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4일(수)

국내 최초 장애인 엔터社… “편견 없이 재능 펼치기를”

[인터뷰]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지난 13일 열린 2022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트로이 코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이번 작품으로 ‘미국 배우조합상(SAG)’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CCA) 남우조연상’ 트로피도 품에 안았다. 청각장애인 배우로는 역사상 첫 트리플 크라운 수상 기록이다. 이렇듯 해외에선 다양성을 중시하는 할리우드 흐름에 따라 장애인 배우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 방송·영화계에선 장애인 배우들이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파라엔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0년 10월에 설립된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엔터다. 체육,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스타를 발굴·육성해 장애인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YTN 앵커 출신의 차해리 대표와 한민수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이 함께 설립했다. 지난해부터 5월부터 차 대표가 단독 대표를 맡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차해리 파라엔터 대표는 “전 세계 인구의 장애인은 15%”라며 “대중들이 미디어에서 15% 확률로 장애인을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만난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사무실 한쪽 벽에는 소속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14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만난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사무실 한쪽 벽에는 소속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장애인 활동 영역 넓힌다

파라엔터에는 23명의 장애인 아티스트들이 소속돼 있다. 장애인 스포츠 선수를 발굴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대중문화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아티스트까지 영입하며 종합엔터로 성장했다. 파라엔터는 방송, 공연, 창작활동 등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속 아티스트를 모델이나 배우로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차 대표는 “인지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TV이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애인 아티스트들은 파라엔터를 만나면서 대중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중이다. 차 대표는 “한 아티스트에 대한 캐스팅 문의가 오면 다른 아티스트 프로필도 함께 보내고 있다”며 “최근 한 그룹사에선 소속 아티스트들을 보고 광고 콘티까지 바꿔가며 8명을 캐스팅해 갔다”고 했다.

“지난 3월 ‘2021 F/W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한 서영채 모델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지 8년 만에 데뷔를 할 수 있었어요. TV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시즌4’에서 탑 10에 들 정도로 실력을 갖췄었지만, 청각장애가 있단 이유로 소속사를 찾지 못해 가정주부로 생활하고 있었어요. 2017년 K-9 자주포 폭발사고 생존자인 이찬호 모델도 연기 지망생이었죠. 지난해 모바일게임 모델로 데뷔해 연기자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대표로서 가장 뜻깊은 순간들이죠.”

아티스트들을 영입하는 데 쉽지만은 않았다. 국내에 장애 전문 엔터의 선례가 없다 보니 아티스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아티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처음 연락을 하면 모두 불신에 가득 차 계세요. ‘혹시 사기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으셨죠. 아티스트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들까지 모두 만나가며 설득해야 했어요. 지금은 소속 아티스트 한분 한분이 일종의 증인이 되어주고 있어요.”

파라엔터에서 아티스트 영입하는 기준은 기존 엔터사들과 다르지 않다.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과 호감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한가지 기준이 더 있다면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는 지다. 차 대표는 “본인의 장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중들에게 매력으로 선보일 수 있는 분들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웹드라마 제작으로 방송계 인식개선 나서

국내에서도 광고에선 장애인 아티스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방송계는 아직 장애인 배우 섭외에 대해 주저하는 분위기다. “방송국 PD들을 찾아가 파라엔터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면 내색은 하지 않지만 실제 캐스팅까지는 꺼리는 분위기예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혹시나 모를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감독님들조차도 장애인 배우와 합을 맞춰본 경험이 없는 거죠.”

최근 파라엔터는 직접 웹드라마를 제작·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장애인 배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다. 현재 웹드라마 캐스팅을 위해 공개채용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다. 최종 합격자는 전속 계약을 통해 웹드라마 주인공 캐스팅 시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장애인 배우들이 ‘장애인’ 역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역을 맡았으면 좋겠어요.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티리온 라니스터’ 역을 맡은 피터 딘클리지처럼요. 험악한 악당이나 빌런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 장애인 배우들도 ‘마블’ 영화서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파라엔터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는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엔터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다문화 가정, 성소수자, 시니어 등 우리 사회에서 고정관념 때문에 과소평가 받는 사람들은 장애인만 있진 않아요.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충분하지만 제대로 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있죠. 장기적으로 이런 분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다양성 전문 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어요.”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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