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아카데미 5기’ 현장 체험
“하나, 둘, 셋, 잘 가!”
황대인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장의 선창으로 청년 19명이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의 시선은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황조롱이 두 마리를 따라갔다. 야생 조류인 황조롱이가 사람 손을 타게 된 건 도로변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탓이다. 이번에 자연 방사된 황조롱이는 1년 전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날개가 꺾인 채 발견됐다. 이후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로 이송돼 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고 비로소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지난 7일 경기 하남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에서 ‘풀씨아카데미’ 5기 수강생 19명의 현장 체험이 진행됐다. 풀씨아카데미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공동 운영하는 환경 분야 공익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8년 1기를 시작으로 매년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까지 프로그램을 마친 수료생은 109명이다. 이날 수강생들은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다 살렸다, 아가새 돌봄단’ 활동에 참여했다. 도심 속 조류를 구조하고 치료 후 자연으로 방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방사 작업에 동행한 풀씨아카데미 수강생 정상범(27)씨는 “책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실제로 처음 만져봤다”며 “황조롱이를 잡아 날렸을 때 생각보다 힘이 세고, 심장박동까지 느껴져서 생명의 역동성과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 하남, 구리, 남양주 등 인근 지역에서 올해 초부터 7월 말까지 구조된 새는 470마리에 이른다. 종류도 수리부엉이, 물까치, 어치 등 다양하다. 이 중 유리창, 방음벽 등 인공 구조물로 인한 사고가 88.3%(415마리)를 차지했다. 황대인 센터장은 “아파트나 고속도로에 세워진 투명 방음벽에 부딪힌 새는 부리나 안구, 다리를 심하게 다쳐 90% 정도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안게 된다”면서 “재활 훈련을 받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조류들이 마주하는 사고 대부분은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아파트 실외기 위에 둥지를 틀었다가 강풍에 떨어지는 사고가 대표적이다. 또 둥지를 가로수 뿌리가 썩지 않도록 바닥에 심는 플라스틱 관에 지었는데 그 관이 막혀 고사하는 경우도 있다. 황 센터장은 “일부 방송에서 집주인이나 시민이 구조해 잘 키운다는 미담이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사체를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거나 아기 새들은 길고양이의 먹이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황 센터장은 새와 함께 도시에서 공존하려면 관심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들이 방음벽에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티커를 붙이는 ‘버드세이버’ 활동의 경우 돈이나 시간 등 비용이 덜 든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나 지자체, 시민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관심을 조금만 가져도 다양한 종류의 새들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생태환경교육을 마친 수강생들은 야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까마귀, 물닭, 박새 등 다양한 새의 울음소리가 겹쳐 울렸다. 수강생을 한데 모은 황 센터장은 “이곳에서 참매,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 새 200여 마리가 치료받고 있다”며 “일반 조류 종의 경우 치료가 끝나면 바로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지만, 맹금류의 경우 한 차례 재활을 더 거친다”고 말했다. 참새와 같이 바닥에 있는 먹이를 습득하는 조류 종과 다르게 맹금류의 경우 빠른 속도와 힘으로 실제 다른 동물을 추격해 잡아먹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은 맹금류의 재활 훈련을 돕는 시간을 가졌다. 황 센터장은 ‘줄밥부르기(맹금류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저공비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재활 기구)’를 가리키며 “줄밥부르기에 맹금류를 연결하고 반복 훈련을 통해 힘과 속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은 한 명씩 줄밥부르기에 연결된 맹금류인 황조롱이에게 먹이를 주며 재활 훈련에 동참했다. 수강생 이아림(19)씨는 “실제로 재활 훈련을 해보니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깜짝 놀랐다”며 “동물원 같은 장소보다 조류를 치료하고 재활시키는 보호 센터가 많이 생겨 다양한 생물종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체험에 참여한 풀씨아카데미 수강생 장지현(19)씨는 “방음벽 같은 도시 인공 구조물에 부딪혀 다친 새들이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 살아갈 수 있도록 이곳에서 치료와 훈련을 받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처럼 다양한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치료와 재활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남=황원규 더나은미래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