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푸드뱅크·마켓 “치솟는 물가에도 취약계층이 원하는 물품 선택하도록 지원”

지난달 23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푸드뱅크·마켓을 방문했다. 푸드뱅크는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식료품, 생활용품 등을 기부받아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무상으로 지원하는 나눔 제도다. 동대문점의 경우 마켓을 겸하고 있어 이용자가 직접 방문해 필요한 물건을 선택할 수 있다.

동대문 푸드뱅크·마켓 내부 모습.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은 식료품, 생활용품 등이 매대에 진열돼 있다. /강지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
동대문 푸드뱅크·마켓 내부 모습. 개인과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은 식료품, 생활용품 등이 매대에 진열돼 있다. /강지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

장대비를 뚫고 도착한 푸드뱅크는 흔히 보던 동네 마트와 흡사했다. 라면, 스파게티 소스, 요구르트, 화장품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매대에 가공식품과 생필품이 진열돼 있었다. 화장품 등 일부 품목은 여러 브랜드 제품이 일렬로 놓여 있어 이용자가 물건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다.

작은 카트를 밀며 내부로 들어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한숨 돌린 이용자들은 직원에게 추천받은 물품을 카트에 담고, 조리법을 묻기도 했다. “반죽을 섞고 굽기만 하면 돼요. 만들기 쉬어요!” 푸드마켓 직원이 팬케이크 믹스 상자를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할머니에게 조리법을 설명했다. 푸드마켓을 돌아다니며 종종 들은 대화에는 친근감이 묻어났다.

푸드뱅크는 재가 장애인, 결식아동 등 직접 방문이 어려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배달 서비스도 운영한다. 가까운 주민센터에 물품을 전달하면 주민센터가 각 가구에 필요한 물건을 배분하는 식이다.

추적이던 비가 멎어가던 10시경, 물품 배달을 따라나섰다. 동대문 푸드뱅크·마켓에서 20년간 근무한 장성기 소장과 동행했다. 장 소장은 ‘동대문 잇다 푸드뱅크’ 트럭에 짐을 한가득 싣고 빠르게 이동했다. 트럭에서 내리지마자 이름이 적힌 묵직한 봉투와 상자를 들고 곧장 동대문주민센터로 들어갔다.

‘동대문 잇다 푸드뱅크’ 트럭. 동대문 푸드뱅크는 이동이 어려운 재가 장애인, 결식아동 등을 대상으로 인근 주민센터에 필요한 물품을 트럭으로 배달한다. /강지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
‘동대문 잇다 푸드뱅크’ 트럭. 동대문 푸드뱅크는 이동이 어려운 재가 장애인, 결식아동 등을 대상으로 인근 주민센터에 필요한 물품을 트럭으로 배달한다. /강지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

동대문주민센터 관계자는 “65세 이상 1인 가구에서 배달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요양보호사들이 주민센터로 방문해 당사자에게 물건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주민센터는 각 지자체 푸드뱅크 이용 신청자를 받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이용자를 선발한다. 선발된 이는 2년간 푸드뱅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푸드마켓은 비가 잠시 그치면서 활기를 띠었다. 한참 마켓을 돌아보다 짐을 담던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한 달 치 음식과 생필품이 담긴 등산용 배낭은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묵직했다. 떨리는 손으로 내미는 요구르트를 받으며 나눈 대화는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다른 한 사람 것까지 챙겨야 해서 내가 나왔어요.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나도 왕년엔 돈 잘 벌고 공부도 많이 했죠.”

동대문 푸드뱅크 관계자는 “보통 어르신들이 마켓에 오는 걸 많이 민망해한다”면서도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계속 방문해주신다”고 말했다.

동대문 푸드뱅크의 이용자는 월평균 약 1600명이다. 이용자를 지원하기 위한 기부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의 기부가 주를 이루지만, 개인 단위 기부도 꾸준히 이어진다. 명절 선물을 들고 오는 자취생부터 꾸준히 모은 용돈을 들고 푸드뱅크의 문을 두드린 아이까지, 개인 기부자들의 성별과 연령은 다양하다. 운영 시간이 지난 푸드뱅크 앞에는 매일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다. 단출한 물품이 쑥스러워 기부를 꺼리는 기부자들을 위해서다.

푸드뱅크도 코로나19와 경기 침체의 여파를 완전히 피해 가기는 어려웠다. 식료품을 기부하는 점포들이 제조하는 음식량을 줄이거나 폐·휴업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이 여러 유통 업체를 순회하다 푸드뱅크로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장성기 소장은 “푸드뱅크에 들어오는 물품은 주로 남아도는 재고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다”면서도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푸드뱅크와 푸드뱅크를 찾는 이용자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지민 청년기자(청세담 1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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