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950만통의 편지 950만명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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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
올해로 6년째 맞은 대회···1000만명 가까운 아이들
지구촌 또래의 삶 엿보고 직접 응원 메시지 보내
나눔이 낳은 나눔
현지 방문한 서유진양 해외봉사 동아리 만들어
기부행사·거리모금으로 200만원 모아 물품 전달
안정현·안수현 자매 가족···요양원 가족봉사단 활동···용돈 줄이고 두 아이 후원

방글라데시 소년 아리프(12)는 매일 인력시장으로 출근한다. ‘오늘은 일할 수 있을까’. 초조한 아리프의 눈빛이 흔들린다. 다행히 일꾼으로 선발돼 공사현장에 가면 ‘맨손으로’ 시멘트와 모래를 섞고 벽돌을 옮겨야 한다. 안전모도, 작업복도 없다. 이렇게 하루를 꼬박 일해 버는 돈은 70타카(약 1100원). 아리프는 아픈 할머니와 쌍둥이 여동생 제미(12)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가장이다. 아버지는 쌍둥이 남매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2주 뒤 엄마도 집을 나갔다. 3년 전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사정은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아리프는 가족을 위해 공부 대신 ‘일’을 선택했다.

아리프는 제6회 ‘지구촌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이다. 이 대회는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가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대표적인 세계시민 교육 프로그램이다. 저개발국 빈곤 아동의 삶이 담긴 영상을 보고, 가족과 함께 온·오프라인으로 응원 편지를 작성하는 대회다. 2009년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6년째, 그동안 1만3451개 학교에서 949만6426명이 편지를 썼다. 지구촌 또래 친구들의 고된 삶을 엿본 것은 1000만명에 달하는 국내 아이들의 마음속에 무엇을 남겼을까.

2009년에 시작한 굿네이버스의 ‘지구촌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대회’가 올해로 6주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1만3451개 학교에서 949만6426명이 편지쓰기대회에 참가했다. 1 2010년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서유진양.2 2012년 캄보디 아에 다녀온 안정현양 가족.
2009년에 시작한 굿네이버스의 ‘지구촌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대회’가 올해로 6주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1만3451개 학교에서 949만6426명이 편지쓰기대회에 참가했다. 1 2010년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서유진양.2 2012년 캄보디 아에 다녀온 안정현양 가족.

◇인생의 전환점이 된 방글라데시, 개발도상국 교육자를 꿈꾸다

올해 ’14학번 새내기’가 된 서유진(18·한국외대 영어교육과 1년)양은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2010년, 유진양은 굿네이버스 제2회 희망편지쓰기대회 온라인 부문 대상을 받아 직접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처음엔 문화 차이도 마냥 신기하고 신났던 것 같아요. 어디를 가든 아이들이 몰려오니까 연예인이 된 것 같기도 했고요.” 들떴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니, 점차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없는 아이가 차도를 기어다니면서 구걸을 하러 오는 거예요. 학교를 못 다녀 아쉬워하는 친구들이나, 아픈데 병원에 못 가서 무기력한 사람들도 자꾸 눈에 밟혔어요. 나는 잠깐 다녀가지만, 이 친구들한테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후, 다른 것들은 시들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해외 봉사활동 동아리 VI(Volunteering International)를 만들었다. “저한테 정말 좋은 시간이었으니 친구들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끼리 ‘미니 굿네이버스’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입학하자마자 동아리를 등록, 함께할 친구 13명을 모았다. 돈을 모금해 방글라데시에 필요한 것을 전달하자는 데 뜻이 모였다. 교내에서 ‘아이스크림 기부행사’를 열어 수익금을 모으고, 매주 수원역에 나가서 거리 모금을 했다. 1년 반 동안 기금 211만원이 모였다. 목표로 한 600만원엔 못 미쳤지만, 작은 마음을 전하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지부 사무장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구했다. 모은 돈을 들고, 각자 비행기표를 끊어 친구 둘과 함께 2012년 여름 또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유진양은 “처음만큼 감동적이거나 신난 건 아니지만, 이 일을 하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며 “이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 3월, 유진양은 영어 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다. 교육여건이 열악하고 기회가 부족한 나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다.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봉사도 많이 하고 방글라데시도 한 번 더 가보려고요. 큰 사명감이 있다기보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도울 수 있는 부분에 기여하고 싶어요.”

◇우연한 만남, 가족 안에 나눔의 꽃 피워내다

서울 양천구 신월6동에 있는 안정현(14·강신중 3), 안수현(12·강신중 1) 두 자매의 집. 거실을 둘러싼 흰 벽엔 사진들이 빽빽이 걸려 있었다. “엄마, 아빠가 선생님이셔서 방학 때마다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가족끼리 전국 14박 15일 여행도 하고, 캠핑도 했고요. 그런데 캄보디아에 다녀온 건 우리 가족한테 훨씬 더 특별한 기억이에요.” 정현양이 사진을 하나씩 가리키며 말했다. 사진 속엔 희망편지쓰기대회 3회 주인공, 캄보디아의 락스미도 함께였다.

엄마 최지연(41)씨는 “어느 날 정현이가 학교에서 동영상 CD랑 편지지를 가져와서, 컴퓨터에 넣고 다 같이 봤다”며 “아이들 또래인 락스미와 락스미 형이 오리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고 했다. 눈물이 많은 수현양은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날 밤, 거실 테이블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편지를 쓰고, 부모도 편지지 귀퉁이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적었다.

진심 어린 편지 덕분일까. 정현양 가족은 캄보디아 락스미를 실제로 만나게 됐다. 정현양이 여성부장관상을 받고, 부모님이 함께 쓴 편지가 가족상으로 뽑히게 되면서다. 2011년 8월, 이 가족은 캄보디아로 떠났다. “실제로 락스미를 만나니 신기했어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걸 들으니 안타까웠고요.”(정현양)

‘가진 게 많으니 나눠야 한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직후, 정현양 가족은 집 근처 양천건강가족지원센터에 ‘가족봉사단’으로 등록했다. 두 달에 한 번, 토요일마다 요양원에 가서 청소도 하고 말벗도 해 드리는 봉사가 올해로 3년째다. 가족도 두 명 더 늘었다. 정현양과 수현양이 결연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 받는 용돈을 반으로 줄이고 두 아이와 결연하기로 결정한 것. 베트남과 과테말라에 남동생이 생겼다. 엄마 최지연씨는 “가족끼리 봉사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이전엔 몰랐는데 참 감사하다”며 “같이 봉사활동을 가면 두 딸이 몸을 안 사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봉사하는 모습이 부모 입장에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아빠 안재현(41)씨도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학교에선 삼무(三無) 선생님으로 통했어요. 급훈이 ‘무결석, 무폭력, 무쓰레기’였거든요. 캄보디아에 다녀온 후 학교 아이들을 보는 시각도 좀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나 각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급훈도 ‘천천히, 하지만 바르게’로 바꿨어요. 정현이, 수현이도, 학교 제자들도 감사하고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돕는 교사가 됐으면 합니다.”

제6회‘지구촌나눔가족 희망 편지쓰기대회’주인공 아리프. /굿네이버스 제공
제6회‘지구촌나눔가족 희망 편지쓰기대회’주인공 아리프. /굿네이버스 제공

◇나눔이 나눔을 낳아

희망편지쓰기대회를 통해 나눔을 접한 아이들이 또 다른 나눔을 낳는 사례는 이 밖에도 무수히 많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인 박정민(12)양은 책 2권의 인세를 인도네시아 동갑내기 친구를 돕는 데 쓰고 있다. 박양은 “네팔의 ‘비샬'(5회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돈을 벌어야 하고 흙먼지 속에서 일하는 게 안타까웠다”며 “나중에 전 세계 오지에 도서관도 세워주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장래 희망이 ‘앵커’였던 김유영(17)양의 꿈도 캄보디아의 ‘락스미'(3회 희망편지쓰기대회 주인공)를 만난 뒤로 바뀌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졌기 때문.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로 2년 동안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 대회는 학교 안의 ‘나눔 문화 확산’에도 일조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삼일초등학교(교장 유영삼)는 2013년 굿네이버스 희망편지쓰기대회에 참여하고 나서 학년별 결연 후원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매달 전교생 1005명이 모은 성금은 한 학년당 2명씩, 아동을 총 12명 후원하는 데 사용된다. 같고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지구촌 또래 아이와 만나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작고도 큰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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