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주는 아픔까지도 宿命으로 받아들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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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 특별 기고
네팔 지진 긴급구호 현장 ’20일간의 기록’
카트만두 북동쪽 산간지대, 7.8도 지진 발생… 지진 피해 지역 산간 오지로 접근 어려워… 구호 단체, 구호품 나르기조차 힘든 상황
무너진 건물·학교, 사람들 기거할 곳 없어… 의료품만 아닌 천막·텐트 공급 가장 시급

미상_사진_국제구호_엄홍길_2015

네팔을 찾은 지 보름째, 네팔 대지진이 발생한 지 17일째 되던 5월 12일 오전. 최초 진앙지인 고르카 만드레 지역을 찾았다.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산 아래 광활한 평지에 주민 2000여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트럭에서 쌀 포대를 내리려던 찰나 갑자기 주변이 술렁거렸다. ‘둥둥….’ 발끝부터 느껴지던 진동은 이내 ‘쿵쿵’으로 변했다. 외마디 비명이 쏟아졌다. ‘지진 노이로제’에 걸린 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또 왔다’는 걸 말이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주변 건물 없는 평지를 향해 내달렸다. 울부짖는 여인들도 있었다. 나도 따라 뛰었다. 수초 후 300m 옆의 산 한쪽 면 전체가 종잇장처럼 뒤틀리더니 거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귀를 찢는 굉음과 흙 폭풍에 주변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순간 ‘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으러 내려오지 않고 산속에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머리카락이 삐쭉 서는 공포감이 들었다.
에베레스트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자연이 주는 공포를 여러 번 경험했었다. 1988년에는 산 정상에서 진도 6.6의 지진을 맞닥뜨린 적도 있다. 눈사태가 순식간에 주변 지형을 바꿔놓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12일 고르카 지역에서 맞은 두 번째 지진은 수십년간 산에서 느꼈던 공포를 새록새록 살아나게 했다. 대낮에 눈앞에서 맞는 지진은 공포라기보단 체념에 가까웠다. 바닥이 흔들리는 순간 그냥 멍해졌다. 순간적으로 공황 상태가 됐다. 8000여명이 그렇게 희생됐을 것이다. 대부분 산속에 터를 잡고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날 이후에도 여진은 이어졌다. 숙소에서 잠을 잘 때도 가끔 창문이 덜덜거렸다. 순간적으로 ‘나가야 하나’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잠은 달아나버린다. 네팔 사람들은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 있다.

이번 지진의 가장 큰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신두팔촉 처우따라 마을의 주민들. 지역의 가옥, 학교, 보건소의 90% 정도가 파괴돼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적십자 병원과 아산재단으로부터 온 의사·간호사·행정요원 등 10명은 5월 한 달 동안 이 지역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이번 지진의 가장 큰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신두팔촉 처우따라 마을의 주민들. 지역의 가옥, 학교, 보건소의 90% 정도가 파괴돼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적십자 병원과 아산재단으로부터 온 의사·간호사·행정요원 등 10명은 5월 한 달 동안 이 지역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 제공

지난 4월 25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산간지대에 진도 7.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였던 고르카 만드레 지역은 공교롭게도 보름 전에 내가 방문했던 곳이다. 당시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3번째로 짓는 학교의 착공식이 있었다. 다시 찾은 그곳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했던 옛 학교와 운동장도, 관계자들과 트레킹을 했던 산길도, 주민들이 살던 마을도 온데간데없었다. 지진은 그 마을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그때 내가 본 산·마을·학교·사람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니…. 5번째 학교가 있는 ‘다딩’ 역시 최초 진앙과 가까운 도시로, 이미 6000가구 정도가 파손됐을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다.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초토화됐다. ‘공부 열심히 해서 네팔을 부국(富國)으로 만들라’며 지어준 학교가 이재민 거주 시설로 변해 있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이번 지진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네팔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간지대다. 해발 1500m 고산지에서 밭농사로 연명하는 네팔 산간지대 주민들. 가뜩이나 힘들게 사는 그들의 터전이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1차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두 번째 지진에 남은 가족을 잃은 슬픈 사연도 전해졌다. 왜 이들에게 이런 아픔이 계속될까.

사고 이후 27개국 적십자사를 비롯해, 많은 국제구호 단체가 속속 네팔을 찾고 있지만, 구조 작업은 순탄치 않다. 지진 피해 지역이 대개 산간오지 마을이라 구호물품이나 인력이 들고나기 힘든 게 가장 큰 이유다. 가뜩이나 가파른 산악지대를 깎아 위태로이 도로를 만들어놨는데, 이번 지진에 끊어지거나 무너진 건물 잔해로 뒤덮인 곳이 많아 접근 자체가 힘들다. 중장비로 끌어내며 들어가야 하는데, 중장비가 부족해 도로 보수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산발적으로 내리는 스콜(sq uall·열대 지방에서 대류에 의해 나타나는 세찬 소나기)도 큰 문제다. 비가 와서 토사가 흘러내리고, 가뜩이나 약해진 도로나 산비탈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많다. 구호팀의 안전 확보가 불명확한 상태니, 구조 작업도 탄력을 받지 못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약품 등 필요한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지금 피해 지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천막이나 텐트 같은 것들이다. 지금 이곳은 건물이며 학교가 다 내려앉아 사람이 기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와 오갈 데 없이 생활한다. 멀쩡한 집이 있다고 해도, ‘지진 트라우마’에 거리로 나온다. 특히 이제 본격적인 우기를 맞기 때문에 이런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소나기를 피해 무너진 지붕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네팔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이번 지진은 네팔에 치명적이다. 관광산업이 국가의 제1 수입원인 나라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 요소를 떠안게 됐다. 네팔 최고의 관광 상품인 산악 트레킹을 찾는 이는 이제 한동안 없을 것이다. 재건에 얼마가 걸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네팔 사람들의 얼굴은 두려움 반, 망연자실함 반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연을 원망하거나 탓하진 않는다. 우린 네팔을 걱정하지만, 이들은 의외로 담담한 편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은 물론 그들에게 주는 아픔까지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산다. 자신의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에겐 제2의 고향인 네팔. 그곳에 사는 동료들이 히말라야의 정기를 받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엄홍길 대장.
엄홍길 대장.

※엄홍길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4월 25일 네팔의 지진이 처음 발생한 지 3일 만에 대한적십자사의 긴급의료단 현장조사팀 긴급구호대장을 맡아 현지로 출국했으며, 상황조사와 긴급구호 작업을 마치고 지난 18일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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