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0일(월)

탄소·ESG 규제 완화한 EU…기업 부담 줄지만 원칙은 변함없다 [글로벌 이슈]

EU ESG 정책, 변화하는 것 vs. 변함없는 것

유럽연합(EU)이 자동차 제조업체의 탄소배출 규제 적용 시점을 연기하고,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지만, 지속가능성 목표 자체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 탄소배출 규제 늦추는 EU…“2035년 목표는 그대로”

EU 집행위원회는 4일(현지시각)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탄소배출 규제 준수 시한을 늦추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적용을 완화하되, 2035년까지 신규 차량의 탄소배출을 ‘제로(0)’로 만든다는 장기 목표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번 자동차 기업 탄소배출 규제 완화가 2035년까지 신규 차량의 탄소배출을 없앤다는 목표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럽 위원회

EU 집행위원회는 당초 2025년까지 자동차 판매량의 20%를 전기차로 채워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으나, 이를 2027년까지 유예하는 개정안을 이달 중 제안할 예정이다. 또, 올해부터 신차 평균 탄소배출량 상한선을 2021년 대비 15% 낮춘 81g/km로 설정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g당 95유로(한화 약 15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제조업체들은 2025년이 아닌 2027년까지 목표를 맞추면 되며, 올해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과징금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탄소 감축 목표는 그대로 유지된다”면서도 “제조업체들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EU 27개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들이 시행 유예를 지지하고 있어 가결 가능성이 높다.

◇ 지속가능성 공시 완화…연기’되거나 ‘축소’되거나

​EU는 지난달 26일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공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EU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EU 택소노미 등 주요 ESG 규제의 일부가 완화된 것이 핵심이다.

EU는 26일 CSRDD, CSDDD, EU 택소노미 등 주요 규제를 완화하는 ‘EU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픽사베이

우선 CSRD의 적용 대상 기업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상장사의 경우 임직원 기준이 500명에서 1000명으로 상향됐으며, 비상장 기업은 공시 시점이 2026년에서 2028년으로 늦춰졌다. 비(非)EU 국가 기업에 대한 기준도 연매출 1억 5000만 유로(한화 약 2350억원)에서 4억 5000만 유로(약 7060억원)로 상향됐다.

하지만 ESG 정보 공개 시 ‘이중중대성(Double Materiality)’ 원칙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는 기업의 재무적 영향과 환경·사회적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지속가능성 평가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CSDDD(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도 시행 시점이 연기됐다. 기존에는 2027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급망 실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개정으로 인해 매출 9억 유로(한화 약 1조 4100억원) 및 임직원 3000명 이상 기업은 2028년 7월부터 일괄적으로 실사를 시작하도록 변경됐다. 또한, 공급업체 모니터링 주기도 매년에서 5년으로 완화됐다.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도 다소 조정됐다. 기존에는 CSRD 적용 기업 모두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택소노미를 반영해야 했으나, 이제는 연매출 4억 5000만 유로(약 7060억원) 및 임직원 1000명 초과 기업만 보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나 ‘환경 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DNSG)’는 원칙은 여전히 유지된다.

EU의 이번 개정안은 탄소중립을 향한 장기적 목표를 고수하면서도, 현실적인 기업 부담을 고려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딘 가운데, 미국·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EU 규제로 인해 2025년 벌금이 150억 유로(한화 약 23조 53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예를 요구해 왔다.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도 줄었지만, ESG 경영의 핵심 원칙들은 유지됐다. 기업들의 규제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려는 EU의 전략적 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이번 개정안이 산업 경쟁력과 지속가능성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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