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2030세대 절반 환경 문제 민감한 ‘에코워리어’

MZ세대 ‘플라스틱 쓰레기’ 인식조사

20~39세 남녀 505명 조사했더니…
평소 외출할 때 텀블러 소지 43.6%
플라스틱 세척 후 분리 배출 54.6%

과대·이중 포장 상품 살 때 ‘스트레스’
가격 비싸도 친환경 제품에 지갑 열어

대학생 최서연(23)씨는 얼마 전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한 달에 10번 이상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나름 VIP 고객이었지만, 식사 때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최씨는 “평소 환경문제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올해 코로나19 이후 매일 분리 배출할 일회용품이 쌓이다 보니 조금은 무서워졌다”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는 얘기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하루 평균 약 848t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급증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는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일어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와 완화를 오갈 때마다 폐기물 배출량도 출렁였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21.1% 늘었고, 확산세가 잦아든 4월은 8.9%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재확산이 시작된 6월에는 다시 25.1%나 치솟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지만 코로나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플라스틱 피로감’은 환경에 관심 많은 소수집단만이 겪는 현상일까. 더나은미래는 지난 14일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20~39세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플라스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2030세대의 절반은 환경문제 해결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이른바 ‘에코워리어(Eco-warrior)’였다.

응답자 48% “제품 구입 시 플라스틱 발생량 따져 결정”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민감도부터 알아봤다. 환경 분야 필수템이라 할 수 있는 ‘텀블러’를 외출할 때 챙겨 나간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3.6%에 달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31.7%였다. ‘제품 구입 시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을 따져 결정한다’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48.0%였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26.3%로 제법 큰 차이를 보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플라스틱은 세척 후 분리 배출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을 넘어선 54.6%, ‘그렇지 않다’는 27.0%로 두 배 이상 차이 났다.

정연수(26)씨는 외출 시 항상 텀블러에 물을 담아나간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텀블러를 챙기지 못했을 때는 테이크아웃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정씨는 “지난달에는 스타벅스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텀블러 사용을 거절당했는데, 차가운 음료는 무조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나가야 한다고 해서 굉장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1인 가구인 박수정(25)씨는 마트에서 요리 재료를 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소량의 채소만 따로 포장한 상품이 많아졌는데, 비닐로 싸인 제품을 다시 플라스틱 껍데기를 씌워놓은 게 많다”라며 “음식 쓰레기를 줄이려다 보니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게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30세대는 직접 환경을 위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을 넘어 주변에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한다. 직장인 권지훈(36)씨는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는 팁이나 손수건 이용 등을 친구나 선후배에게 자주 권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번 설문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을 주변에 권하는지 묻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47.4%에 달했다. ‘그렇지 않다’는 27.1%에 그쳤다.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순간이 언제인지도 물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이 문항에서 응답자들은 ‘이중 포장 혹은 과대 포장된 제품을 구매할 때’(44.8%)를 1위로 꼽았다. 이어 ‘플라스틱 제품을 어쩔 수 없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할 때’(31.1%),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게 됐을 때’(21.2%), ‘친환경 대체품이 없는 플라스틱 제품을 구입할 때’(20.8%), ‘플라스틱 빨대를 소비하게 될 때’(19.0%) 순이었다. 한편 ‘스트레스받은 적 없다’는 항목은 11.9%를 차지했다.

정지현(34)씨는 “물통에 수돗물을 넣으면 불순물을 걸러주는 정수기를 쓰고 있는데, 플라스틱 케이스로 만든 정수 필터를 어쩔 수 없이 일반쓰레기로 버리고 있다”면서 “플라스틱 케이스만 따로 분리하려고 해봤는데 지나치게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포기했다”고 했다. 직장인 김혜원(35)씨는 “새벽 배송을 많이 시키는 편인데 항목별로 개별 포장돼서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박스나 비닐 포장 쓰레기도 문제지만 정리하는 데도 한참 걸려서 다른 업체로 바꿔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포장 쓰레기 문제는 기업들도 인지하고 있다. 한 면세점에서는 비닐 포장재를 간소화하는 물류 시스템을 최근 도입했다. 물품 적재 방식을 칸막이로 변경해 파손 방지를 위한 에어캡 사용을 크게 줄이게 됐다. 일부 홈쇼핑 업체는 지난달부터 의류 포장 비닐을 친환경 소재로 바꿨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와 양념이 들어있는 밀키트를 제조하는 기업 중에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90% 줄이고 소량의 비닐과 종이로만 제품을 포장하도록 공정을 바꾼 곳도 있다.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는 종이 포장재를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들거나 재활용 과정을 고려해 무코팅에 콩기름 잉크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 가나의 해변에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연간 800만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대나무 칫솔, 두 배 비싸도 사겠다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은 소비 문화도 바꾸고 있다. 지난해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을 받은 기업의 경우 평균 매출이 20.1% 증가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후 제품 매출액이 증가한 기업은 조사 대상 기업 956개 중 852개(89.1%)에 달했다. 한 소셜커머스에서 내놓은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대형마트 내 비닐봉지 사용 금지와 일회용 컵 규제가 시행된 이후 실리콘 빨대 판매량은 전년 대비 747%, 접이식 장바구니 601%, 종이 빨대 484%, 친환경 종이컵이 315% 급증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친환경 제품은 경쟁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이 때문에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도 막상 지출 앞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대학원생 권훈기(29)씨는 “칫솔은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물건이라 가격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경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나무 칫솔을 처음 접했던 3년 전만 해도 제품이 다양하지 않고 가격도 비쌌는데, 지금은 생산 업체가 많아지면서 가격 경쟁력도 있는 편”이라고 했다.

2030세대는 친환경 대체품 구입에 얼마나 관대할까.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1000원짜리 플라스틱 칫솔을 대신하는 대나무 칫솔에 얼마나 더 큰 비용을 낼 수 있는지도 물었다. 응답자들은 ‘최대 2000원’(26.1%)을 가장 많이 꼽았고, ‘최대 1200원’(24.0%) ‘최대 1500원’(20.0%)이 뒤를 이었다. 플라스틱 칫솔 대비 3배까지 지출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0.1%, 4배는 6.1%로 나타났다. 추가 지출 의향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13.7%였다.

제로웨이스트샵 모레상점을 운영하는 이지은 대표는 “친환경 제품을 소개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해보면 2030세대 반응이 가장 좋고, 특히 여성들이 많이 공감해주는 편”이라면서 “Z세대로 불리는 20대들은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친환경 제품 소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했다. 이어 “현재 친환경 제품이 다소 비싼 감이 있지만,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조금씩 늘면서 생산 원가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속가능성 집중하는 2030…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현실 반영

환경 문제에 대한 2030세대의 높은 관심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비대면 거래의 증가로 인한 쓰레기 발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8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4조3833억원이다. 이 가운데 음식 서비스는 1조673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7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특히 2030세대에게는 배달 음식에 딸려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장 큰 과제다. 직장인 김진우(30)씨는 “카페에서 머그잔과 일회용 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배달 음식점에서도 용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재사용 용기 사용은 매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들이 환경에 민감한 이유를 시대 정신의 변화로 분석했다. 과거 산업화시대에 결과 중심으로 사고해 온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불투명한 미래를 돌파할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환경에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MZ세대들은 기업이 사회 이슈에 공감하는지, 갑질 안 하고 윤리적인 제품 만드는지 등 과정을 중시하는데 환경도 그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소비 통계상 잡히지 않는 10대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지은 대표는 “10대들이 친환경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실구매자로 판단할 순 없지만 부모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실제 매장에서도 확인된다”고 했다. 서용구 교수는 “코로나19 시대에 이른바 ‘집콕 이코노미’가 형성되면서 소비에 10대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고 있다”면서 “다른 세대에 비해 유독 환경에 관심 많은 10대들의 소비는 이미 부모세대인 4050세대의 소비통계에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고, 앞으로 소득까지 생기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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