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주민 삶 지키면서 외지인 껴안는 마을 만들고 싶어”

[레벨up로컬] 서정영 남쪽바다여행제작소 총괄책임

주민과 상생하는 숙박·여행 프로젝트
지역 농산품으로 마을 식당 운영 예정

서정영 남쪽바다여행제작소 총괄책임이 운영 중인 펜션 앞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다. 서 책임은 “거제 칠천도만의 철학이 담긴 관광으로 고향 마을을 살리겠다”고 했다. /거제=최병준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참 아름답지요?”

지난달 13일 경남 거제 칠천도. 이곳에서 주민공정여행사를 운영하는 서정영(39) 총괄책임은 기자에게 대뜸 “동네부터 한 바퀴 걷자”고 했다. 그는 지난 2019년 ‘남쪽바다여행제작소’를 설립해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숙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을 보고 나면 제가 왜 이 촌에서 이 일을 하는지 이해가 갈 겁니다(웃음). 따라오세요.”

칠천도의 풍광은 눈부셨다. 넓고 잔잔한 바다와 울창한 숲, 새하얀 백사장. 해안선 너머에선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푸른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선 닿는 모든 곳의 역사를 읊던 서정영씨가 “소중한 자연과 역사가 있는 이 섬의 풍경과 주민들의 삶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칠천도엔 80대 어르신들만 남았어요. 펜션과 카페는 계속 생기지만 다 외지인이 세운 거라서 주민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죠. 오히려 높은 건물이 좋은 풍광은 가리고 주차난에 소음, 쓰레기 문제만 늘어나니 주민들 불만이 많아요. 한 마을은 아예 ‘외지인 출입 금지’를 걸어놨습니다. 이 마을을 알리면서도 자연과 사람들을 지킬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는 칠천도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 친구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다. 그도 한때 도시에서 살았다. 거제 본섬에서 대기업을 다녔다. “부모님이 계속 칠천도에 사셨으니 자주 들여다봤는데, 섬이 쇠락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거제가 세계를 누비는 배를 만들어 우리나라 경제를 키운 도시로 알려지는 동안 정작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어촌 마을은 텅텅 비어갔으니까요.”

처음엔 부모님이 운영하던 펜션을 도와드리는 일로 시작했다. 젊은 아이디어로 홍보하고 위생과 서비스 등 운영 방식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고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 펜션만 살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고민 끝에 친누나인 서란희씨와 함께 남쪽바다여행제작소를 세웠다. 1년 여의 준비 끝에 시작한 첫 프로젝트는 지난 6월 문을 연 펜션 ‘아날로그스테이’. 마을 유휴 자원을 활용해 수익 모델을 만들고, 다시 수익을 주민과 나눈다는 계획의 첫 시작이다.

“폐업 후 2년 넘게 방치됐던 펜션 건물을 인수해 리모델링했죠. 요즘 인기 있는 ‘한적한 곳에서의 편안한 휴식 시간’을 콘셉트로 해서요.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조용히 쉴 수 있다는 칠천도의 특색과 맞는 분위기로 꾸몄습니다. 손님이 많으냐고요? 코로나19에도 오픈 직후부터 7·8·9월 성수기 내내 대부분 만실이었습니다.”

펜션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두 가지였다. ‘칠천도와 어우러질 것’ ‘안정적인 수익을 낼 것’.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고도 2층과 단층의 오래된 건물 골조를 유지했고, 그중에서도 뷰가 유난히 아름다운 2층 공용 공간은 비워뒀다. “2층에 카페를 열면 대박 날 거라고 다들 얘기해요. 하지만 다른 지역 주민이 카페를 하는데 저희가 같은 일에 뛰어들 순 없죠. 바다가 보이는 2층 공간은 마을 주민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하고 있어요. 숙박객들이 편안하게 앉아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는 “칠천도만의 특성을 중시하는 ‘철학이 있는 관광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역 주민의 삶과 환경이 존중받고, 주민들도 외부인을 환영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청년까지 들어와 사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담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어 있던 마을 창고를 빌려 마을 식당을 운영하기로 했다. 어르신들이 키운 농산품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팔 예정이다. 도시락과 로컬푸드 개발에 드는 비용은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굿네이버스 등이 운영하는 ‘드림위드 우리 마을 레벨 업’ 프로그램에 선정돼 받은 지원금으로 해결했다.

“칠천도에는 밭이 많아요. 소량으로 재배하지만 품종이 다양한 게 장점이죠. 계절에 따라 나는 게 다르니 관광객은 때마다 다른 칠천도를 느낄 수 있고, 대부분 소작농이신 어르신들에게도 부수입이 생기고요. 거제 본섬도 어려운데 칠천도에서 되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믿어요. 칠천도에 한번 들렀던 사람들은 꼭 다시 돌아오거든요. 해외에서도 시골 빈집에 아이디어를 더해 마을 리조트를 만들어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까요. 한국에선 칠천도가 그런 성공 사례가 되도록 할 겁니다.”

거제=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공동기획 | 더나은미래·한국타이어나눔재단·굿네이버스·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