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방] 자연재난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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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난 황토물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인간이 애써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가소롭다는 듯 유유히 쓸어버리는 힘. 물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달 초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겼다. 산사태만 700건 가까이 발생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장마를 난감해하고 있다. 패턴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 여름 기후에 영향을 미치면서 극단적 기상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재난 분류 체계에 따르면 호우(豪雨)는 ‘자연재난’이다. 폭염·태풍·홍수·가뭄·지진 등도 자연재난에 속한다. 감염병 사태, 붕괴 사고, 침몰 사고 등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발생한 재난은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이런 유형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로 자연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우나 폭염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것도 자연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쓴 ‘폭염 사회’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5년 여름, 단 일주일 만에 사망자 739명을 낸 ‘시카고 폭염 사태’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시카고 폭염을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혼자 사는 노인, 에어컨 없이 사는 빈곤층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소외 계층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우라는 재난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이 무심코 밖에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침수 주택에 살던 여덟 살 아이가 대피 도중 목숨을 잃었으며, 폭우 속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은 토사에 매몰됐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꽤 오랜 동안 두세 가지 재난을 일상적으로 맞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중복재난(重複災難) 시대. 자연재난을 중심으로 설계된 현재의 재난 대응 체계가 그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이번 비는 시작일 뿐이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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