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동아프리카 송유관 사업 강행 논란… ‘기후폭탄’ 막으려면?

탄자니아·우간다 송유관 사업 강행
경제개발 효과에 ‘기후악당’ 자처
개도국 에너지 전환에 대규모 지원해야

탄자니아의 경제 도시 다르에스살람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반도 마사키 지역. 탄자니아 특유의 낮은 주택 건물들 사이로 세련된 빌딩 한 채가 우뚝 솟아 있다. 지난달 9일(현지 시각) 찾은 현장에는 출입증을 목에 건 백인과 어울려 다니는 현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내년 공사를 시작할 송유관 사업을 진행 중인 프랑스에서 건너온 토탈에너지스 직원들과 탄자니아 현지 전문가들이다. 

현재 탄자니아와 우간다에서는 자국 영토를 가로지르는 1443km 길이의 ‘동아프리카 송유관(EACOP)’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사무실에서 만난 마틴 티픈 EACOP 사업단장은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로) 금융계에서 우리 사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이어져왔지만, 다행히 자금을 조달해주는 기관들이 있어 투자자 모집 마무리 단계에 있다”면서 “내년 중순까지 토지 보상절차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뜰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9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마사키에 있는 동아프리카 송유관 사업단 사무실 건물.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지난달 9일(현지 시각) 탄자니아 마사키에 있는 동아프리카 송유관 사업단 사무실 건물.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국제사회에서 EACOP 사업을 미래의 ‘기후폭탄’으로 지목하면서 탄자니아와 우간다 현지에선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유럽권 국가들을 비롯한 에너지 단체들은 EACOP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반면, 탄자니아와 우간다 정부는 이미 원유 사업으로 수익을 올려온 선진국들이 이중잣대를 들이댄다고 반발한다. 이에 개발도상국이 청정 에너지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EACOP 건설은 2006년 우간다 정부가 알버트호 인근에서 65억배럴의 석유를 발견하면서 추진된 사업이다. 건설이 완료되면 2025년부터 15년간 알버트호에서 생산된 원유가 탄자니아 해안가로 흘러가 수출된다. 다만 미국 기후책임연구소(CAI·Climate Accountability Institute)에 따르면 EACOP는 25년간 시추부터 운송 단계에 거쳐 총 3억7900만t의 탄소를 배출할 전망이다.

지난 9월 유럽연합(EU) 의회는 동아프리카 송유관 사업 반대 공동 결의안을 채택했다. 환경 운동가들도 전담 운동단체 ‘스톱 이콥(STOP EACOP)’을 꾸려 금융 기관으로부터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투자 원칙에 따라 동아프리카 송유관에 투자와 보증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시티은행, 바클레이즈, 도이치방크, BNP파리바 등 24개 금융기관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우간다·탄자니아 “선진국 반대는 경제적 인종차별”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는 해외 자본 유치와 수출 증대 효과 등 경제적 효과를 고려하면 사업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간다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은 2021년 기준 52조원(북한 47조원과 비슷)에 불과한데, 원유 수출 사업으로 GDP의 4%인 최대 연간 2조원의 수입이 예상된다. 우간다 정부는 오일펀드를 조성해서 국가 개발 동력으로 삼을 국내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국내 에너지 소비를 화력 발전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 에너지 전환으로 석유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이들 국가들은 낙관론에 더욱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제 규모 1위 국가인 나이지리아가 석유 생산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석유는 아프리카에서 경제 개발의 희망으로 여겨진다. 익명을 요구한 탄자니아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전환이 언제 최종적으로 완료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석유 소비는 당분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들은 모두 석유 생산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동아프리카 송유관만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들 국가 소속 정치인들은 ‘경제적 인종차별(economic racism)’이라면서 국제사회에 역공을 퍼붓고 있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반대 논의가 이어지면서 이런 주장에 힘이 실렸다. 정작 막대한 탄소 배출로 산업화에 성공한 선진국이 개도국의 자주적 경제 개발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타예브 우간다 국회 부의장은 9월 유럽의회를 향해 “전 세계 인구의 10%인 유럽연합이 전체 탄소배출량의 25%를 배출하는 반면, 아프리카 인구는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면서도 전체의 3%의 탄소밖에 배출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는 “유럽연합 국가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화력 발전량을 다시 높이고 있다”면서 “에너지 안보는 유럽연합의 전유물이냐”고 비판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공이 거세지면서 유럽연합도 앞선 결의안을 사실상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일 모잠비크에서 열린 제42회 아프리카·카리브해·태평양(ACP)-유럽연합(EU) 공동의회에선 우간다가 동아프리카 송유관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합의안이 나왔다.

선진국, 개도국 ‘에너지 전환’에 대규모 지원 필요 

이번 사태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를 반영하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 일컫는다. 정의로운 전환은 본래 급격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완화하자는 개념에서 비롯됐는데, 최근엔 탄소 기반 경제의 개발도상국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고통을 분담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규제의 화살은 개발 이익을 수백년간 거둔 선진국을 향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은 하루 평균 1558만배럴, 캐나다는 542만배럴, 노르웨이는 202만배럴, 영국은 87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반면 동아프리카 송유관을 타고 생산될 원유는 일평균 23만배럴로 예상된다. 이는 2021년 기준 전 세계 생산량인 8900만배럴의 0.2%에 불과하다. 북미권과 유럽권의 대규모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탄소배출 절감에 더욱 효과적인 셈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화석 연료가 아닌 친환경 자원으로 수익을 올리도록 힘 싣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흑연, 리튬, 코발트 등의 광물 수요는 청정 기술 수요 증가에 따라 2050년까지 500% 증가한다. 전기차 배터리 등에 투입되는 코발트와 리튬 등은 콩고민주공화국(DRC), 마다가스카르, 짐바브웨, 나미비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수출 자원뿐만 아니라 국가내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너지원은 현재 석유도 아닌 석탄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국가들은 이제 막 수력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선 기후위기로 물마저도 지속 가능한 자원이 아니다. 태양열 에너지는 아프리카 기후 환경에 맞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고비용으로 적극 보편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킨우미 아데시나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총재는 이달 초 유엔아프리칸리뉴얼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는 산업화 과정에서 ‘에너지믹스(energy mix·에너지원 다양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면서 “신재생 에너지 전환으로의 급진적인 도약은 기대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점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려면 전 세계적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제임스 펏젤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더나은미래와 인터뷰에서 “선진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지하에 석유를 묵혀두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이들 국가가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할 만한 막대한 투자와 기술이전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아프리카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과 협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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