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8일(수)
[모두의 칼럼] 인신매매 퇴치와 근절을 위해
[모두의 칼럼] 인신매매 퇴치와 근절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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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2020년 한국에는 여전히 인신매매 피해자가 존재한다. 유엔이 2000년 채택하고 한국이 2015년 비준한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현대적 의미의 ‘인신매매’는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경우뿐 아니라 착취를 목적으로, 납치, 속임수 등 사람의 취약한 지위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이 정의에 따라 사실상 노예상태에서 놓여 있었던 ‘염전 노예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이고, 여권과 통장을 압수당해 선상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외국인 어선원들도 인신매매 피해자로 분류된다.

그 외에도 인신매매 피해가 가장 문제되는 집단 중 하나는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들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공연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했지만, 실제로는 업주의 강압으로 유흥업소에서 성매매 등을 강요받는다. 이러한 사례는 199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발생해 왔다. 초기에는 러시아, 이후에는 주로 필리핀 국적 여성들이 예술흥행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후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몇 년 전부터는 관광비자로 입국해 마사지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태국 여성들의 숫자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는 여러 명의 브라질 여성들에게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게 해주겠다’라고 속여 한국에 입국하게 한 다음 성매매를 강요한 사례도 있었다.

국적이 달라도 피해사실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업주가 바로 인계해 여권을 압수하기도 하고, 자신이 출입국 공무원들과 친하고 지역의 ‘마피아’들과도 잘 아는 사이라 도망쳐도 소용 없다는 협박을 한다. 성매매를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더라도 비자를 받기 위해 많은 돈을 썼으니 빚을 빨리 갚아야 한다고 한다고 윽박지른다. 또 업주가 정한 일일 매출 기준을 채울 때까지 퇴근하지 말고 일하라는 식의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피해자들이 성매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외딴섬의 열악한 업소로 보내버리겠다, 현지 브로커에게 알리겠다, 어차피 한국 법을 어기고 있으니 여길 떠나면 네가 처벌 받는다라는 식의 협박도 종종 이루어진다.

형법상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조항은 2013년에 신설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처벌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해자들이 성매매 강요 등으로 처벌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성매매 알선이나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경미한 벌금형을 선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들 간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피해자들이 외부로 연락이 가능한 상태였다는 사실 등이 미약한 처벌의 이유이다. 물리적인 폭력이나 감금이 없더라도 이주여성들의 취약한 지위로 인해 사실상 성매매를 강요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수사, 기소 단계에서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나아가 설사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를 남용해 성매매를 시켰다면 국제조약 상의 인신매매에 해당한다는 점도 수사과정에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인신매매 피해 이주여성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도 인신매매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현행법상 성매매 피해자에 대해서는 강제퇴거하지 않고 구제절차를 마칠 때까지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나, 많은 이주여성들은 업주의 성매매 알선에 따라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했다고 인정돼 ‘성매매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의자로 수사대상이 되고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경우도 있다. 결국 범죄사실을 신고하더라도 자신이 처벌될 위험이 있으니, 계속되는 피해를 감수하거나 차라리 도망 나와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는 것이 피해자 입장에서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가해자는 처벌 받지 않고, 피해자의 지위는 더 취약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및 보호 지표’를 만들어 수사기관에게 인신매매 피해자의 조기 식별과 보호대책 마련을 권고했지만, 일선의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9월 24일 내려진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취소 결정(2018헌마1224)은 이러한 수사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성매매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수사기관은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했다고 보고 성매매 알선 등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을 한 건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처분을 취소하면서 이주여성의 취약한 지위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즉 입국 후 곧장 외부와 분리된 낯선 장소인 마사지 업소로 옮겨진 점, 생활비도 없고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소개비를 이유로 업주로부터 성매매를 요구 받은 점,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곤란하고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해 알지 못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알선자 등의 직접적인 협박이나 피해자의 적극적인 거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이 사건 성매매 여부를 그 자유의사로 선택했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와 그를 돕는 변호사들이 끝내 피해사실을 인정받았지만, 이를 위해 2년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는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8년 말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가 서명한 이주 글로벌컴팩트는 더 강한 표현으로 ‘인신매매의 방지, 퇴치 및 근절’을 목표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20여년 사이에 형성된 인신매매의 근절과 퇴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국에서 이주여성에 대한 인신매매가 근절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제시하는 답은 명확하다.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임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좁은 문을 넓히고, 처벌과 단속의 두려움 없이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한국에서 체류하며 피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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