이 제한적이었다”며 “도시곳간에서 판매하자 고객 반응이 좋았다”고 민 대표는 말했다.
현재 도시곳간은 농가와 공동 개발한 PB상품을 농협 홈쇼핑 입점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김자반·부각·전통과자 등은 이미 미국·프랑스·싱가포르로 수출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싱가포르 오프라인 매장 오픈도 앞두고 있다.
민 대표는 “K-푸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반찬은 한식을 대표할 수 있는 카테고리”라며 “도시곳간이 로컬 농산물의 판로를 넓히고, 한국 반찬 문화를 세계 식탁으로 이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